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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싶은 마음 숨겨두기

2) 환불을 하라니요?

by 망토 Jul 07. 2024

수영 첫날,​ 우리 반의 여석이 두 자리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반 인원들 간의 사이가 무척 좋고 강사님과의 티키타카도 잘 되어서 이 반의 모든 인원이 계속 재등록을 거듭하기 때문이었다. 강습 레일에 도착하니 이미 하하 호호 말씀 나누고 계신 분들이 보였다. 수영장의 악습이라고도 불리는 텃세가 있을 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 반에는 그런 게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다들 어떤 아이 한 명을 두고 그 친구의 작은 한 마디에도 귀 기울이며 귀여워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멍을 때리고 있었더니 주변 분들이 그 아이의 나이를 알려주면서 내가 우리 반 분위기에 소외되지 않도록 해주셨다.

그러나

강사님께서 나에게 ‘어디까지 배우고 오셨어요?’ 물으셨고 나는 ‘자유형이랑 배영까지 작년에 배웠어요‘라고 대답했더니,

“반 잘못 들어오신 것 같은데..

오늘 수업 끝나고 환불하셔야 할 수도 있어요. “

라고 말씀하셨다. 환불? 환불이라뇨?

깜깜한 새벽 동안 추위에 떨며 7시간을 줄 서서 겨우 등록했는데, 정말 기뻤는데, 그때 느낀 성취감은 어떻게 하라고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죠?

강사님은 아마 내가 우리 반 진도에 못 따라올 거라고 덧붙이셨다.


아, 첫날부터 어려움에 봉착하다니, 여기에서도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구나.

다자키 쓰쿠루처럼 수영장 속에서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이상은 꿈꿀 수 없는 거였나, 현실은 현실일 뿐인 건가, 무력하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집으로 가고 싶다.

이왕 괴로울 거면 혼자만의 공간으로 돌아가 괴롭고 싶다. 좌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때 강사님께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시는 듯 말씀하셨다.

“혹시, 반 안내 설명에 뭐라고 적혀 있었어요?

설마.. 평영 ‘킥’이라고 적혀 있었나?“

나는 곧장 대답했다.


“네 맞아요 평영 킥이었어요!! 킥!! 킥킥킥!!“ (웃는 소리, 원숭이 흉내 아닙니다)

“킥 아니면서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니죠?”


“아니에요 진짜 킥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장난이에요 ^-^ 그럼 한 번 볼게요~​”




이런 대화를 한 이유는 모든 영법이 ‘킥’, 그러니까 발차기부터 배우기 시작하는데, 우리 반은 저번 달에 이미 평영을 배워서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간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신규로 들어와 애매해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진도표에 ‘평영 킥’이라고 적혀 있었다면 강사님이 나를 가르쳐 주셔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진도표를 잘못 보고 들어와 버린 상황이 되기 때문에 환불을 했어야 했다.


나는 정말 킥을 보고 들어왔어서, 우리 반 진도표에 ‘킥’이 있었다고 저렇게 필사적으로 토로했다.​


아마도, 반을 결정하도록 만들어주는 ‘안내문’이 강사님들의 재량으로만 온전히 만들어지는 게 아니어서 이런 일이 발생한 듯하다. (안내문에는 반에 따라 요구되는 개인의 수준 및 그 반의 진도표를 설명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강습 시간 동안 강사님께서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고, 분위기를 유쾌하게 이끌어 주셨다.​

그리고 내 동작을 조금씩 교정해 주시더니 ‘아 뭐, 잘하시네~’ 말씀하시곤 1:1로 평영 킥을 알려 주셨다.

(정말 다행이었다. 절대 환불은 할 수 없어 필사적으로 몸을 헤엄친 덕분이었다.)

​​​

킥판을 잡고 방금 배운 평영 킥 동작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에는 킥판 없이 하는 평영 킥을 배웠다.

호흡을 위해 머리를 올릴 때 몸이 하체로 조금 가라앉지만, 이 상태에서 고개를 숙여 평영 킥을 하면 몸이 다시 앞으로 슝~ 나아간다. 그 느낌이 기가 막혔다.

무사하지만은 않았던 수영 첫날이 이렇게 끝났다.




마지막쯤, 강사님께서 나에게 ‘오늘 처음 해보는 거 아니죠?’라고 말씀하셨다. 놀라고 당황해서 ‘네?!’ 하고 대답하니 ​‘진짜 오늘 처음 배우시는 거예요? 처음인데 이 정도면 엄청 잘하는 거예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온갖 못하는 것 투성이라 자존감이 지각을 뚫고 내핵까지 도달해 있는 요즘, 이런 말씀을 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했다. ​


연습하면서 점점 감을 잡았지만, 처음에는 물론 많이 어려웠다. 강사님의 설명을 듣고 동작을 눈으로 볼 때는 다 이해한 것 같은데 내가 직접 하려니까 ‘뭐가 뭐였더라?’하며 삐거덕거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럴 때 잘하고 싶은 마음에 급해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은 완벽하게 아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배운 동작을 잘 완수하고 싶어 다리가 점점 빨라지고, 호흡하는 타이밍을 무사하게 되다가 결국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들을 놓쳐 버리기 때문이다.

<킥판 없는 평영 킥>
두 팔을 쭉 뻗어 양쪽 귀에 붙이는 것이 기본,
다른 동작이 흐트러질 때도 이 기본만은 무너져선 안 된다.

1. 다리 동작을 할 동안 머리를 숙일 때, 고개를 대충 숙이는 게 아니라 내가 수영장 바닥 타일을 다 뚫어 볼 것이라는 이글거리는 심정으로 숙여야 한다.
즉, 몸과 정면이 되게끔 고개를 숙여야 한다.

2. 머리를 들어 호흡할 때, 다리는 다음 동작을 준비하려 애쓰기보다는 발등까지 쭉 펴 다소곳이 모은 채 가만히 있어야 몸이 더 가라앉지 않는다.
이때, 엄지발가락끼리 악수를 시켜준다는 느낌으로 다리를 모으면 어렵지 않다.



<오늘의 강습 리뷰>

1. 동작 순서별 발목의 상태를 잘 기억하기.
2.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급해지지 말고 마음을 가다듬기. 잘하고 싶은 마음을 조금 숨겨두고 물과 어울려야 할 내 몸에만 집중하기.
3. 행동이 마음보다 앞서지 않도록, 이 둘의 타이밍이 비슷하게나마 일치할 수 있도록 한 동작, 한 동작 차분하게 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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