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하얼빈 09화

두루미 날다

by 차거운

철책 머지않은 겨울 철원 들판에 서면

군복 입은 한 세월 떠오르는데

맵찬 바람 속 싸늘하고 투명한 물 가운데

고니며 흑두루미며 오리 등이

서로 몸 비비며 앉거나 날거나 부산스레

자신들이 전설을 이야기하는 양

끼룩거리는 것이었다


궁예가 한 시절을 보내고

치열한 전투의 기억도 곰삭은

이 땅에서 밥맛도 좋은 오대쌀

한 수저 가득 담아 고수레로 뿌리며

함께 살아갈 일을 생각하다 보면

금강산까지 저 기찻길 따라

수학여행도 가고 싶어라

길산이 마음 삭히던 유점사에서

하룻밤 노곤히 코도 골면서

마음도 씻으면 좋지 않겠나


평화가 길이 되고

길이 따사로이 열리는 어느 봄날이 오면

나 손주 손녀 손 잡고

다시 이 길에 서고 싶네

두루미 경계 없이 날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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