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9장
이 장과 다음 장에서는 사료비판을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방법을 탐색한다. 사료비판은 역사의 재료가 되는 사료(기록)의 진위, 객관성 등을 비판적으로 따지는 행위이다. 역사'학'의 기초이자 핵심이 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사를 학문의 영역으로 접근할 때 사료비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료비판은 보통 사람의 잣대에서는 어려운 개념으로 인식된다. 당연한 일이다. '눈에 보이는' 기록 속 '눈에 보이지 않는' 기록 과정의 내면을 파악하는 건 제3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초중등 역사교육에서는 사료비판을 특별히 다루지 않는 형편이다. 사료비판은, 역사학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알아야 하는 개념이지만, 역사교육의 영역에서는 당연히 모르게 되는 개념이다.
사실 사료비판을 몰라도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역사학의 영역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들에게 사료비판을 이해시키는 '교육적 용어'로의 변환이 없으면 지장이 생긴다. 이 점이 사료비판을 효과적으로 교육하는 방법을 수립해야 하는 근거가 된다. 일명 역사학개론, 역사학입문과 같은 역사학 자체를 배우는 수업은 사학 전공생들에게 버거운 수업이다. 배워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생기고, 사학에도 상당히 철학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필자도 그러한 수업을 들으면서 사료비판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대로 배웠고, 실제 사료를 사료비판의 방법으로 분석하는 과제를 수행했었다. 그럼에도 '사료비판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남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의하기에는 어려웠다. 이처럼 사료비판은 전공자, 특히 학부생에게도 쉽지 않은 개념이다. 배워도 의문이 남는 사료비판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교육적 의문을 제기하였다. 아래 질문이 두 장에 걸쳐 다룰 사료비판과 역사교육의 관계를 규정할 핵심이다.
1. 만약 초중등 역사교육에서 사료비판을 경험하는 기회가 있었다면, 역사학으로의 입문, 탐구 과정이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2. 1.이 사실이라면, 사료비판을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경험시키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3. 사료비판을 모름(無知)에서 앎(知)으로 바꾸는 직관적인 교육은 무엇일까?
4. 사료비판이 단순한 학문적 행위가 아니라 삶과 연관이 있는 행위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
야 할까?
위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을 토대로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하나는, 사료비판이라는 학문적 개념을 '누구든 쉽게 이해하는' 교육적 용어로의 변환을 거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료비판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교육 방법론을 고안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전자를, 다음 장에서는 후자를 짚어보겠다. 사료비판과 역사교육의 관계까지 다루면, 이 시리즈는 역사학이 교육으로 가기 위한 소임을 어느 정도 한 셈이다. 그 마지막 여정을 떠나보겠다.
아래는 서론의 내용과 관련하여 참고하면 좋은 글들이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15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20
사료비판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필요할까? 사료비판을 이해하기 위한 첫 질문에 답변을 하는 것으로 본론을 열어보겠다. 사료비판의 필요성은 역사의 불완전성과 연결된다. 역사는 시공간적으로 발생한 모든 일의 집합이고,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기록이 사료이다. 따라서 사료로 과거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만, 과거의 모두를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과거의 재현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방법이 필요하다.
첫째, 교차검증이다. 쉬운 예시로 알아보자. 그간 대선의 승리를 위해 대통령후보를 내세운 정당들이 고군분투했었다. 그리고 그저께,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대통령을 배출한 당과 그렇지 않은 당의 반응이 극명하게 달랐다. 대선에 대한 기억이 각 당에 다른 방식으로 남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이번 대선이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갔을 때, 이를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을 배출한 당은 어떻게 승리했는지, 대통령을 배출하지 않은 당은 어떻게 패배했는지 모두에 대한 분석을 해야 된다. 한쪽 입장에서만 분석을 하면 프로파간다(Propaganda)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 않은가? 양자 혹은 다자가 얽힌 사건을 해석할 때는 어떤 입장에서 쓰인 기록이 있다면, '다른 입장에서 쓰인 기록은 실재하고, 어떻게 기록하였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둘째, 출처 규명이다. 달리 말하면, 사료가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묻은 '원본'인지, 시간의 때를 씻어버리고 내용만을 복원한 '복제본'인지를 판별하는 것이다. 최근 중세의 길고도 깊은 숨결이 깃든 프랑스의 노트르담 성당이 복원되었다. 하지만 복원된 성당은 예전의 성당이라고 볼 수 없다. 왜 그러할까? 성당의 물적인 특성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백미(白眉)라고 볼 수 있는 첨탑은 7~800년의 시간을 꼿꼿히 지켜왔다. 첨탑을 이루는 재료는 역사성이자 곧 '원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복원된 노트르담 성당은 원본 그 자체라고 볼 수 없다. 문화재의 복원을 신중하게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본의 훼손이 일어났을 때 잘못된 방법으로 덧칠하면, 원본은 한순간에 우스꽝스러워진다. 사료는 시간의 궤적이 존재하는지, 그 궤적을 증빙하는 것이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진위가 보장된다.
