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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utiPo Oct 23. 2017

[Part2] "넌 생각이 너무 많아"-2

[Part 2 : 미친여자 널뛰기 하듯, 요동치는 직장생활]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2016.10.24(월) / 회사를 떠나기 88일 전.



내 부서장은 여러가지 의미로 여자를 좋아한다. 말로는 세상에 그런 남녀평등주의자가 또 없다. "이제는 여자도 뭐든 할 수 있는 시대"라며 여사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싶단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기회와 내가 생각하는 기회는 좀 다른 것 같다.


그는 여사원들을 온갖 저녁식사 자리에 끌고 다니며 농을 걸고 여기저기를 툭툭 만진다. 그 식사자리의 명분이 어떻든간에, 이런저런 이유로 꼭 여사원 한둘을 끼워 간다. 공식적인 회식이 없는 날에는 '오늘 간단히 저녁이나 먹자'며 자리를 만든다. 이렇게 끌려다니는 일이 5일중 최소 2,3일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이제는 부서장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스템(?)이 구축된다. 그 아래의 상사들은 "부서장께서 좋아하시니까"라며 상관없는 회식에도 여사원들을 섭외하곤 한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는 부서장이 제일 마지막에 입장하시기 전에 여사원들을 부서장 옆자리와 앞자리로 미리 배치해 앉혀둔다.


첫째로는 일주일 5일 중에 3번이 넘어가도록 회식자리에 끌려가는 것에 화가 났고, 둘째로는 무수리처럼 술자리에 불려다니며 옆에 앉아 술을 따르고 웃음을 팔아야 하는 것이 화가 났다. 셋째로는 팔뚝 안쪽부터 등이나 허벅지를 자꾸만 만지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그것도 교묘하게, 신고하기 애매한 수위로, 그러나 분명히 불쾌하게 말이다.




여자 선배에게 어렵게 운을 뗐다. 부서장이 저러는 것이 기분나쁘지 않느냐고. 그런데 선배의 대답도 가관이었다.


우리 여사원들은 꽃처럼 방긋방긋 웃고 술따르며 귀여움을 떨고, 상사의 마음을 얻는 것이 '회사생활'을 잘 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냥 그렇게 해서 부서장에게 예쁨을 받고, 그렇게 해서 일을 덜 하고 덜 혼나고 몸이 편하면 그만이란다.


그 선배는 본인이 하는 행동을 '회사생활'이라 칭하며, 나도 그에 동참하기를 요구했다. '우리 여자들'이 무슨 대단한 '고통분담'이라도 하고 있다는 듯이.


처음에는, 입으로는 신세대 남녀평등주의자를 자처하며 정작 가장 반대되는 짓거리를 하는 부서장에게 화가 났다. 그 다음에는 그에 적극 동조해서, 여사원을 이용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상납하는' 상사들에게 실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것이 '여사원의 일'이라고 말하는 선배를 보며 마음을 닫았다.




내게 생각이 너무 많단다.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불합리한 일이 반복되고 있고, 신고는 애초에 엄두조차 낼 수 없어서 그냥 혼자서 싫은 티라도 좀 내겠다는데, 나는그냥 '회사생활'을 잘 못하는 헛똑똑이, 콧대만 높은 피곤한 여자애로 비춰지는 것 같다.


옳고 그름에 대해 고민하고, 옳지 못한 일을 옳지 못하다고 말하고, 말하지 못하면 적어도 그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미련하고 나쁜 짓이란다. 그것을 묵인하는 것도 모자라, 동조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이 조직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마저 느껴진다.


부서장 한 명이 문제였으면 눈을 꼭 감고 마음을 꼭 닫고 그냥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저사람은 길어야 몇년이면 바뀔 사람이고, 나의 회사생활은 그보다 훨씬 길테니까.


그런데 그 부서장에게 바른 소리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앞장서서 이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마지막 남은 정까지 똑 떨어져버렸다. 결국 다른 부서장이 오더라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를 위로해주고 다독여준 분들도 여럿 계신다. 모두를 매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딱 3년 전 요맘때, 찬바람이 시큰거리는 10월에 눈물을 삼켜가며 취업 준비를 하던 날을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적어도 이보다는 훨씬 가치있는 사람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대우를 참으며 청승맞게 울며 꾸역꾸역 살 일은 아닌 것 같다.


월급이 주는 달콤함을 포기하더라도,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싶다.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곳에서 살고 싶.





취준생부터 퇴사 이후 새출발까지, <나의 똥같은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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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0 : D-Day, 회사를 나서다 (☞ 첫 글 보기)
Part 1 : 취업 준비  (☞ 첫 글 보기)
Part 2 : 직장 생활  (☞ 첫 글 보기)
Part 3 : 퇴사 이후  (☞ 첫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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