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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Mar 22. 2017

[Part2] 나치 앞잡이, 노예의 삶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5.2.8(일) / 회사를 떠나기 712일 전.


노예의 삶, 1년이 지났다. 나는 어느새엔가, 발에 채워진 쇠고랑의 반짝임을 자랑스럽게 뽐내는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옛날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말이 안 되긴 하지만 회사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권리 찾기인 행동들이, '이해는 하지만 담당자 입장에선 귀찮고 짜증나는 행동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무섭다. 물들어가는 내 자신이 무섭다.




내게는 돈을 벌기 위해 주어진 담당 업무가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에 '거짓말인듯 거짓말 아닌 거짓말 같은 말들'을 참 많이도 하고 다녔다. 약간의 눈속임, 약간의 왜곡된 숫자들, 그리고 왠지 믿음직스러운 나의 언변으로, 나는 우리 회사가 얼마나 비전있고 훌륭한 곳인지 선전하고 다녔다. 그리고 꽤 많은 취준생들이 나에게 설득되어 나는 그 공을 칭찬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전, 회사 실적과 연동된 성과급이 결정되고서 나는 엄청난 자괴감에 엉엉 울었다. 참담한 실적이었다. 성과급이 짜기로 소문이 나서 선호되지 않던 우리 회사에, 내게 설득되어 지원하고 입사한 아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하나 하나 떠올랐다.


변명을 하려면 할 수도 있다. 나인들 그럴 줄 알았겠느냐고, 또는 그것이 내 일이라 어쩔 수 없었노라고. 가장 흔한,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는 비겁한 변명이다. 사실은 나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믿고 있었다. 반쯤은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내 입으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곧 내가 말하는 것만큼 잘 될거라고 믿고 있었다. 또는 그러기를 바랐다.




나치 앞잡이가 된 기분이다. 나치 앞잡이들도 본인이 생각하기엔 그저 주어진 소임을 다한, 성실하고 근면한 독일의 시민이었겠지. 나의 직업이 수용소의 감독관이라면, 나는 이 유대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잘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내 월급이 나오고 내가 인정받으니까. 이를 위해 수용소의 건강하지 않은 이들을 골라내 죽이고, 건강한 이들이 건강하지 않아질 때까지 노역과 학대로 이들을 소모하는 것의 결과가 무엇인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이런 '나'들이 모여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되는지,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겠지. 나는 자랑스러운 독일의 일등 시민이니까.


나는 어느새 나치 앞잡이처럼,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더 많은 이들을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는 나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조차도 후회하는 선택을 다른 이들에게 권하고 있었다. 견디기 어려운 자기혐오와 자괴감이 밀려든다.




그런데 더 우스운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내가 이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이유로 또 울었다는 것이다. 울다가도, 그 모순적이고 간사한 내 마음이 너무 어이가 없어 웃었다. 나치 앞잡이가 되어가는 것이 싫지만, 기왕이면 유능한 앞잡이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니. 역겹고 간사하다.


언제가 되든, 어떤 방식이든, 출구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몸이 편하고 마음이 편하다고 이 월급에 마취되지 말자. 안주하지 말자. 젖어들지 말자.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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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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