재질이나 물성에 대한 검토도 사료의 진위를 판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서양 중세의 경우 파피루스, 양피지, 종이에 기록을 남겼다. 이 중 양피지가 처음 등장한 것은 677년 메로베우스(책에서는 메로빙거로 표기했으나, 정확한 표기법은 메로베우스임. 유희수, 『낯선 중세』, 문학과지성사, 2018, p.470-471 참조.) 왕조 때였다. 이후 알프스 북부 지역에서는 더이상 파피루스가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알프스 남쪽에서 발간된 교황 관련 사료의 경우에 10세기까지 파피루스가 계속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전에 작성된 교황 사료 가운데 파피루스가 아닌 것은 위작으로 봐야 한다. …(중략)… 그러므로 진위를 가릴 때 중요한 것은 정교한 변명의 논리가 아니라 기록의 재질 그 자체였던 것이다.
- 최호근, 『역사 문해력 수업』, 푸른역사, 2023, p.132.
셋째, 기록자 파악이다. 기록을 쓰는 사람에 따라 그 기록의 특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쉬운 예시를 들어보자. A와 B 두 사람이 있는데, A가 B에게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저질렀다. A는 이내 수치심을 느껴, B에게 실수를 저지른 것을 비밀로 해달라 부탁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기록할 때 차이점이 발생한다. 스스로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저지른 입장인 A가 기록자라면, 그 실수를 기록으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B가 기록자라면, 기록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누구든 공을 내세우는 걸 좋아하지, 과의 치부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역사는 공과를 모두 봐야한다. 역사를 기록하거나 해석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역사가가 어떠한지에 따라, 역사를 투영하는 상이 달라지게 된다. 기록을 보기 전에, 기록을 '누가' 썼는지도 봐야 한다.
외적 비판 뒤에 등장하는 과정이 사료에 대한 내적 비판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고등 비판(Higher critic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는 기록자의 신뢰도, 기록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기』의 신뢰성은 무엇보다 저자의 강직함에서 비롯된다. 그 저자인 사마천은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면서도 중요한 일들이 세세에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기록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개인적 집단적 이익이나 위협의 유무와 강도에 따라 붓의 방향과 힘이 달라지는 곡학아세형 인물이 남긴 기록이라면 사료의 신뢰 수준은 급락하고 말 것이다.
- 위의 책, p.133.
역사는 역사가의 관점에 따라 변형되므로 편견의 색채를 띠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들의 무지나 오류가 사실을 늘리거나 축소시킴으로써 실제를 왜곡하는 일은 그 얼마나 많은가? 동일한 대상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때 우리는 어느 것이 사실인지에 대해 어떻게 결론 내릴 수 있을 것인가?
- 장 자크 루소, 『에밀』, 이환 역, 돋을새김, 2015, p.252.
이상으로 사료비판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하게끔 설명하였다. 사료비판은 일종의 '서류 심사'와도 같다. 통상적으로 서류 심사는 채용 등을 할 때 1차적으로 행하는 거름망이다. 심사자는 심사 대상자의 서류에 기재된 내용을 보고 내면적인 판단을 거친다. 사료비판에서 사료는 심사 대상자이고, 역사가가 심사자인 셈이다. 역사가는 앞서 밝힌 사료비판의 특성에 따라 사료를 심사하고 참 아니면 거짓이라는 판정을 내린다. 그렇다면 사료비판은 '면접'의 기능은 없는가? 필자는 '그러고 싶어도 못한다.'라고 생각한다. 채용에서의 면접은 서류 심사를 통과한 사람을 소환해 그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료비판에서의 면접은 사료에 기재된 역사상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사료비판은 서류 심사이지 면접까지 이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결국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상이 아니다. 이것을 체감할 때, 사료비판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료비판은 역사를 '사고'하게 만드는 생각의 전환점이다.
사료비판은 왜 교육에 적용하기 어려울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해보겠다. 사료비판은 역사학이 갖추고 있는 고등한 방법론이다. 즉, 사료비판을 제대로 행하려면 수준 높은 사전적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사료를 번역하는 언어 능력, 사료와 관련한 각종 역사적 지식, 스스로 답변을 만드는 논리력 등이 필요하다. 이를 그대로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건 무리가 있다. 십중팔구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사료비판을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면, 학생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서 설명하는 화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1절에서 그러한 화법으로 사료비판을 설명한 것이다. 사료비판을 교육하는 방법론을 고안하기에 앞서, 왜 우리나라 역사교육에서 사료비판을 다루기 어려운지를 우선적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초중등 역사교육의 주요 목표는 역사적 사실의 '이해'이다.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과정에 앞서, 학교에서 '그런 사건이 있었구나.'라는 지식을 전달하는 기초적 단계의 역사교육을 행한다. 이는 당연하다. 역사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 사료비판 같은 학문적 행위를 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사에 관한 이해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시험으로 일원화되어 있다. 그러면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은 이해의 대상보다는 암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암기는 이해를 하면서 자연히 장기기억으로 내면화할 수 있지만, 일정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도구적으로도 행할 수 있다. 후자 방식의 암기는 얼마 안 가 바로 잊히게 된다. 초중등 역사교육의 주요 목표 설정은 타당하지만, 달성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료비판 역시 역사를 이해하는 한 방법임에도 말이다.
