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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열 Mar 06. 2018

기네스의 질소충전포장:
맥주 거품의 과학

2월의 맥주 스타우트, 그 중에서도 기네스


지난 달, 2월의 맥주로 스타우트를 소개해 드렸지만 기네스의 이야기는 쏙 빠져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찐빵에 앙꼬를 좀 채워볼까 합니다. ('앙꼬'는 일본어투 용어로,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팥소'로 순화해서 사용해야겠습니다.)


아일랜드의 아서 기네스Arthur Guiness가 1759년, 더블린에 있는 버려진 양조장을 9000년 동안 임대하기로 하면서 기네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창립된 초기에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양조장이었습니다. 영국 각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에일 종류를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파는 작은 회사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서 기네스에서부터 6대에 걸쳐 회사를 대물림하는 동안 (이 대물림은 아서 기네스의 6대손인 벤자민 기네스가 1986년 사임하면서 막을 내렸습니다.) 기네스는 엄청나게 성공적인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1930년대 기네스가 세상에서 7번째로 큰 회사였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니까요. (Lapetina 2014) 이 기간 동안 기네스는 단지 맛있는 맥주를 만든 것이 아니라, 뛰어난 경영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기네스는 창립 얼마 후, 영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포터 맥주에 손을 대기 시작하더니, 1799년부터는 오직 포터, 스타우트 종류의 맥주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 1929년에는 '기네스는 몸에 좋습니다' 라고 주장하는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잘못된 건강 상식을 불어넣어 '밀크 스타우트'를 '스위트 스타우트'로 부르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지요. (관련글 : 커피 대신 맥주로 스타벅스를 차려볼까) 그 유명한 기네스북을 만든 것도 이러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네스를 차별화하는 요소는 따로 있습니다.



맥주 거품의 과학


맥주의 거품은 종종 피하고 싶은 존재입니다. 덥고 목말라 시원한 맥주를 갈망하며 급하게 따랐다가는, 맥주보다도 많은 거품이 생기는 바람에 거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엠티에 가서 시원찮은 냉장고에 넣어 놓은 피쳐 맥주를 종이컵에 따랐다가는, 미지근하고 맛도 없는 거품이 맥주를 덮어버리기도 하죠.


하지만 거품은 맥주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이며, 맥주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맥주 거품은 잔 안에 맥주를 가둬 향과 탄산이 날아가는 것을 막아주고, 맥주를 마실 때 입에 닿는 질감을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며, 적당한 비율로 생겼을 때 굉장한 아름다움마저 선사해 줍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상 어떤 음료에도 이렇게 그럴듯한 거품이 생기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콜라 거품이요? 그건 몇 초만 기다려도 싹 가라앉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기능도 없습니다. 맥주에 거품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왜 맥주에만 그런 거품이 생기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거품은 이산화탄소 방울입니다. 톡 쏘는 맛을 위해 대부분의 맥주는 정상적으로 물이 녹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산화탄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산화탄소를 담아내기 위해 보통 캔, 병, 생맥주 케그는 높은 압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캔을 따는 순간, 병을 여는 순간, 그 압력은 사라지고 이제 더 이상 액체에 녹지 못하는 이산화탄소가 액체 안에서 기체 방울을 이루게 됩니다. 이 방울은 액체보다 가벼워서 위로 떠오르고, 표면에 도달해 바깥 공기를 만나면 참았던 숨을 내쉬며 공기 중으로 달아납니다.


이 과정은 탄산이 들어간 모든 음료에게 공통입니다. 하지만 그 액체가 탄산음료가 아닌 맥주라면, 한 가지 다른 점이 생깁니다. 이산화탄소 방울이 위로 떠오르는 동안, 보리 등 곡물에서 나온 단백질 덩어리가 엉깁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체인, 혹은 섬유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덕분에 이산화탄소 방울이 떠올라 맥주 표면에 닿아도, 바깥 공기와 만나 자유롭게 섞이는 것이 아니라 엉긴 단백질 섬유 안에 갇혀 잘 터지지 않습니다. (Bamforth 2004) 이렇게 해서 하얗고 오래 가는 맥주 거품이 맥주 표면에 눈처럼 쌓이게 됩니다.


