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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24. 2017

[Part1] 커다란 세상 속, 무력한 개미 한 마리

[Part 1 : 낙관적 운명론자, 취업준비생의 일기]

2013.9.16(월) / 회사를 떠나기 1222일 전.



영화 <관상>을 보고 찝찝하고 슬펐다. 어차피 역사적 사건에 근거한 영화이니 새드엔딩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조차 우스운데 말이다. 그저 자신과 아들이 무탈하게 한 몸 건사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을 가진 한 개인이 역사의 큰 물줄기에 맥없이 휩쓸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영화 속의 누군가가 불행해지거나 죽었기 때문에 슬펐다기보다는, 결국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는 개인들의 무력감'인 것 같았다. "그렇게 애써봤자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라고 영화가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노력한 인물이 너무너무 하찮게 스러지는 모습을 보니 허무했다. 괜히 나까지도 무력감에 숨이 막다.


기업들의 하반기 신입 채용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겹도록 입사지원서를 쓰고 있다. 모든 회사에는 지원동기와 입사 후 포부를 쓰라는 문항이 있다. 십여년 전의 내가 품었던, 세상을 바꾸겠다거나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하는 야무진 꿈은 진작에 접었다. 사실은 나는 당신네 회사를 이번에 지원하면서 처음 알았고 그냥 '내게 월급을 줄 수 있는 곳이어서'가 내 지원동기이지만 나는 글로벌리더 운운하며 600자, 1000자 짜리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회사에서 정말 그만큼의 포부를 가진 인물을 원하는지조차 사실은 의심스럽다. 그냥 구직자는 많고 자리는 적으니 이렇게 떨어트리고 저렇게 떨어트리려고 필요 이상의 것들을 자꾸 요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회사에서 원하는 사람은 시키는 일 잘 하고 사람들과 둥글게 어울리는 평범한 사람일텐데 말이다. 내가 모 회사의 모 자리로 들어간다고 치더라도, 과연 나는 '입사 후 포부'에 늘어놓은 것 처럼 전사(全社)를 움직이고 전 세계를 움직이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과연 회사는 내게 그런 것을 기대할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서 개미들은 인간을 '분홍 공'이라고 부른다. 개미들의 시점에서 보이는 인간은 둥근 손가락 끝 뿐이기 때문이다. 그 '분홍 공'에 대항하겠다고 개미들 나름대로 전략을 세우고 대비를 하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그냥 손가락 끝으로 꾸욱- 눌러 죽이면 그만일 뿐이다. 그런 개미가 된 기분이다. 누군가 다가와 토닥토닥 위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괜찮아, 어차피 세상이 다 그런거야. 잘 하고 있어. 그래도 너는 개미 중에 꽤 괜찮은 개미란다." 이렇게 말이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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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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