초중등 역사교육의 주요 목표 달성 방식 일원화는 교수법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예컨대, 역사 관련 심화 교과목을 개설하여 사료비판을 다루는 기회를 준다거나, 평소 역사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사료를 살펴봄으로써 토론 활동 등을 수행한다면 이상적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의 역사교육은 그렇게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뜻이다. 역사 학습의 종점이 시험에 맞춰져 있다면, 수업도 시험을 치르기 위한 목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진도를 나가는 데 급급해진다. '교사도 역사가처럼 사료를 다루는 훈련을 해야 하는가?'라는 교사의 개인 역량을 따지기에 앞서, 교육 제도상의 문제점이 있다.
한편, 최근 평가원 역사 모의고사나 수능에서는 사료를 변별력을 주는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건 또 다른 괴리를 낳는다. 학교에서의 역사 수업이나, 스스로 역사 교과목을 공부할 때는 개념을 암기하는 방법을 활용했는데, 평가원 시험에서는 사료를 독해하면서 암기한 개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사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평가원 역사 모의고사와 수능의 출제 경향은 학생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시험에서 변별력을 주는 수단으로 사료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평소 역사 수업에서 사료를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역사교육의 본령을 다시금 정립해야 될 때이다. 사료를 시험의 수단이 아닌 교육의 수단으로 써야 한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사학 전공생이 역사학을 다루는 수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건 사료가 초중등 역사교육의 수단으로 제대로 쓰이지 못한 증거이다. 역사는 사실의 나열이 아닌 사료에 대한 비판과 해석으로 이뤄져야 함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은 없고, 학생들은 문제에 쓰인 사료에 설계된 퍼즐을 푸는 방법을 원하고 있다. 역사교육의 영역에서 사료가 쓰여야 할 때는 안 쓰이고, 엉뚱한 곳에서 고도의 수준으로 쓰이는 상황이다. 이것을 바꿔주는 게 역사교육의 본령을 되찾는 출발점이다. 사료비판을 녹여낸 역사교육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될 것이다.
사료비판을 녹여낸 역사교육은 어떤 학습 목표를 갖추고, 어떤 달성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필자는 학생들이 역사를 단편적 사실의 모음집이 아님을 깨닫게 하는 것만으로도 학습 목표로 삼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역사를 매개로 한 주제 탐구 활동을 내실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다만, 달성 방법을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종류의 사료를 수집할지, 학생들에게 어떻게 읽히게 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확실한 정답은 없다. 다음 장에서 밝힐 사료비판을 교육하는 방법론도 하나의 사례 소개(제안)이지 정답은 아니다.
아래는 이 글의 본론의 2절에서 밝힌 문제의식과 관련한 글이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4
번역을 할 때 '잘된 번역', '깔끔한 번역'이란 찬사가 붙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문장, 한 문장 오류 없이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외국 말의 뉘앙스를 모국어로도 그대로 살려내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성공해내면 언어 장벽을 깨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는 길이 열린다.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일반인의 세계, 전문가의 세계로 구분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료비판은 후자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다. 반면, 전자의 세계에서는 생경한 개념이다. 사료비판을 전자의 세계로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은 '번역자'의 책무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학 고유의 특성이 내포된 사료비판을 어떻게 보편성으로 환기시킬지, 사료비판의 방법을 어떤 예시로 들어 뉘앙스를 이해시킬 것인지가 그 책무이다. 이 글에서 필자가 감히 그 역할을 수행해봤다. 후자의 세계에서 정점에 이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자의 세계에 입문은 했고, 전자의 세계 중 하나인 역사교육에도 관심을 가지기에 그랬다.
필자가 인용 자료로 사용한 『역사 문해력 수업』은 역사 그리고 역사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한 교범이다. 책을 읽으면서 '역사학을 이렇게 설명해줘야 하는구나.'라는 영감을 얻었고, '언젠가 이 내용들을 글쓰기에 활용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사료비판과 역사교육의 관계를 다루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현실로 옮기게 되었다. 이 글이 이 책의 서문에서 밝힌 기대 목표처럼 사료비판이 무엇인지, 역사교육에 적용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쉽게 이해하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는 물건 가득한 초대형 창고가 아니다. 그것보다는 약간의 완성품, 단순 가공이 필요한 중간재들, 장인의 소재와 원료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있는 끝없는 대지다.
무궁무진한 소재들이 어떻게 채굴되고 가공되는지, 역사가들이 어떤 자세와 도구로 이 소재들을 역사로 탈바꿈시키는지 차분하게 말해주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렵지 않게, 하지만 공허하지도 않게. 무엇 때문에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말해주는 책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이 역사 전공자는 물론 역사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읽고 생각할 거리가 되길 바란다.
- 최호근, 위의 책, p.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