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회 너 이런 거였어
나의 근무 시작은 교사들보다 10분 빠른 8시부터이다. 찰나의 고요가 지나고 8시 20분 종이 울리면 교무실이 갑자기 부산해진다. 학교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50분 수업과 쉬는 시간 10분, 학교의 시간은 교육 계획서와 수업 시간표에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그리고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 일은 쉬는 시간 10분에 안에 이루어진다.
"선생님들, 잠시만요. 협의회를 하려고 하는데 다들 시간 괜찮으세요?"
2학기 들어서 출근을 시작한 취업부장이다. 그 역시 수업을 마치고 내려와 바쁜 10분을 보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묻는다. 책상 사이 파티션의 높이가 있어서 옆이나 건너편에 앉아있는 사람과 얘기하려면 꼭 일어나서 해야 한다.
협의회를 한다고? 앞쪽에 앉은 취업부 선생님들에게 하는 말이겠지. 나는 해당 사항이 없을 거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들이 날짜를 정하느라 설왕설래하는 동안 아무런 반응 없이 그냥 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한 번도 나를 협의회에 참석하라고 한 적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이번에는 왜 저렇게 공개적으로(?) 하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때 취업부장이 나를 보며 물었다.
"선생님은 왜 대답이 없으실까요? 혹시 그날 다른 일정이 있으세요?"
협의회는 간담회 또는 회식의 학교 버전이다.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어떤 취업지원관의 푸념(?)을 듣고 그 용어의 뜻을 알았다. 그분은 '무슨 일만 있으면 협의회를 한다. 아직 어린아이와 남편이 있어 퇴근 후에 가정으로 다시 출근해야 하는 데 난감할 때가 많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왠지 전혀 싫어하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이 학교가 위 학교와 어떤 조건이 다른지 모르지만 한 학기가 지나도록 한 번도 없었다. 그 협의회 말이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매번 나를 빼고 했다. 취업부 선생님들끼리 뭔가 내가 알아듣지 못할 '은어'를 주고받다가, 일정 시간이 되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한 명씩 빠져나가던 날이 아마 그날이었을 것이다.
그런가 보다 했다. 교사들끼리 긴히 협의할 일이 있겠지. 33년 차 직장인 출신의 내공으로 이 정도는 눈치껏 그냥 넘겨 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해는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섭섭했다. 그런 감정이 대수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썰물 빠지듯 나가고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게 되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먼 하늘이 더 휑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2학기 들어 취업부장이 바뀌고 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나에게 처음으로 협의회 참석 여부를 확인, 아니 상의하고 있는 것이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지만 나는 뒤늦게 사태 파악을 하고 다이어리앱의 일정을 살필 겨를도 없이 '저는 언제든 상관없습니다'라고 순식간에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결국, 나의 협의회 참석 또는 참석 제외는 협의회의 본질이나 기능, 교사들의 고유 영역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부서의 리더인 취업부장이 가진 가치관이나 성향의 문제였던 것이다.
구(舊) 취업부장은 나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 항상 내가 누구인지 나의 본분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러면서도 '제가 안 챙겨 드리면 더 찬밥 신세일 거예요.'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본인이 나에 대해 모종의 배려를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때마다 나는 묻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찬밥 신세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만약 그렇게 계속 보이지 않는 벽과 거리가 존재하였다면 2학기에는 보나 마나 꽤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2학기는 아이들이 현장실습 나가는 시기라서 챙겨야 할 일들이 그야말로 산더미이다.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서식만 17가지가 넘는다. 그만큼 소통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물론, 그런 것들이 원활치 못해 업무적으로 소홀한 부분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일차적으로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갈 것이고, 교육청이나 학부모 등 대외적인 부분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때 그 당사자는 내가 아니라 학교가 될 것이다.
신(新) 취업부장은 자그마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고, 꾸미지 않는 수수한 스타일이다. 40대 중반의 여성으로, 가족들과 살면서 만만치 않은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다고 한다. 잘 웃는 얼굴과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스스럼없이 사람을 대한다. 취업부 업무 경험이 있어 부서 업무 또한 척척이고 처리 속도 역시 스피디하다.
반면, 학생들에게는 엄격한 선생님이다. 업무에 관해서도 단호한 면이 있다. 일종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지난 학기를 휴직했는데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연수를 갔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병가를 낸 것이었다. 이번 학기에는 '단단히 정신 무장하고 복귀했다'라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절치부심했다.
신(新) 취업부장이 온 이후로 가장 달라진 점은 소통이다. 취업부장은 물론, 다른 취업부 선생님들과 업무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대화가 많아졌고 공감하는 부분이 늘어났다. 한마디로 팀워크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단절되어 있던 담임 선생님들과 학생들에 관한 정보 공유량 역시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무 처리의 속도나 완성도가 높아졌다.
심적으로도 외딴섬이나 유령 같다는 느낌을 더는 받지 않게 되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야말로 언덕이 골짜기가 되었다.
취업부장은 내가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았으니 적당한 장소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본인들이 즐겨 가는 곳이 분명히 있었을 텐데 나를 위한 일종의 배려라고 느껴졌다. 평소 주말에 아내와 자주 가던 ㅇㅇㅇ우렁쌈밥집을 제안했다. 마침 메뉴가 인당 예산에도 맞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협의회 장소가 학교 인근이어야 하는데 어디까지가 인근이냐는 지리적 범위, 안건에 어떤 걸 넣고 뭘 뺄지, 출발은 몇 시에 할 건지 같은 사족(蛇足)들로 인해 최종 결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기안이 수정되는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엊저녁 뉴스에 100억이 넘는 국비를 지원받는 어떤 국립대 연구 기관은 100번을 넘게 한우 회식을 했다고 하던데 이 학교에서는 네 명이 12만 원 쓰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엄격한 예산 집행이 중요하다지만 좀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할 때도 막걸리 한 병값은 개인 카드로 따로 결제했다. 저녁 8시 이전에는 영수증에 주류가 적혀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식사를 '무사히' 마치고 마운틴 뷰가 좋고 디저트로 유명한 식당 인근 카페로 이동해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었다.
협의회 장소가 달라졌고, 예산 범위를 초과했을 것이므로 이 계산은 내가 했다. 그게 내 정서에 맞고 속도 편하다. 사실 밥값이나 막걸리값도 그러고 싶었지만, 선을 넘는 것 같아 자제했다.
그렇게 내가 참석한 첫 협의회가 끝났다. 아직 벌건 대낮이었다. 33년 동안 경험했던 기업의 간담회나 회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지만, 어쨌든 협의회라는 테마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이나 새로울 것은 없더라도 '협의'라는 목적에는 충실했던 것 같다.
'나 때'에는 회식에서 빠질 수 없었던 음주에 수반되는 효과 이를테면, 사기충천이나 내적 공감 부분은 살짝 아쉬웠다.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서 협의회라는 이벤트에 나도 한 번 참가했다는데 의의를 두고 싶다. 왠지 남은 기간 취업부 선생님들과 더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구(舊) 취업부장과는 또 다른 신(新) 취업부장의 가치관과 성향 그리고 새로운 리더십 덕분이다.
돌이켜보면, 기업에서 33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남의 탓하며 일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어디에나 좋은 사람 못지않게 그렇지 못한 사람 또한 적지 않았으므로, 그러려니 하면서 맞추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그룹의 리더가 조직에 미치는 영향과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였는지 여러 번 목격하고 겪었다. 그런 원리는 이곳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