따라서 단백질이 많을수록 거품이 오래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림 : Bamforth 2004)



사실, 완전무결하게 균일한 맥주의 내부에서는 아무리 이산화탄소가 많아도 방울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산화탄소 방울이 자연히 생기려면 바깥의 압력보다 100배는 많은 이산화탄소가 맥주 안에 들어있어야 합니다. (Rob 2013)


이와 굉장히 비슷한 과학 현상이 있습니다. 완전무결하게 균일한 물이라면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얼음이 되지 않지만, 조금만 흔들어 주면 순식간에 얼어버립니다.


https://youtu.be/ph8xusY3GTM?t=2m15s

과냉각된 물. 2분 15초부터 보시면 되겠습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도 그냥 물방울이 되지는 않습니다. 작은 먼지와 같이 물이 엉길 수 있는 덩어리, 즉 응결핵이 있어야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이용해 하늘에 응결핵을 뿌려주는 것이 인공 강수의 원리이기도 하죠. 이를 과냉각, 과포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맥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 맥주에 이산화탄소 방울이 생기려면 '응결핵'이 필요합니다. 응결핵이 될 수 있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맥주잔을 깨끗이 닦지 않아 잔 표면에 묻어있는 이물질, 닦았는데 아직 덜 말라 묻어 있는 물방울, 너무 깨끗하게 닦은 나머지 행주에서 옮겨 붙은 미세한 실오라기, 맥주가 높은 곳에서 잔으로 떨어지는 동안 섞여 들어간 공기 방울, 잔의 표면 중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홈에 들어있던 작은 공기방울... 맥주를 종이컵에 따르면 거품이 많이 생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종이가 유리보다 마찰이 크고,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정도가 심한 것이죠. 이와 같은 요소들 때문에, 맥주에 대해 매우 엄격한 사람들은 맥주를 무조건 잘 닦고 잘 말린 깨끗한 유리잔에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기네스의 거품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네스의 거품


기네스 맥주에는, 이산화탄소 뿐만 아니라 질소가 들어갑니다.


질소는 물에 녹는 정도, 용해도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작습니다. 차가운 맥주 온도에서는 무려 100배나 작습니다. 거품이 생기려면 응결핵 주위로 기체가 모여야 하는데, 맥주 안에 질소가 과포화되어 있어도 이산화탄소만큼 많지가 않은 겁니다. 자연히 기체 방울의 크기가 작아집니다.


작은 질소 방울이 떠오르면서 단백질과 엉깁니다. 방울이 작으면 작을수록, 그 부피 대비 표면적이 넓어집니다. 부피는 지름의 세제곱, 표면적은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이죠. (제곱-세제곱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표면적이 넓은 만큼 기체 방울은 자신의 몸집에 비해 더 많은 단백질과 단단히 엉기게 되고, 따라서 작은 거품일수록 더 오래 터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질소 거품은 알갱이가 작고 오래 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기네스는 맥주를 만들 때 질소를 주입해 과포화 상태로 만듭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네스는 다른 맥주에 비해 훨씬 부드럽고 오래 가는 거품을 가지게 됩니다. 실제로 잘 따른 기네스를 보시면, 알갱이 하나하나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거품이라는 생각보다는 크림을 얹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크리미한 거품은 기네스 맥주의 검은 색과 명확한 대비를 이뤄 더욱 아름답습니다. 게다가 이 거품은 입에 들어갔을 때마저도 크리미한 느낌이 듭니다. 혀에 닿아도 쉽게 꺼지지 않고 맥주와 섞여 스펀지처럼,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을 선사해줍니다.



기네스의 질소 위젯


그런데, 맥주에 질소를 넣는 데에는 한 가지 중대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질소의 용해도가 이산화탄소보다 100배나 작다고 했는데요. 이 점은 질소 거품을 잘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만, 그 이전에 아예 거품이 별로 안 생기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제아무리 거품이 예술이라도, 거품이 안 생기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그래서 기네스가 고안한 것이 질소 위젯과 따르는 방법입니다.


4캔 만원짜리 기네스 캔맥주를 드셔보셨다면, 그 안에 뭔가가 들어있다는 느낌을 받으신 적이 없으신가요? 기네스의 캔 및 병맥주에는, 플라스틱 볼 혹은 막대 형태의 위젯이 들어가 있습니다. 맥주를 포장할 때, 위젯을 넣고 액체 질소를 주입하고 뚜껑을 닫으면, 액체 질소에서 맥주가 다 녹일 수 없는 양의 질소가 나오고, 캔 안의 압력이 높아집니다. 이 압력 때문에, 여분의 질소가 미세한 구멍을 가진 플라스틱 위젯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맥주가 유통된 후 소비자가 캔을 따는 순간, 경쾌한 소리와 함께 캔 안의 압력이 낮아지고, 위젯 안의 질소가 미세한 구멍을 통해 다시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미세한 구멍을 통해 조금씩 빠져나온 미세한 질소 방울은 떠올라 기네스의 트레이드마크인 질소 거품을 만듭니다.


