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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Dec 26. 2017

[Part2] 탈출 계획 그리고 새로운 도전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2016.11.19(토) / 회사를 떠나기 62일 전.


엊그제 목요일은 수능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2007년 겨울, 걱정을 가득 안고서 수능시험을 본 것이 벌써 9년 전인데, 아직도 수능시험날이 되면 왠지 코끝이 시큰해진다. 그때의 두려움, 긴장, 결연한 의지 같은 것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달까.


그때의 나는 스무살을 앞두고 있었고, 지금의 나는 이십대의 끝자락에 서있다. 그때의 나는 팽팽 돌아가는 도수높은 안경에 펑퍼짐한 교복치마를 멋낼 줄도 모르고 입고 다녔다.  지금의 나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숨기고 싶어서 미용실, 네일아트, 화장품 같은 것들에 꽤 많은 돈을 들이는 직장인이 되었다.


수능이 지나간 주말. 나는 집에서 조용히 수능 문제를 출력해서 풀기 시작했다.


대학시절 내내 과외를 했던 영어는 당연히 만점. 반면에 수학은 배운 내용 대부분을 잊어버린데다가,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는 교육과정에 없었던 미적분이 포함되어 반타작도 어려웠다. 의외로 국어영역에서 고득점을 얻어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견디지 못하게 힘들다. 육체적으로 힘들어도 비전이 있으면 견딜텐데, 또는 비전이 없어도 일이 아주 편하다면 그저 월급만 받겠다는 배짱으로 버텨볼텐데.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너무 힘든 상황에서, 그것을 참고 견딜만한 이유가 요만큼도 다.


며칠 전, 점심을 후루룩 먹고 회사 구석의 눈에 띄지 않는 회의실에서 시시껄렁한 인터넷 뉴스를 뒤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연히 인터넷에 올라온 구인광고를 보았다. 제주도에 있는 한 입시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구한다는 광고였다.


물론 대기업에 비해 복지나 안정성 면에서 훨씬 떨어지기 때문에 단순한 비교는 어렵겠지만, 어쨋거나 내 통장에 찍히는 월급만으로 보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급여였다.


젠장, 이렇게까지 괴롭고 불행할 바에야 제주도에 가서 같은 월급 받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낫지 않나? 나 그정도 능력은 되지 않나?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수 있잖아. 심지어 나는 아이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처음엔 회사 스트레스에, 홧김에, 농담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안 될 것도 없었다. 유레카! 그동안의 고민이 한 번에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회사는 못견디겠는데, 당장 그만두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덜컥 그만둘 수도 없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출근이 두려워 밤을 꼴딱 새기도 했고, 아침마다 울면서 오늘만 견디자, 오늘만 견디자, 하며 꾸역꾸역 회사에 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불행하게 살 바에야,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천천히 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파트타임 강사는 (커리어에 큰 욕심을 내지 않는 한) 시간적으로 회사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급여 수준도 꽤 괜찮았다.


그래 이거였어. 나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한 줄기 빛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회사 탈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제주도 영어학원의 구인광고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그 자리에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처음에는 파트타임 강사생활을 하며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간 직장생활로 망가진 몸과 마음을 보살피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되었고, 결국 나는 파트타임 강사에서 초등 교사로 노선을 수정했다. 초등학교 선생님. 내게 최소한의 안정성과 생계유지를 보전해주면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적어도 먹고사는 돈을 벌면서 '죽을 만큼 괴롭지'는 않을 것 같은 일.  


나는 내년 수능을 보고 교대에 들어가야겠다는 다소 파격적인 결심을 했다. 그리고 올해 수능을 시험삼아 풀어 본 것이다. 부족하지만 1년이면 도전해 볼 만한 정도인 것 같다.


머릿 속으로 백번 천번 상상만 했던 회사 탈출 계획을, 이제는 정말로 실천에 옮길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오늘부터 차근차근, 그 계획을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 지긋지긋한 곳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행복해졌다.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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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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