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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정 Oct 26. 2024

세희와 동우 (2)

소설 연재

그날 저녁 카페 마감 시간이 될 때까지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아빠에 관해서였다. 그리고 그것은 동우가, 세희가 추석에도 이곳에 머무는 본질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동우였다. 추석이었으니까. 자취방에 남아 있는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이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시작해버리니까. 세희가 물어본 것도 아니고 설명할 의무도 없었지만 세희에게만큼은 가식적이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사연 있는 사람이 가질 법한 쓸쓸함 같은 것이 자신에게 묻어 있다면 그걸 털어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게 뭐든 꾸밈 없이, 과장도 축소도 없이.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는 본가라고 할 게 없어. 아빠랑은 연락 안 하고."


엄마를 입에 올릴 땐 마음이 시렸지만 아빠라는 존재는 더이상 동우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기에 약간은 덤덤한 어조였던 것 같다. 다만 아빠랑 연락하지 않는다는 건조한 사실이 동우가 카페 문을 열 때 느꼈던 동질감, 반가움 같은 감정들을 세희에게도 전달해줄 줄은 몰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동우의 이야기를 듣는 세희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고. 그 통증은 세희의 마음 깊은 곳에 누적되어 있던 상처들을 후벼팠고 기어이 입밖으로 토하게 했다. 누군가에게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동우뿐만 아니라 세희에게도 처음있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 같지만 나를 흠칫 놀라게 하는 물건이 있다면 하나는 바늘이고, 하나는 비타민 음료야.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아픔을 떠올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 물건이 있다면, 하나는 파리채고 하나는 각목이야."


세희는 아빠에게 처음 맞은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시계열을 거꾸로 해서 기억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방구석에서 울면서 떨고 있는 어린 세희가 있다. 옆에는 같이 울며 떨고 있는 오빠가 있고. 그리고 맞은편에는 파리채를 들고 소리를 지르는 아빠가 있다. 아빠는 주로 파리채의 딱딱한 뒷부분으로 삼남매를 때렸다. 그 기억에 동생은 없는 걸로 봐서 아마도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인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다.


원인은 '바늘'때문이었다. 원인 제공자는 세희였다. 실타래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바늘을 당겼더니 바늘이 쑤욱, 빠졌다. 실 틈으로 단단하게 싸여있는 바늘이 결을 헤치고 나오는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세희는 다시 바늘을 실타래 속에 밀어 넣고 힘을 주어 당겼다. 그럼 다시 바늘이 빠졌다. 쑤욱, 하는 느낌과 함께. 그렇게 혼자 바늘을 꽂았다 뺐다하는 놀이를 끝내고 아무렇게나 바늘을 꽂아 둔채 떠났다. 그게 슬픈 기억의 시작으로 남게 될 줄은 결코 몰랐다. 얼마 뒤 아빠는 바늘을 누가 건드렸냐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세희와 오빠를 구석으로 몰아 넣었다. 세희는 처음에는 파리채를 휘두르는 아빠가 무서워서 자수하지 않고 우물쭈물 거렸다. 파리채가 날라왔다. 그제서야 세희는 내가 그랬다고 잘못했다고 빌었다.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빠는 자수 후에도 세희와 오빠를 똑같이 때렸다. 연대책임의 원인 제공자였던 세희는 파리채 자국이 벌겋게 달아오른 팔을 만지는 척하며 오빠의 눈을 피했다. 파리채도 아팠지만, 아빠의 우악스런 표정과 그 표정을 거칠게 뚫고 나오는 욕설은 어린 세희가 삼켜내기엔 너무도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세희는 바늘을 볼 때면 금기된 무언가를 마주하듯 불편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러나 그 일은 세희에겐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뭐가 문제였을까? 어린이가 바늘을 만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기 위한 경고였을까? 말로 훈육하기엔 너무 큰 잘못을 한 것일까? 자수를 안한다고 그렇게 때렸으면서, 막상 자수를 했을 때도 왜 경감없이 똑같이 때렸을까? 바늘과 아무 상관 없는 오빠는 왜 맞아야 했을까?"


쏟아내듯 울분을 토로한 세희는 지친 기색으로 커피를 쭉 들이켰다. 동우는 세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질감을 느껴야 했다. 지금 자신이 듣고 있는, 이런 이야기의 주체가 정말 세희가 맞는 걸까. 사람에 대한 실망감 같은 것은 표정 없이 살던 자신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세희는 달랐으니까. 세희의 이야기는 그녀가 가진 맑음 그리고 밝음과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비타민 음료도 미스테리긴 마찬가지야. 세희가 말을 이었다. 세희는 그날을 유독 더웠던 날로 기억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냉장고에는 비타민 음료 한 박스가 있었다. 집에 방문한 손님이 주고 간 것이었다. 손바닥에 착 감기는 사이즈의 유리병은 어찌나 시원한지, 세희는 아무 생각 없이 하나를 꺼내 마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 대가를 치뤄야했다. 아빠는 누가 비타민 음료에 손을 댔냐며 소리질렀다. 동생은 언니, 그러니까 세희를 지목했다.


