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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pr 23. 2017

끝나지 않은 비극, 노동자의 죽음

라나 플라자 참사 그 이후,

노동자들의 희생은 잊히고 '기적'만 남았다.     

노동시간은, 작업량이 비교적 많은 기간(가을, 겨울, 봄)은 보통 아침 8시 반 출근에 밤 11시 퇴근으로 하루 평균 14~15시간이었다. 일거리가 밀릴 때에는 물론 야간작업을 하는 일도 허다하며, 심한 경우는 사흘씩 연거푸 밤낮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업주들이 어린 시다들에게 잠 안 오는 약을 먹이거나 주사를 놓아가며 밤일을 시키는 것도 이런 때이다.
.... 요컨대 평화시장 일대의 노동자들에게는 일정한 '노동시간'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아예 없으며 업주가 필요로 할 때에는 언제든지 노동을 해야 했다. 

- 조영래 변호사의『전태일 평전』(p.95, 전태일기념사업회, 2009)


방글라데시는 1980년대부터 '한국'을 모델로 삼아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을 꿈꾸며 섬유산업을 키워오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저렴한 인건비와 젊고 풍부한 노동력으로 꾸준한 성장을 이어오며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의류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방글라데시의 의류산업은 약 260억 달러(약 30조 원) 규모로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의 80%를 차지하며 방글라데시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수도 근교에 4,500여 개의 의류공장이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 노동자의 수는 방글라데시 인구의 약 25%에 해당하는 4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곳 노동자들의 삶은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전태일 평전>에서 묘사한 40~50년 전의 서울 청계천 일대 봉제공장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 대부분이 착취에 가까운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온갖 병을 얻기도 하고 끊이지 않는 사고 속에서 한순간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 2014년 라나플라자 붕괴 현장, 1년이 지났지만 라나플라자 건물 잔해와 뒤엉킨 옷가지와 의류 원단 등이 수습되지 않고 붕괴 현장에 흩어져 있다.  ⓒ DAPLS 신상미

최악의 산업재해, 라나플라자 참사

2013년 4월 24일 방글라데시에서 9층짜리 라나플라자가 무너졌다. 붕괴된 이 건물에는 은행과 상점 그리고 의류 봉제공장이 입주해있었다. 붕괴 전날, 붕괴 징후가 보여 경찰은 대피할 것을 권고했지만, 공장주는 대피했던 노동자들을 다시 공장으로 돌려보냈다. 재봉틀의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건물은 붕괴되었고, 이 사고로 2,500명이 다치고 1,136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였다.     


사고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가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사고의 원인 몇 가지가 밝혀졌다. 붕괴된 라나플라자 건물은 애당초 6층짜리 건물로 시공되었지만, 불법 증축으로 3층이 더 올려졌다. 법규를 무시한 부실시공, 당연시되어온 뒷돈 거래, '괜찮아, 문제없어' 등과 같은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된 '안전 불감증'이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했다.      


반복되는 인재, 사고가 아니라 살인

방글라데시에서는 라나 플라자 참사와 같은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라나 플라자 참사가 발생하기 불과 몇 개월 전인 2012년 11월 24일, 수도 다카 근교 의류공장의 8층짜리 건물 타즈린패션에서 불이 났다. 당시 공장에는 1,150여 명의 노동자가 주문 납품일을 맞추기 위해 야간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상구는 없었고 창문마저 쇠창살로 막혀 있어 탈출은 불가능했다. 대부분이 잠긴 문 앞에서 압사되거나 질식하거나 불에 타 숨졌다. 옥상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불길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24일 저녁 시작된 화재는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진압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망자가 9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수색이 진행되면서 100여 구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됐다. 화재로 11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사람이 다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자 7명이 목숨을 잃는 의류공장의 화재가 또다시 발생했다. 지난 타즈린 공장 화재에 이어 다시 발생한 화재로 분노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에 동참하는 목소리가 사회 각계각층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들은 변화의 바람을 만들지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1,136명의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모두 '예견된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타즈린 공장 화재 때에도 처음 불이 시작된 곳도 불법으로 적재되어 있던 방직물이었다. 화재 경보도 울렸지만, 공장 매니저들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작업을 하라고 지시했다.      


타즈린 공장 화재 사건 후, 산업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활동을 펼쳐온 국제단체인 ‘깨끗한 옷 캠페인’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 90년대 이후부터 2012년까지 의류공장 대형화재만 33번이 발생했고, 500여 명의 노동자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일어나는 기록의 기록을 깨는 최악의 산업재해는 과연 방글라데시만의 문제일까? 참사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사건·사고 또한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몰랐다’, '안타깝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냐'는 변명과 핑계를 대는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라나플라자’라는 시한폭탄의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소식에 안타까워하고 진심으로 슬퍼하지만, 우리가 쓰고 있는 물건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불편해한다. 노동자들의 안전을 무시한 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모는 공장주, 이를 묵인한 글로벌 대기업과 정부 그리고 무관심한 소비자. 그 누구도 이러한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들만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도 변해야 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면, 자신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고 변화를 시작할 용기를 내야 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이제 합리적인 소비를 넘어 윤리적인 소비를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한 지구라는 마을을 함께 사는 세계시민으로서 불편하지만 우리의 생활에서 바꿔야 할 것은 없는지 살피고 스스로 물어야 한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편한’ 내 권리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불편한’ 의무 또한 다해야 한다. 우리의 관심과 용기 있는 실천만이 제2의 라나플라자 참사를 막을 수 있다. 그동안 값싼 옷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나도 컸다.                               


보태기 | 이 글은 독립문화예술매체 <씨위드 Seaweed > 창간호에도 중복 게재될 예정입니다. (원고 송고 : 2017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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