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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Sep 16. 2017

[Part2] 모두가 일하지만 아무도 일하지 않는 조직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6.09.20(화) / 회사를 떠나기 122일 전.



한 프로젝트에 새로 투입되었다. '회사의 발전 ≠ 개인의 발전'이라는 진리는 진작에 가슴에 새겼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했다. 너무 황당해서 내 회사도 아닌데 화가 난다.


높으신 분들이 애초에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지시한다. 여러 부서가 협력해서 장기 프로젝트로 끌고가야하는 큰 일이다. 실무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애초에 고꾸라질 것이다. 그 이야기를 누가 보고하느냐,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므로 각 부서는 담당업무를 모두 엉망진창으로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높으신 분들을 모아놓고 경과보고를 할 때면 자기들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저쪽 부서에서 이런 이런 일에 차질이 있어 우려가 된다"는 식으로 서로 떠넘기기 바쁘다.


상사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보기 좋은 형식으로 "꾸미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내 상사가 해오고 있는 보고는 완전히 거짓말이었다. 체크리스트에 3건 정도가 겨우 진행중이었다면, 나의 상사는 5건이 이미 완료되었고 추가로 7건 정도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서를 꾸미는 식이었다. 그리고 내게 그 백업 데이터를 한땀 한땀 조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보고서는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해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기워지고 있었다. 이렇게 누더기같은 보고서로 하루치만큼 폭탄을 미루고 있는 것이었다. '어차피 안 될' 이 프로젝트가 '다른 부서의 과실로' 엎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상사는 가짜 보고서로 임원의 눈을 가릴 수는 있었다. 그러나 협업해야 하는 유관부서 실무자들에게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의 상사는 나를 방패로 앞세워 유관부서에게서 숨어버렸다.


실무자들끼리 업무협의를 할 때면, 나의 상사는 내게 아무런 앞뒤 설명도 없이 내게 회의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했다. 애초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내게는 참석 공지조차 오지 않는 회의였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회의에 가보니 나는 그 프로젝트 멤버들 중에 혼자만 동떨어지게 연차가 부족한 막내였다. 타 부서는 대부분 부장님들. 그리고 과장 몇몇. 타 부서에서 무엇을 물어보든, 말끝을 흐리며 당황한 웃음으로 무마할 수 밖에 없었다. 내 대답은 하나였다. "저는 잘 몰라서요^^; 부장님께 여쭤볼게요."


나의 상사가 나를 밑도끝도 없이 회의에 보내며 기대한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냥 듣고 와. 모른다고 해. 그리고 나는 다른 일이 바빠서 회의에 못 간다고 전해." 그렇게 나의 상사는 유관부서와의 책문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나 스스로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모든 것이 거짓인 보고서에 대해 누가 무엇을 물어보더라도, 그동안의 거짓말과 어긋날까봐 나는 아무 말도 해서는 안됐다.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인 애물단지. 혹은 잘 봐줘봐야 얼굴마담. 타부서에서도 사정을 모르지 않으니 나를 욕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백치같은 미소를 지어야 하는 일이 너무 부끄럽고 화가 났다.


회사의 발전에 몸바칠 일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뭔가 배우는 점은 있어야 했다. 내가 배운 것이라고는 거짓 데이터를 지어내어 진척사항을 부풀리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나도 이 회사에서 살아남으면 저렇게 변할까? 또는 저렇게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걸까? 지금 이 자리를 참아야 하는 것보다 나를 더 견디기 힘들게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 저사람처럼 될까봐, 저사람처럼 되어야 할까봐. 더이상 저사람을 욕할 수 없는 사람이 될까봐. 그것이 더 무서웠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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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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