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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정맥류 인간의 수영 등록

1) 걷다가 헤엄

by 망토 Jun 30. 2024

내가 수영을 등록하게 된 계기에는 사실 하나의 이유가 더 있다. 바로 나의 하지정맥류 때문이다.

다리의 진통이 무기력과 결합하면 아주 찰떡궁합의 콤비가 된다. 이 둘은 내가 어디도 가지 못하도록 한 자리에 가만히 묶어두는 데 탁월했다.


하지정맥류는 앞으로의 수영 일기에도 자주 등장할 나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오늘은 내가 어떻게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게 되었는지, 하지정맥류와 수영이 어떤 관련이 있기에 수영을 시작하려 하였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1. 나는 단기파견으로 떠난 미국 여행에서 한 달 내내 2만 보씩을 걷고 또 걸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다리가 거뜬했다. 그만큼 걷는 것을 좋아하고, 걷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던 내가 처음으로 길에서 주저앉을 뻔 한 경험을 한다.

2. 그 이후 다리가 너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는 고통이 반복되었다. 이런 표현은 부적절하지만, 다리를 끊어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무척 아팠다.

3. 병원에 갔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나이를 물으시더니 “20대는 뭐, 아마 자기 관리로 회복 가능할 수준일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털털하게 웃으시다가, ​실시간으로 초음파를 확인하자 정적이 흘렀다.


“선생님 왜... 그러시죠?”


선생님은 “저도 지금 너무 놀랬는데요,“라고 운을 띄우시며 내가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4. 진단명은 하지정맥류였다.

나는 하지정맥류가 심한 상황이었다.

다리의 정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해, 몸 위로 다시 올라가야 할 피들이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옆으로 새는 것.

그래서 정맥 주위로 (피가 고인) 혈관 두 개가 동그랗게 보이는데, 이 형태를 ‘미키마우스 모양’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아주 큰 미키마우스들을 키링처럼 다리에 달고 다녔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피의 순환이 활발하지 못해서 손도 발도 차갑다. 평생의 내 손발이 그러했던 것처럼.


​따라서 나는 경화제를 이용해 혈관을 굳혀 피가 새는 구멍을 없애는, 그러니까 미키마우스의 양쪽 귀를 꿰매 막아버리는 수술을 결정한다.

미키야 미안해!

5. 사담으로,

수술과 입원이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물론 아프고 무섭고 힘들었지만, 수술 시작 전, 좋아하는 노래가 있으면 틀어주겠다고 말씀하시며 나를 챙겨주시는 감사한 선생님들 덕분에 악착같이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최유리’ 노래 틀어주세요... 하여 유리 언니의 <바다>를 한 시간 반 동안 반복 재생했다.)

(내 정맥이 바다처럼 다시 원활하게 흘러가기를 원하셔서 다른 노래는 틀어주지 않으셨던 걸까?)


수술이 끝난 후에는 휠체어를 타고 창문 바깥으로 펑펑 내리는 눈을 감상했다. 슬프지 않은 경험이었다. 오히려 낭만 쪽에 가까웠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나를 무지 예뻐해 주시고 챙겨 주셔서, 퇴원이 조금은 아쉬울 만큼 따뜻했다.

6. 하지만,

하지정맥류는 재발률이 매우 높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압박스타킹을 신고 풀리오 마사지를 하고 있다.

왜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피하기 위해서!


여전히 아프고, 오래 걷지 못한다. 경화제가 남아 있는 부분은 수술 후 몇 개월 간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검사를 해야 하고, 추가적인 치료와 수술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정맥에 등급을 매겨서 A, B, C가 있다고 가정하고 정상적인 사람이 A의 정맥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C이고, 수술을 통해 C에서 B로 가는 것일 뿐 평생 A로는 가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시험 성적 A+, 고기 등급 A+인데(먹어본 적은 많지 않다) 정작 내가 B 인간이라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7. 수술 후 한 달간은 운동을 하지 못한다.

(그 핑계로 계속 운동을 안 했다.)

운동을 안 해서인지, 수면의 질이 와장창 무너졌다. 잠에 드는 것이 어렵고, 잠에 들어도 자주 깨고, 아침에 일어날 때의 편두통이 최악이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8. 하지정맥류에 좋은 대표적인 운동이 요가, 수영이라고 한다. 요가는 확장된 혈관으로 인한 붓기를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되므로 하지정맥류에 좋고, 수영은 물속에 있으니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다리에 가해지는 압력이 적을 뿐 아니라 심혈관 활동으로 혈액 순환을 증가시켜 하지정맥류에 좋다고 한다. ​


9. 그렇지만 수영 신규 등록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의 여석은  단 두 자리, 신규 신청은 아침 6시. 수강신청에 성공하기 위해 두 자리에 들어오려면 적어도 전날 밤 10시-11시부터 수영장 앞에 줄을 섰어야 했다. 10시부터 6시까지 추위에 떨며 기다리는 일은 자신이 없었고, 밤을 새울 시간과 여유도 없었다.

결국 요가를 다녔고, 요가는 실제로 매우 좋았지만 나에게는 좋은 만큼의 이상으로 비쌌다.

10. 이런 내가 미루고 미루던 수영 등록에 성공하였다. (수영 등록날의 일기는 따로 없을 것 같지만 기록하고 싶을 만큼 나에게 좋은 기억이었다.) 오랫동안 생각만 해 온 수영을 드디어 등록하다니, 내가 노력으로 무언가를 해내다니(밤샘도 노력이다), 정말, 그 성취감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걷는 것을 좋아하고, 걷는 것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내가 이제 걷기 대신 수영을 한다.

잘하는 것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지만 이 슬픔만큼 수영장에서 얻는 기쁨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과연 걷기보다 헤엄이 좋아질 수 있을까?

드디어 나의 엉성하고도 멋드러지는 헤엄이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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