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라는 눈부신 계절
어떤 시절은 뜨겁게 좋아했던 사람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랬던 시절의 구간이 있고, 내 안에 깊이 각인된 몇몇의 얼굴이 있다. 그중에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이도 더러 있는데 그 사람과 함께 시절도 사라진 기분이 든다.
회사를 그만두고 제과학교를 다니던 시절 S는 나의 실습 짝꿍이었다. 갓 스물의 그녀는 하얀 얼굴에 토끼 같았고. 그런데도 차분하고 섬세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였다. 온 힘을 다해 꿈을 향해 달려가는 S를 보면 내가 더 가슴이 뛰고 뭉클했다. 모두가 새로운 꿈에 도전하고 있었지만 나의 일부는 일생의 첫 꿈을 꾸는 누군가의 곁이라는 게 더 좋았다.
서른이 되는 S를 만났다. 남들처럼이 아니라 자기만의 선택과 노력으로 차곡차곡 삶을 그려가는 사람. S는 여전히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한다.
“변한다는 게, 알 수 없다는 게 축복 같아. 나는 그게 좋아.”
(...)
우리는 확신할 수 없는 서로의 미래를 응원하며 계절이 바뀌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교차하는 시선에 환한 웃음을 보내며 헤어졌다. 서툴던 시간을 지나 이만큼 왔으니 모두가 자신을 더 믿어 보면 좋겠다.
<쓰면서 사랑하게 된 날들> 156~157쪽, 춤추는 바람, 르비빔
<쓰면서 사랑하게 된 날들> 책이 나온 뒤 S가 떠올라 연락했다. 책에는 제과학교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들을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나는 장면이 들어 있다. 친구들 이야기를 썼으니 그 이야기의 주인공에게도 책을 전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여름 방학으로 강릉에서 며칠 묵을 예정이었는데 S가 마침 양양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강릉에 머무는 기간에 만나자고 약속을 해두었다.
S를 본 게 2~3년 전인 것 같은데. 낯선 도시에서 다시 조우한다니 기분이 묘했다. 글로벌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계속 일해 5년 차가 되었다는 소식이 그의 성실과 안녕을 전하는 것 같아 반가웠다. 오랜만이라 S가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했고. 내 마음속 S는 언제나 스무 살의 귀여운 친구인데,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숙소 앞으로 S가 차를 몰고 왔다. 운전을 하는 S라니. 바닷가에서 일하는 동안 피부가 그을어 건강해 보였다. 눈 밑 뽀얗던 피부에는 주근깨가 올라왔다. 앳된 분위기는 사라지고 당찬 인상이 엿보였다. 그런 모습이 조금 어색했지만 그의 성장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S는 바닷가에서 일하느라 까맣게 타버렸다며 지금의 생활을 전했다. 강릉 시내로 운전해 가는 차 안에서 만나지 못했던 기간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에 대한 어떤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나 보다. 한 시절 온통 쏟았거나 서로 주고받았던 마음은. 그때의 인상이 서로의 내면에 각인되나 보다. 제과학교에서 실습 짝꿍으로 지내면서 S와 쌓았던 믿음이 있고 그걸 떠나 그저 S라는 이유로 좋아했던 애정이 있었다. 그 모두를 촘촘하게 엮어 우정이라는 바구니를 짰다. 내가 몇 년 전 운영했던 ‘느린산책’(베이킹 스튜디오)에서도 잠시 같이 일하면서 그 우정에 고마움과 빚진 마음이 더해졌다. S에겐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이 있겠지만 내게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았다. 그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변하고 다듬어져 자신을 만들어갈 테지만, 나는 우리가 함께 했던 시절의 S를 간직하고 싶다. 스무 살의 어리고 풋풋한, 순수한 열정으로 예뻤던 S를 영원히 기억해주고 싶다.
