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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Feb 20. 2017

[Part1] 뜨거웠던 여름의 끝.

[Part 1 : 낙관적 운명론자, 취업준비생의 일기]

2013.9.3(화) / 회사를 떠나기 1235일 전.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정말 지옥같이 행복했던 두 달이었다. 매일 "두시간 사십육분 후에 알람이 울립니다"를 보며 잠들어야 했던 시간들. 커피만 너덧잔, 점심식사 후에는 핫식스 없이는 견딜 수 없었지만, 카페인에 취해서였을까, 나는 매 순간 두근두근 선덕선덕 콩닥콩닥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힘들지 않았다. 내 몸집만한 가방을들고 지방 출장을 가던 길이 설렜다. 새벽 세시에 자서 다섯시반에 기상해도 머릿속엔 오늘의 업무에 대한 즐거운 고민과 기대로 가득했고, 그래서 출근길이 행복했다.


짧은 두 달동안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인턴 마지막 날에는 눈물을 퐁퐁 쏟았다. 그간 받은 감사한 관심과 배움, 그리고 즐거웠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창피하게 애처럼 회사에서 눈물을 보이다니. 꽁꽁 숨겨뒀던 약한 모습을 들킨 것 같아서 그게 또 속상하기도 했다.


역시 가장 고마운 건 우리 엄마. 당신도 출근해야 하면서 매일 두어시간 더 이른 나의 출근길에 일어나 잠옷바람으로 서울가는 버스 정류장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혹여나 취준생인 딸이 더 예민하게 굴까봐 말씀은 못하셨겠지만 나보다 더 간절하고 나보다 더 마음을 졸이셨을 것이다. 그동안 겪어온 크고작은 나의 시험 앞에 그러셨듯이.


두 번째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를 데리고 A부터 Z까지 자상하고 세심하게 가르쳐 주신 부장님과 과장님께 감사했다. 부장님은 언젠가 술자리에서 얼굴이 벌개지게 취하셔서는 "나는 니가 꼬옥~ 우리 회사에 왔으면 좋겠다" 고 한참을 설득하시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2003년부터인가 매년 인턴을 받았는데 지금까지 본 인턴들 중에 가장 잘했어" 라는 최고의 칭찬으로 나를 춤추게 하신 이사님도 계셨다.


인턴을 마치고 나서 인턴 동기들과 신이 나서 술을 진탕 먹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박삼일을 잠만 잤다. 여행을 가네 뭘 하네 계획은 거창했는데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고 두문불출 잠만 잤다.


며칠만에 정신을 차리고 한숨 돌리려고 하니 개강과 하반기 공채가 코앞이다. 끝난 줄 알았는데 그냥 예선전일 뿐이었다. 결승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벌써부터 겁이 난다. 힘들 것이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몇 번이고 자존감에 크고 작은 생채기가 날 것이고, 내 유리같은 멘탈이 그야말로 폭삭 내려앉아서, 그냥 가던 길 멈추고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도 많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척, 안 아픈 척, 꿋꿋한 척, 여장부인 척, 외유내강인 척, 이 시대의 신여성 알파걸인 척 하지만 다 뻥이다. 나는 너무나 나약하고 모자라다.


그래도 지금은 나의 가장 강한 면모를 최전선에 내세워 전장에 나서야 할 때이다. 겁을 꿀꺽 삼키고, 신중하게 하지만 대담하게,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정신차려 멍충아.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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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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