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빗 Jun 04. 2016

아빠와 아버지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되기

오랜만에 가까운 후배를 만났습니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기 너머를 향해 상당한 하이톤으로 "아빠!"라고 부르네요.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너무도 해맑게 "아빠"를 외쳐서 살짝 움찔(?)했드랬죠. 그리고 동시에 살짝 부러웠습니다.


사실 저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러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아주 어릴때가 아니곤 말이죠. 엄한 부모님 때문도,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와 저는 경상도 남자 치곤 꽤 '살가운' 편입니다. (차마 '부드러운' 이라곤 못하겠네요..) 그럼에도 '아버지'를 '아빠'라 하지 않는 이유는 알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어렴풋, 처음 '아버지'라 부른 후, 다신 '아빠'라 불러선 안될 것 같다는 느낌, 그 느낌만이 여전히 남아 있을뿐입니다.




저를 비롯해 제 친구들은 이제 막 '아빠' 소리를 듣게 된 녀석들이 많습니다. 어쩌다 한번 모이면 벌써부터 아이들 얘기에 한참입니다. (엄마들만 그런게 아니랍니다!)


"역시 딸이 있어야 돼, 아들하곤 노는게 다르다니까"

"맞어, 딸아이는 접었다 폈다 하는데, 남자 아이는 기본이 던지고 부시고야"

"둘째 딸아이는 퇴근하고 들어오면 찰싹 붙어서 안떨어지는데, 큰 아들녀석은 내가 오든지 말든지~"


역시나 아빠들에겐 딸인가 봅니다. 여기저기 딸바보 인증하기 바쁘네요.

"그래봤자 결국 아빠는 어릴때만 좋은거지, 딸이든 아들이든 다 엄마한테만 갈텐데 뭐"


스무살, 참 철없던 시절..

스무살, 철없던 시절 그래도 성인이라고 도전도, 넘어지기도 많았습니다. 풋사랑에 울어보기도 하고, 군대라는 꽉 막힌 곳에 갖혀도 보았죠. 세상이 어떤 곳인지,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누군가 알려주는것보다 스스로 알아가는게 중요하단걸 조금씩 알게 됩니다. 전부를 걸어 볼만한 여자를 만나고, 많은 분들 앞에서 결혼 서약도 맺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엇하나 이룬것 없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우리는 '아빠'가 됐습니다.




아들의 눈을 통해 아버지의 세계를 표현해주는, 영화 '빅피쉬'에는 허풍쟁이 '아빠'가 등장합니다. 매일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속 '아빠'는, 항상 멋지고 용감하며 기상천외한 세계의 주인공이지요. 하지만 이제 어린아들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새로운 한 생명의 '아빠'가 되려 합니다.

늘 허풍같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차갑게 이야기 합니다.

"저는 아버지의 일부밖에 볼 수 없어요. 항상 5살 어린아이에게나 어울리는 재밌는 농담만 하시잖아요. 진짜 아버지의 모습은 어디있는거죠?"


영화속 아버지는 이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있습니다. 아들은 늘 장난스럽기만한 아버지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아들은 아버지의 짐을 정리하며 지난 아버지의 말들이 허풍이 아니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아빠'의 큰 인생에 이룬 유일한 것, 수많은 이야기의 종착지는 바로 아들, 자신임을 말입니다.




늦은 밤, 야근에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기다리다 잠들었네요. 잠든 아이 옆에 살짝 입맞추면 새근새근 아기 냄새가 향긋합니다. 전쟁같던 낮의 소란스러움과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들은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지네요. 잘 덮지도 않아 날아가 있는 이불을 가만히 가져와 덮어줍니다. 문을 닫고 나와, 조용히 아이들의 흔적이 남은 장난감들을 정리하곤 합니다.

어린시절, 잠이 든 저에게 까실한 수염을 부비며 술냄새를 풍기곤 했던 '아빠'. 그땐 뭐가 그리도 싫었던지요.

아마 그날의 '아빠'도 오늘의 저처럼 아기 냄새에 위로 받고 싶었나 봅니다.
아빠가 되어보니 '아빠'가 그립습니다.



오늘도 많은 일을 합니다. 부지런히 뛰고 또 달립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많이 지난다고 해도, 제 인생 최고로 이룬것은 저의 아이들일 것입니다.


영화 '빅피쉬'속 '아빠'처럼 언젠가 저 역시 아이들에게 이야기로 남겠지요. 영화처럼 화려하고 다채롭진 않더라도, 언제까지나 친근한 '아빠'로 머물고 싶은 마음입니다. 늘 제가 아이들을 바라보듯, 고향집에서 저를 응원하실 아버지에게 나지막히 불러봅니다.

"아빠!"




-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의 육아일기 -

주변으로 부터의 분리를 극복하기 위한 가족애.. - [분리 불안]

나를 둘러싼 모두에게 감사할줄 아는 마음을 키워주세요 - [고마워 하기]

평범이 갖는 비범함, 당신의 하루를 소중하게 생각하게끔 해주세요 - [비범하게 평범하기]

아빠와 딸이 떠나는 여행길, 미리 겁부터 먹고 있는건 아니죠? - [단둘이 떠나기]

책임감있는 어른으로 거듭나기 - [어른되기]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