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에 쌓여 있는 이자는 얼마만큼 일까
치료가 목적인 의료모델이라면 질병과 싸워 이기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사별의 슬픔은 그럴 수가 없다. 고통을 피하려는 인간 본능과 정반대로 사별의 슬픔을 치유하려면 고통으로부터 달아나지 않고 고통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별에 뒤따르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그것도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별의 슬픔이란 짧게 여러 번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완전히 잊고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순된 현실에 맞춰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다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예전처럼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듯 느낀다. 이 사실을 부정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면 점점 미쳐가는 느낌이 들것이다. 하지만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면 고통이 완화된다. 고인을 ‘보내주면서도 붙잡아두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있음을 깨닫고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은 사별자가 슬픔을 굳세고 꿋꿋하게 이겨내면 칭찬하고 그러지 못하면 우려한다. 실상은 정반대다. 다들 사별자가 너무 슬퍼할까 봐 걱정하지만 충분히 슬퍼하지 않으면 슬픔을 끝낼 수 없다. 슬픔을 통해서만 사별의 고통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
슬픔은 대출금 같은 것이다. 애써 모른 척, 괜찮은 척해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꾸 외면하거나 도망치기만 하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 난다. 그저 실컷 슬퍼하는 것으로 착실히 상환해 나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