기네스 캔에 들어있는 질소 위젯


기네스 생맥주는 또 하나의 예술 작품입니다. 기네스 생맥주에는 질소가 빵빵하게 들어있으며, 기네스 생맥주를 따르는 탭(수도꼭지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에는 맥주가 미세한 구멍을 통과하게 만드는 장치가 있습니다. 이 장치를 지나간 맥주에는 미세한 공기방울들이 생겨, 질소를 위한 응결핵 역할을 합니다. 


기네스에서는 이 생맥주 한 잔에 더욱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두 번에 걸쳐 따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잔을 기울여 3/4 정도가 차게 따른 후, 그나마 큰 거품들은 터져버려 더 오래 가는 거품만 남을 수 있도록 잠시 기다리는데, 이 기다리는 시간은 정확히 119.53초입니다. 그리고 잔을 세워 마저 채우는 것입니다. (혹시 안타깝게도 0.01초 단위를 지원하지 않는 타이머를 가지고 계시다면, 눈물을 머금고 120초를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이 2분간의 기다림을 두고 기네스는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Good things come to those who wait)' 라는 기가 막힌 광고 카피를 들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https://youtu.be/YuzJ_7zHnnc

기네스가 직접 소개하는 '기네스 올바르게 따르는 방법'


한 술 더 떠서 초음파를 이용해 거품을 일으키는 기계도 만들어졌습니다. 서징Surging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을 통해 질소 거품을 극한까지 일으킨 기네스 한 잔은, 꼭 맥주를 좋아하지 않으셔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아마 좋아하시겠지만) 살면서 한 번쯤 꼭 먹어볼 만합니다. 특히 기네스는 다른 스타우트에 비해 쓴 맛이 절제된 편이기 때문에 스타우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입문하기에도 부담이 적습니다.


단, 기네스에는 질소를 넣느라 이산화탄소가 별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톡 쏘지 않는 밍밍함에 놀라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서울대입구역 링고LINGO에서 서징 중인 기네스 (영상 제공 : 남진호 님)



기네스 드래프트와 오리지널


사실, 질소 충전 포장을 한 기네스는 기네스라는 거대한 양조장에서 만드는 하나의 제품일 뿐입니다. 그것도 유서깊은 기네스의 '신제품'입니다. 질소가 들어간 기네스 맥주, 즉 '기네스 드래프트draught'가 처음 출시된 것은 1959년의 일입니다. (Draught를 드래프트라고 읽습니다. augh를 '애프'로 발음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죠. Laugh에서처럼요.) 게다가 위젯을 이용해 캔맥주로도 기네스 드래프트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1988년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1759년에 설립된 기네스 양조장은 그 전까지 무려 200년 동안 무엇을 만들고 있었을까요?


기네스 드래프트와 오리지널


그 답은 바로 1821년 출시되어 기네스의 성공을 이끌었던 '기네스 오리지널 / 엑스트라 스타우트'입니다. 탄산 대신 질소가 들어가 부드러운 맛의 기네스 드래프트가 맘에 들지 않으신다면, 탄산과 홉이 넉넉하게 들어가 전형적인 스타우트의 맛을 내는 기네스 오리지널을 추천드립니다. 여러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만드는 매니아들을 위한 과한 맛(과 알코올)의 스타우트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맛과 가격으로, 흑맥주의 보리 태운 풍미를 가득 담은 맥주입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기네스를 만든 것은 사실 드래프트가 아닌 오리지널이니, 품질은 보장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저는 세븐일레븐에서 발견했지만, 1년 전에는 GS25에 있었고 (쓰리팩토리 2016) 이마트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달에 한 종류씩, '이 달의 모범맥주'와 함께 진하고 시원한 맥주 이야기를 배달합니다.

이 시리즈는 대한민국 공군 교양카페 <휴머니스트>에 <이 달의 모범맥주>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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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https://www.guinness.com/en/our-story/
https://www.engineeringtoolbox.com/gases-solubility-water-d_1148.html
Lapetina (2014) https://www.thrillist.com/drink/nation/12-things-you-didn-t-know-about-guinness-thrillist-nation
Rob (2013) http://www.themadscienceblog.com/2013/12/chemistry-of-beer-carbon-dioxide-vs.html
Bamforth (2004) "The Relative Significance of Physics and Chemistry for Beer Foam Excellence: Theory and Practice" J. Inst. Brew. 110(4), 259–266, 2004 
https://www.guinness-storehouse.com/content/pdf/archive-factsheets/general-history/company-history.pdf
쓰리팩토리 (2016) http://blog.naver.com/three_factory/220912704303
커버 사진 : 이현제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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