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사람이 되려는, 나의 스물여섯 이야기
오늘은 계획처럼 되지 않은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원래 일찍 일어나 시를 쓰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버리고 부랴부랴 정신없이 알바하러 갔고, 오늘은 종일 웃으며 평소보다 더 친절한 알바생이 되는 것을 목표로 D-6을 도전하자는 계획도 틀어지게 되었다.
정신없는 몽롱한 상태와 모자를 눌러 쓴 나의 처량한 모습은 그저 5시간동안 분주하게 일하기 바빴다. 그리고 내 친구에게 혼자 등산 도전했던 이야기를 풀었더니, 오늘 일 끝나고 함께 등산을 하자며 두근거리는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감기에 심하게 걸렸다는 소식을 일할 때 들었는데, 급하게 오늘 약속은 취소되었다.
한바탕 돈까스 맛집의 가게가 조용해지고, 퇴근하게 된 나. (내일은 이 돈까스 가게에서 멋진 도전을 할 계획이다) 여유로운 시간이 찾아오니 그제서야 진정할 수 있었다. 오늘 도전하기로 했던 것도 못하고 계획했던 일들도 못하게 되어서 (기분이 나쁜 쪽 보다는) 영혼이 쏙 빠진 느낌에 가까웠다.
요즘 참 바빴다. 유투브, 브런치, 피팅모델, 알바, 홈페이지 관리 업무(외부 기관), 혼자 잘 돌아다니며 잘 도전하기, 여러가지 생겨난 습관들. 그런데 지금의 바쁨은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자의로 일을 다 벌려 놓은 거라 그럴까? 어릴 때 도장 깨기에 신나게 집중하는 감정과 비슷해서 좋더라. (다 크고 나니 축제의 도장 깨기는 무심해지는 게 아쉬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러면 안 되었는데 늦잠을 잔 걸 보니 피곤하긴 했겠네 싶더라. 그래서 오늘은 힐링 하러 갔다. 내가 무언가를 도전하는 의지가 크게 필요치 않은 힐링을!
살면서 네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네일샵을 찾았다. 참고로 나는 혼자 이렇게 즉흥적인 선택을 하는 타입이 아닌데 요즘은 자꾸 즉흥에 몸을 맡기더라.
네일도 다 돈이고, 난 여윳돈이 그리 많진 않은 청년이라 굳이 받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께서 감사하게도 손을 예쁘게 낳아주셔서 딱히 더 예쁘게 꾸미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예전에 오디션 연기를 준비할 때, 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었다. “난 누가 내 손 만져주는 게 너무 좋아. 그리고 누가 예쁘다고 해줘도 좋고. 꼼지락 꼼지락 대는 건 재밌잖아? 그래서 네일샵 차리려구.” 그 대사를 할 때 캐릭터의 순수함 때문이었을까, 나도 네일을 받아보고 싶었다.
어머 세상에, 마침 50% 첫방문 할인을 하는 곳을 찾은 생활력 좋은 청년은 곧장 예약을 잡고 달려갈 수 있었다.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어머니 제외) 누군가가 나의 왼손과 오른손을 이렇게 소중하게 다뤄준 적은 처음이었다. 그것의 감각이 촉각이 아닌 마음에서 좋게 느껴지더라.
전에 만나던 남자친구들도 내 손을 이렇게 귀하게 여기진 않았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최근 몇 달간 단기 알바를 이곳저곳 다니며 주방에서 일을 자주 했었다. 장갑을 껴도 수돗물이 뜨거워서 뚫고 물이 다 들어오더라. 어떤 날은 양배추 채 썰다가 엄지손가락도 함께 채썰기도 했었다. 불 옆에 둔 뜨거운 그릇을 실수로 높게 들었다가 (그릇을 깨면 안 되는 마음에) 바로 놓지 못하고 제자리에 가져다 두는 긴 (초)단위동안 화상도 크게 입었었다. 춤이나 연기 연습할 때도 피멍이 나면 뿌듯하게 바라보곤 하는 게 나란 녀석이다.
그렇다. 나는 내 몸이라고 함부로 대했다. 내 몸 말고 무엇이 내겐 중요했던 것일까. 우선 나부터 건강하게 생명력이 있어야 좋은 성품도 가질 수 있는 건데. 앞으로 나는 내 몸을 소중히 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입술뜯는 몹쓸 버릇도 여전히 고치려 노력하는 중이고!
네일을 꾸준히 받으며 관리한다기엔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버티고 버티며 살고있는 청년이기에, 적어도 내 몸 구석구석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주겠다는 결심이다! 나를 홀대하지 말자고.
네일 하나 받으면서 여기까지 생각하는 내가 참 엉뚱하지만, 즉흥과 도전이 작은 일이라고 해서 그것들이 주는 힘이 작거나 가볍지 않다는 것에 굉장히 기특한 하루였다.
벌써 D-30챌린지의 기간이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런데 자꾸만 시작하는 기분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나는, 이 기간을 계기 삼아 한바탕 나의 삶이 좋은 방향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듯 싶은가 보다.
혼자 잘 지내면서 느끼는 게 있다. 자지러지게 대폭 웃는 미소 말고, 은은하게 봄햇살 같은 미소가 일상에 더 자주 생긴다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