내 안에서 S의 스무 살은 영원을 산다. 과거의 한때를 떠올리면 그 시기를 같이 통과한 사람이 먼저 떠오르곤 하는데 한 시절을 같이 통과한다는 건 그런 의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의 가장 진실된 조각을 서로에게 남기는 일. 그랬던 서로를 기억해 주는 일. 나의 과거는 누구의 기억 안에 살고 있을까. 스무 살, 서른 살... 시절마다의 내 일부는 어떤 이의 가슴에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을까.
S의 손에 이끌려 강릉 시내의 한 카페에 들렀다. 초등학교 앞 주택가에 자리한 카페의 이름은 ‘낮의 정원’. 봄날과 나른한 한낮의 기운이 떠오르는 이름. 전면에 설치된 레몬색 차양막이 잘 어울렸다. 힘주어 꾸미지 않아 여백이 많은 내부의 인상도 편안했다. 흰 벽에 연한 색 원목 테이블과 의자, 화분 몇 개와 한쪽 벽면에 걸린 연두 빛 그림 한 점. 가슴께까지 오는 높이의 가림막을 둘렀지만 전체적으로 오픈된 구조의 주방. 주방을 바라보는 가림막 위에는 자주 쓰는 접시와 그릇을 쌓아 두었는데 그조차 아름다웠다. 테이블 위에 매달린 동그란 형태의 조명도 카페의 이름과 공간에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한쪽 벽에 놓인 철제 선반에 보이도록 놓인 식재료까지 카페 내부에는 모든 게 자연스레 노출되어 있지만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게 눈에 읽혔다. 단정하면서 따스했고 편안하면서 보기 좋았다. 내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공간이랄까. 어떤 면에서는 ‘느린산책’이 떠오르는 곳이었고. 그런 곳으로 S가 안내했으니 그의 취향과 나의 취향이 여전히 맞닿아 있다는 확인 같아 내심 기뻤다. 단순함으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방식에 끌린다는 것.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나의 취향을 인정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상대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더 편안하게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나의 세계가 잠시 선명해진다.
샌드위치와 티에이드를 주문했는데 음식도 카페의 모습처럼 정갈하면서 맛있었다. 좋은 공간 덕분에 기분이 즐거워졌고, 우리는 각자가 따로 지나온 시간을 풀어 서로에게 들려주었다. 언젠가의 외로움과 방황에서부터 현재가 머금은 어느 정도의 만족과 그럼에도 조심스레 품고 있는 미래의 꿈까지. 비슷한 꿈의 조각을 나누어 가졌던 서로의 한 시절을 기억하며 유사한 지점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 그런 이를 마주하는 일이 날이 갈수록 귀해진다. 이런 인연과 우정이야말로 삶에서 피는 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나는 매 시절이 인생의 봄이다. 매해 찾아오는 봄처럼 인생에도 거듭 꽃이 핀다. 우리에게 꽃 같은 이들 찾아온다.
어리고 풋풋한, 순수한 열정으로 눈부셨던 스물의 S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그랬던 이를 오래오래 품고 살고 싶다. 열렬했던 한때를 나란히 통과하며 그는 내게 자신의 진실된 조각을 남겼으니까. S의 스무 살 가장 투명한 마음을 고스란히 바라봐 주었던 사람, 그 기쁨을 누렸던 이가 나일지 모르니까.
한 사람에 대한 한 마음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한 시절 온통 쏟았던 마음은 그 상태 그대로 우리 안에 봉인된다. 그러니 시절마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 모두 안녕했으면 좋겠다. 내게 꽃이었다고 전하고 싶다. 지난봄의 추억처럼 서로의 기억 안에 살다 때로 노랗게 빛나면 좋겠다고.
S는 여름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걸 기억했다 S에게 여름이 담긴 그림책을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S가 나의 딸 서윤에게 여름이 담긴 책을 주었다. 내겐 S가 여름이고 팔월인데. 내겐 당신이 거듭 돌아오는 눈부신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