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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국현 Jan 28. 2016

말발의 법칙

돌파구 노트

아무리 좋은 의견을 제시해도 제 말발이 먹히지 않아요


신입사원이 자주 경험하는 상황이다. 경력사원이라도 새로운 조직으로 옮겼거나, 회사를 옮겼을 경우에는 예외 없이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역량이 높아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많이 받았던 사람일수록 더 크게 느낀다. 왜 조직이 바뀌면 말발은 리셋되는 것일까?


나 역시도 동일한 경험으로 멘붕이 왔던 적이 있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다. 열띤 토론 중에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잠시 적막이 흐른 후 다시 기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의 말은 바람에 흩날리는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대학원에서는 내가 의견을 제시하면 교수님을 포함하여 모든 학생들이 귀를 기울였다. 나의 말에는 제법 무게감이 있었다. 묵직했던 나의 말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먼지처럼 되어버린 것일까?


말발은 리셋되는 아이템이다


대부분의 게임에는 스테이지가 존재한다. 하나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면, 언제나 유지되는 아이템이 있는 반면에 리셋되는 아이템도 있다. 말발은 리셋되는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먼저 스테이지가 바뀌어도 유지되는 아이템을 생각해 보자. 가장 확실한 것은 당연히 자신의 역량이다. 하지만, 역량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학력이나 포트폴리오, 자격증, 영어 점수, 수상 경력 등과 같은 객관적인 스펙으로 본인의 역량을 판단하게 된다. 이를 "역량 기대치"라고 하자. 즉, 역량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스펙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신뢰도, 역량 평가치 등 주관적인 가치는 모두 리셋된다


그렇다면 스테이지가 바뀔  때마다, 즉 조직이 바뀔  때마다 리셋되는 아이템은 무엇일까? 신뢰도, 이미지, 역량 평가치, 호감도 등 주관적으로 형성되는 모든 것은 리셋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객관적인 스펙이 주관적인 아이템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스펙에 의한 advantage는 유효기간이 그다지 길지 않다.


말발은 역량 평가치와 성과의 합에 신뢰도를 곱한 값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말발은 사람들에 의해 평가되는 "역량 평가치"와 "성과"의 합에 "신뢰도"를 곱한 값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역량이 높다고 평가되는 사람의 말은 파워가 세다. 또한 성과를 많이 낸 사람의 말은 훨씬 더 잘 먹힌다. 단, 사람들이 느끼는 신뢰도만큼만 받아들인다. 즉, 신뢰도가 낮다면 아무리 역량이 높고 성과를 많이 냈어도 말발은 약하다.

[말발의 법칙]

말발 = (역량 평가치 + 성과) x 신뢰도


신입사원의 경우를 보자. 역량 평가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일단 사람들의 선입견에 의한 역량 기대치가 대신 적용된다. 성과는 아직 없으므로 제로다. 신뢰도 또한 쌓은 것이 없으므로 미미하다. 즉, 신입사원의 말발은 역량 기대치에 미미한 신뢰도의 곱으로 계산되므로 매우 낮다. 

말발(신입사원) = (역량 기대치 + 0) x 미미한 신뢰도


조직이나 회사를 옮긴 신규 경력사원의 경우도 살펴보자. 평가된 역량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이력서에 나와 있는 경력에 의한 역량 기대치가 적용된다. 성과는 역시 제로다. 신뢰도 또한 쌓은 것이 없으므로 미미하다. 기존 경력에 따른 역량 기대치에 따라서 차이는 나겠지만 미미한 신뢰도로 인해 말발은 낮은 수준에 머문다.

말발(신규 경력사원) = (역량 기대치 + 0) x 미미한 신뢰도


신입사원이나 신규 경력사원 입장에서 리셋된 말발을 높이기 위해서는 초기의 역량 기대치를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실수를 한다. 역량 기대치와 실제 역량을 분리시켜서 생각한다는 것이다. 역량 기대치는 초기에만 잠깐 영향을 미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역량 기대치를 높이되 실제 역량도 높일 수 있는 노력을 해야만이 시간이 지날수록 역량 평가치를 높일 수 있다. 역량 기대치와 실제 역량을 일치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프로젝트 수행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력서 상의 자격증 늘리는 스펙  쌓기보다는 "맨땅에 헤딩"하는 경험을 하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량 기대치는 사라지고 조직 내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역량 평가치로 재평가된다. 역량 평가치는 자신의 실제 역량에 의해 좌우되므로 얼마나 본인의 기본 역량을 쌓아 나가는지가 중요하다. 기본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일을 해도 좋은 성과가 나지 않는다.


신뢰도를 높이는데 집중하라


성과를  만들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초기에는 신뢰도를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초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세(attitude)"와 "정확성"이다. 좋은 자세에 대해서는 이미 "만점 인생의 비결 ATTITUDE"에서 이야기한 바 있다. 두 번째 요소인 정확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 결과 등을 다른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저 친구의 말은 틀리는 법이 없어."
"저 친구가 정리한 데이터는 항상 정확해."
"저 친구가 한 일이라면 결과는 믿을 만 해."

좋은 자세와 정확성은 신뢰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빠른 기간 내에 역량을 높이고 결국은 좋은 성과를 얻게 만든다.


신뢰를 쌓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하지만 어렵게 쌓아 올린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은 한 순간일 수 있다. 실제로 아홉 번 잘 해서 쌓은 신뢰를 한 번의 실수로 날리는 것을 흔히 본다. 신뢰를 쌓고, 쌓아 놓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자신의 말발을 높이기 위한 기본이다.


고과 평가는 신경 쓰지 마라


앞에서 말한 대로 노력한다면 좋은 고과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참고로, 앞에서 "말발"은 "영향력"이고 "기여도"를 대변하는 표현으로 사용한 것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자신의 말발이 잘 먹히게 되었다면 확실히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한번 믿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보자. 단, 고과 평가는 신경 쓰지 말자. 고과 평가에 신경을 쓰다 보면 문제 해결을 위한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고과 평가를 잘 받기 위한 업무를 하게 된다. 또한, 실제 고과 평가 점수는 자신의 기대치보다 늘 낮기 때문에 의욕과 열정만 식게 된다.


내가 360도 다면 평가를 처음 적용했을 때의 일이다. 모든 팀원에게 자신과 함께 일하는 상하좌우 인력에 대한 평가를 하도록 했고, 동시에 자신에 대한 평가도 포함하도록 했다. 그런데, 10여 명의 팀원에게 받은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사람마다 팀원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으나 한 가지는 전원이 일치했다. 자기 자신의 평가 점수가 모두 최고 점수였던 것이다. 이후에는 360도 다면 평가 시에 본인 평가는 제외시켰지만,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추해 본다면, 실제로 최고 점수를 받은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받은 평가 점수에 불만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KAIST 정재승 교수님의 글을 읽고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기 객관화"가 힘들다고 한다. 사람은 늘 자신이 유리하게 상황을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과 평가에는 신경을 쓰지 말라는 이유이다.


신뢰도를 높여 무풍지대로 진입하자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면 말발이 리셋되는 것은 당연하다. 풀어야 할 문제는 말발을 높여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조직 내에서 신뢰도를  높이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과 평가 점수에는 신경을 끄자. 보통 상위 고과 10% 구간은 혈연, 학연, 지연, 친분, 사내 정치, 청탁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신뢰도를 높이는 노력으로 역량과 성과를 모두 높여 무풍지대로 진입하는 경험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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