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라 쓰고 룸메이트로 읽습니다 - ⑧
각자 살던 원룸 계약이 끝나면서 집을 합쳤습니다.
결혼식은 3달이 남았기에 아직은 동거? 인 셈입니다.
이사한 날, 밤늦게까지 짐 정리를 하면서
집안일을 어떻게 나눠서 할 것인지 정했습니다.
청소나 빨래는 할 때 같이 하기로 했어요.
음식물 쓰레기는 제가 맡아 주길 원해서 ok
남은 건 요리와 설거지였는데요. 최선의 방법은
한 명이 요리를 하면, 다른 사람이 설거지를 하기로 했죠.
우선 시작은 이렇게 하고 상황에 맞춰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요리사가 정해져 있어요.
밥때가 돼서 오늘은 누가 요리를 할래? 물으면
룸메이트는 요리를 택합니다. 설거지보다 그게 더 낫대요.
문제는 요리 횟수가 실력과 비례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레시피 북을 만들 정도로 열심히 하는데 말이죠.
사실 저도 요리하는 걸 좋아해요.
국물 한 숟갈 먹으면, 뭐가 부족한지 바로 알아요.
전라도에서 오랫동안 살아서인가? 미각이 조금 풍부해요.
한 번은 김치찌개 맛이 별로라고 했다가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요리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합니다.
"원래 싱겁게 먹는 거야? 아니면 간을 안 맞추는 거야"
"나? 원래 아무 생각 없이 대충 먹는데"
아, 룸메이트는 음식을 살기 위해 먹는 타입이었습니다.
반대로 저는 음식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구요.
그래서 우리는 역할을 바꿔봤어요.
1주일 간 제가 요리를 하고 룸메이트가 설거지를 했죠.
재운 돼지고기로 만든 돼지고기 김치찌개
시금치, 치즈를 넣고 만든 이탈리아식 오믈렛 프리타타
그 뒤로 저는 맛이 이렇다 저렇다 라는 얘길 안 합니다.
음식을 하는 순간은 좋았지만 준비 과정은 힘들었어요.
퇴근하고 지친 몸으로 장을 보기만 해도 진이 빠지더라구요.
그런데 최근부터 룸메이트의 요리 실력이 좋아지고 있어요.
얼마 전에 만든 된장찌개는 먹자마자, 제 콧구멍이 커졌대요.
"사실 자기한테 숨겨왔던 비결이 있어"
"자기 요리를 보니까 새우젓이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나도 썼어"
"된장찌개에도 새우젓을 넣었는데 엄청 먹었잖아"
그전까지는 요리할 때 소금, 설탕, 간장, 후추, 고춧가루만 썼대요.
본인 스스로도 요리가 아닌 조리였다고 합니다.
제가 요리하는 걸 보면서 레몬즙, 새우젓 같은 걸 처음 써봤다고,
조리에서 요리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던 거죠.
남은 건 음식을 하면서 그릇을 좀 많이 쓰는 듯한데
제가 설거지를 빠르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새우젓 꼭 쓰세요
<와이프라 쓰고 룸메이트로 읽습니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