"그땐 동생이 참 미웠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동생 입장에서도 그게 최선이었던 것 같아. 책임자를 명확히해둬야 정상참작 될 여지라도 생기니까."


"여지?"


동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되물었다. 


"기준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쩔 땐 연대책임이고 어쩔 땐 정상참작. 순전히 아빠 기분에 달렸거든."


"그건 좀 가혹하다. 너에게도, 동생에게도."


동우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세희는 옅게 쓴웃음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게.  그렇게 보면 우리 남매가 콩가루가 된 데에는 아빠에 대한 공포가 큰 몫을 한 것 같아. 다들 생존이 고팠던 거지. 아픈 게 싫었고. 아무튼 그날, 아빠의 손에 잡힌 것은 각목이었어."


"다들 어렸으니까."


"정말 슬픈 것은 '아빠로부터의 상처’는 우리 가족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과 감정이라는 거야. 어느날 아침에 아빠는 또 화가 났어. 나와 오빠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고 오빠는 중학생이었어. 아빠가 화가 난 대상은 오빠였어. 이유는 몰라. 무엇이 아빠를 그렇게 분노하게 했을까. 바늘을 건드렸거나 비타민 음료를 마셨거나와 같은 것일 수도 있어.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아빠가 오빠를 발로 차는 모습이야. 여러 번. 오빠는 발에 밀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만 했고."


세희가 길게 숨을 내뱉고 다시 말을 이었다.


"아빠는 오빠에게 학교에 가지말라고 했어. 내게는 학교에 가라고 했고."


"너는 어떻게 했는데?"


동우가 물었다. 세희는 그런 오빠를 등지고 혼자 학교에 갔다고 덧붙였다. 


"비겁한 거 알아. 불가피했다고 변명하고 싶어. 거기 남아있었더래도 아빠의 화를 더 돋구기만 하지 개선되는 것은 없었을 거라고. 나도 초등학생이었다고. 무서웠다고. 다른 남매들도 나를 도와준 적 없었다고. 그렇게 혼잣말을 하다보면 내가 떠나고 덩그러니 서있을 오빠의 모습이 그려지는 거야. 등 돌리고 도망치는 나를 보며 오빠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오빠와 그날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은 없어. 아빠에게 발길질 당했던 오빠는 그래서 몇시에 학교에 갔을지 아직까지도 몰라. 그날의 아침을 내가 아주 선명히 기억하듯 오빠도 기억하고 있을런지, 그것도 몰라."


세희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어느새 동우의 혈관 곳곳을 타고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어느새 세희의 얼굴에는 흥분은 가시고 초연함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저기에 닿기까지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동우의 심장이 저릿 아파왔다. 아빠에 관해서라면 동우에게도 아픈 기억이 더, 아니, 훨씬 많았으니까. 세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동우의 상처에는 폭력은 없었다. 돈이 문제였지. 세희는 반대였다. 폭력이 문제였고, 돈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듯 했다. 누구의 상황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의 상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걸 구분한다고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둘 중 더 나은 사람은 세희라는 점이었다. 동우는 인간에 대한 기대를 거두었지만 세희는 반대였다.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다. 그건 동우의 그릇으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도 참 문제였던 게 그렇게 혼쭐이 났으면 비타민 음료라면 경기를 일으키는게 상정인데, 어린 마음에 그 시원하고 신기하게 시그러운 맛이 아른거렸던 거지. 그건 새 박스였으니 바로 티가 났던 거고 지금은 여러 개가 비워져 있으니 아빠도 몇 개가 남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 않을까, 그렇게 혼자 가설을 세웠어. 그래서 비타민 음료 하나를 가져와서 커튼 뒤에 숨어서 몰래 마시고 있는데 커튼이 확 걷히는 거야. 엄마였고. 어떻게 됐게?"


"혼났어?"


세희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서 뭐해? 한 마디를 던진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청소기를 돌렸다고 했다. 그날 밤, 세희는 공포로 잠을 설쳐야 했다. 왜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나중에 아빠에게 이르려고 그러나?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엄마는 비타민 음료를 마시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 같아."


"아마 아버지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응. 이젠 알아. 그때 아빠는 화풀이 할 곳이 필요했던 거란 걸. 마침 내가 걸려들었던 거지. 그렇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도 많으니까. 다만 나는 비타민 음료를 볼 때면 따끔거리는 마음을 아직도 어찌하지 못해. 아빠는 기억도 못하겠지."


상대방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일을 두고 평생을 싸우는 마음이라면 동우는 천 번이고 이해할 수 있다. 동우도 아버지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아버지가 한 말, '집값이 최고로 높을 때 집을 물려줬다'는 그말을 두고 아주 오랫동안 싸워야 했다. 엄마의 죽음을 그렇게 모함하던 아버지의 말과 동우는 혼자 2년을 싸웠지만 결국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아마 아버지는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찾아가서 따진다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게 틀린 말이냐'고 반박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이것 역시 가능성 높은 가설이다. 만약 그런 말을 듣는다면, 동우는 2년이 아니라 20년 혹은 그 이상 아버지의 말과 싸워야 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래서 인정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이길 수 없다고. 그다음에 따라온 것은 오히려 평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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