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6.06.23(목) / 회사를 떠나기 211일 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지 만 2년 반. 슬슬 입질이 오기 시작한다.
직장인들이 입버릇처럼 내뱉는 "때려칠거야!" 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 그냥 '아, 힘들다'를 조금 과장해서 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경우.
둘, 정말 때려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어려워서, 꾸역꾸역 삼키던 울음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 경우.
셋, 진짜로 때려칠 마음을 이미 굳게 먹었고, 이를 실행에 옮겼거나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경우.
나는 2번과 3번 그 어딘가를 계속 맴돌고 있다.
첫 일 년은 즐거웠다.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손가락을 꼽아가며 과외 횟수를 세지 않아도 정해진 날에 정해진 금액의 월급이 들어온다는 사실은 그 무엇보다 달콤했다.
두번째 해에는 보람이 있었다. 무엇이든 옆에서 도와줘야하는 '신입' 딱지를 떼고, 작은 프로젝트라도 내 힘으로 배워서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면 족했다.
그리고 세 번째 해에는 길을 잃었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익혀서 스스로 해내는' 것으론 더 이상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에겐 다음 과제가 필요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목표. 그러나 내 위의 어떤 선배도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았고, 그런 것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내가 본 회사 사람들은 모두 회사와 "쇼윈도부부"처럼 공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만 봐도 화가 나고 웬수같지만 "어휴 애 생각해서 참고 산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부부. 그러면서 이혼은 절대 하지 않는, 못하는 텅 빈 부부관계처럼 말이다.
그들은 회사를 미워하고 틈만 나면 회사를 욕하고, 어떻게든 일을 덜 하려고 요리조리 꾀를 부리며 빠져나가기에 바빴다. 그런데 '이혼'을, '퇴사'를 정말로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또는 이미 떠나버리고 없다.) 텅빈 결혼생활같은 공허한 공존이었다.
이혼을 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든, 영원히 자유로운 몸으로 살든 해야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적어도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내겐 그냥 타성에 젖은 이들의 핑계처럼 보였다.
나는 쇼윈도부부 말고, 뜨거운 연애를 하고 싶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요즈음에는 회사가 힘들어질수록 자꾸만 직장을 뛰쳐나온 사람들의 글이 눈에 띈다.
최근 며칠간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제목이 기가 막힌다.
독일인이 쓴 책이었지만 놀랍도록 구절 구절이 우리 회사의 이야기였다. 회사에 여러 모로 질려버린 나는, 어린애가 반항하듯 이 책을 가방에 넣어 출근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책을 가방에서 꺼내어 옆구리에 끼고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고, 식사를 마치면 회사 건물 구석의 휴식공간에서 보란듯이 책을 꺼내 읽었다. 가끔 공감이 가는 구절이 있으면, 곁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동료들에게 소리내어 읽어주기도 했다.
양성평등, 다양성, 혁신, 복지, 건강, 고용증대, 고객만족 등등 중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면, ㅇㅇㅇ 담당 최고 책임자를 각각 한 명씩 임명하고 휘하에 부서를 신설하고 요란한 선포식을 함으로써, 그 문제를 굉장히 잘 해결하고 있다는 "인상"을 만들고 그를 통해 문제의 본질을 덮는다.
동료들은 "우리회사 사람이 쓴거야?" 라는 자조적인 대꾸를 했고, 우리 모두는 별로 웃기지도 않은 그 이야기에 낄낄대고 웃었다.
그렇게 낄낄대는 동안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마음에 구렁이를 품고 사는 사람이다. 웬만해서는 회사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밖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대놓고 회사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그냥 '나 힘들어요'가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책을 읽고, 그러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고 있다. 내 성격에는 결코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나는 폭발 직전이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목구멍까지 욕지기가 차올라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가득한 진심에 약간의 농담을 덧발라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퇴사' '직장인' '스트레스' 같은 키워드를 가진 글들을 자꾸만 찾아 읽었다. 그러면 회사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든지, 아니면 회사 밖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든지, 둘 중에 하나는 될 것 같아서.
그런데 나와 함께 별 것도 아닌 자조적 농담이 키득키득 웃음을 낭비하던 나의 동료들은 얼만큼이나 힘든 것일까? 문득 궁금했다. 나보다 더 힘든데도, 먹여살려야 할 식솔이 있어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또는 별로 힘들지 않은데도 습관적으로 불평을 쏟아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문득 슬퍼졌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만약 내가 이 회사를 탈출하게 된다면. 이들은 지금의 내 이야기들이 가벼운 불평이 아니라 진심으로 가슴속 깊고 깊은 곳에서부터 토해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까?
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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