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한국시집박물관
- http://xn--zb0b2hu97a1ya31wlzk6ku.org/ (http://한국시집박물관.org/)
관람시간: 09:00~18:00(동절기: 17:30)
관람료: 무료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문의전화: 033) 463-4082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서른네 번째, 한국시집박물관이다.
여기는 강원도 인제에 간다면 필수코스로 추천하는 곳이다. 정말 꼭 가 보길 추천한다.
한국시집박물관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다. 2014년 10월에 개관했다고 하는데 백담사, 여초서예관, 만해마을 등과 설악산의 천혜 자연이 어우러지는 인제군의 복합문화벨트로 이어진다고 한다. 인제 용대리에는 <여초서예관 - 한국시집박물관 - 만해마을>이 바로 이어서 붙어 있다. 좀 더 서쪽 중부 내륙 쪽을 향해 길 따라가면 인제읍에 '박인환 문학관'까지 이어진다. 이 길의 경관이 정말 좋다.
이 길은 설악산 '미시령 옛길'부터 시작해서 '백담사' 들른 후 서예관 - 시집박물관 - 만해마을 - 박인환 문학관까지의 코스가 정말 좋았다. 여기는 자동차든, 오토바이든 달리기 좋은 곳이다. 천혜의 자연 비경과 문학.예술이 만나는 곳이다.
원래 처음 계획한 코스는 미시령과 한계령을 지나 박인환 문학관까지 달리는 경로다.
미시령, 한계령, 조침령로 그리고 인제스피디움의 길이 구불구불해서 코너를 타기 좋은 곳이어서 라이더들에게도 유명한 길이었다. 하지만 한계령, 조침령 경로는 포기하고, 미시령 옛길을 통해 시집 박물관 거처 박인환 문학관까지 이동했다. 시집 박물관 '라이딩 영상'에도 있지만 미시령 옛길은 정말 좋은 라이딩 코스였다.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올라가다 전망대에 도착하면 걸릴 것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의 수평선과 속초의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미시령 옛길이나 울산바위, 한계령에 가게 된다면 바로 이어서 만해마을과 한국 시집박물관을 함께 둘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시집 박물관에 주차하고 들어가면 소나무 숲 정원이 있는데 여기에 '시인의 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수많은 유명한 시인들의 시비도 서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한 명만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백석'을 꼽는다. 잘생긴 모던 보이 '백석'의 시비를 찾아 사진도 찍었다. <멧새소리>라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처음 보는 시였는데, 검색해 보니 요즘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모양이다.
처마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고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백석, <멧새 소리>
'산새 소리'는커녕 '산새' 한 마리 등장하지 않는 시 <멧새 소리>
처마 끝에 명태가 꽁꽁 얼어 고드름이 열렸다. '나'는 문턱에서 명태처럼 파리하게 얼어 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멧새를 기다린 것일까? 산새는 명태와 달리 살아 있는 생명이다. 길다랗고 파리하게 얼어버린 명태와 달리, 산새는 산과 산을 나무와 나무를 넘어 다니며 노래한다. 해가 저물어 서럽게 차가운 저녁, 이제 새도 울지 않을 테니 '멧새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적막하다. 화자는 아마도 '멧새 소리'를 들으려면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가슴에 기다란 고드름이 더 길어질 때까지 말이다. '멧세 소리'는 늘 떠돌아다녔던 백석이 항상 그리워했던 고향일 수도 있을 테고, 사랑하는 누군가일 수도 있을 테고, 잃어버린 조국일 수도 있겠다. 모더니스트 백석의 시답게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가 돋보인다.
시집 박물관은 우리나라 근.현대기의 시집을 체계적으로 전시.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라고 한다. 총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시집을 대여할 수 있는 도서관과 교육공간이 있고, 2층은 상설전시실과 낭송 체험실, 기획 전시실이 있다.
특정 작가에 국한되지 않고 근.현대 시집과 근현대 시문학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기획과 전시구성이 상당히 뛰어나고 볼거리도 많고 얻을 수 있는 정보들도 많았다. 모든 전시들이 한눈에 잘 들어오고 가독성도 뛰어났다.
로비에 있는 시집 전시가 좋았다. 연도별로 비중 있는 유명한 시집들이 꽂혀 있고, 유명한 시들이 프린팅 되어 있어 감각적이었다. 시대에 따른 시문학사의 흐름을 상징하는지 물결 같은 곡선의 디자인이 참신하고 좋았다. 소파에 앉아 시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는 시집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1층은 시집을 읽고 쉴 수 있는 공간이고, 전시는 2층에서 이루어진다. 요즘 종종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계단이 아닌 낮은 경사의 긴 경사로로 되어 있어 장애인 비장애인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해 놓은 점이 마음이 들었다.
2층에 올라가면 시문학사의 흐름과 각 시기별 주요 작품과 시집이 소개.전시되어 있다.
첫 전시는 1900년부터 각 10년 간을 대표하는 작가와 시집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근현대 시문학을 다루고 있으니 1900년대에는 최남선과 이광수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1930년대 중반 이후 결국 친일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으로 올리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다. 또한 1960년대의 고은 시인은 미투 운동 때 성추행 논란이 있었고 이후의 대응 태도 때문에 더 논란이 되었다. 5년 뒤 슬그머니 발표한 시집마저도 거센 반발로 출판사의 공급 중단 사태까지 있었다. 심지어 고은시인이 피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고 대법 상고를 하지 않아 법적 분쟁은 종료되었다. 이후 사과도 입장 발표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세 작가들 밑에는 별도의 문구가 있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으나 시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친일문제는 우리 문학사에서 항상 거론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음으로써 친일 작가들이 해방 이후에도 작가로서 떳떳하게 활동을 해 왔기에 더 논란이 되는 건 아닐까 한다. 학교에서 배웠던 최초의 근현대시와 소설. 최초의 현대시(신체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 최초의 자유시 주요한의 '불놀이', 최초의 현대소설 이광수의 '무정'. 우리 문학사의 큰 족적을 남긴 이 네 명의 작가들이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00년대부터 시의 주요 흐름과 특징, 주요 작가와 시집, 디지털 화면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리 시가 근대시의 과도기적 모습을 딛고 현대시의 면모를 띄며 발전하기 시작한 1920년대부터는 시집도 많고 소개된 작가도 많았다.
김소원, 한용운, 정지용, 김억 등 많은 작가들이 있다. 최초의 자유시를 주요한의 '불놀이'로 꼽는데, 사실 김억의 '봄은 간다'가 현대적 자유시의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는데, 불놀이 보다 두 달 앞서 발표되었다. 내 개인적인 견해지만, 아무래도 '봄은 간다'를 최초의 자유시로 정리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밤이로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을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 김억, <봄은 간다>
'불놀이'와 마찬가지로 낭만주의 작품이다. 그래서 감상적인 퇴폐미가 흐른다. 그저 우울하고 애달프고 서글프다. 희망, 새 생명인 '봄'이 끝나가는 늦봄. 그런데 시간적으로도 어두운 '밤'이다. '늦봄의 밤'. 어둡고 침울하다. 암울한 시대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상실의 시대. 시대의 고뇌가 봄밤의 감상으로 치환되고 있다. 낭만주의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암울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행동은커녕 다짐이나 의지도 없다. 1919년 3.1 운동 실패 이후 패배적 상실감이 퇴폐적 낭만주의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전시가 너무 잘 되어 있었다. 작가별로 작품을 찾아 디지털 화면으로 읽어 볼 수도 있고, 시집에 대한 설명도 볼 수 있다.
각 시기별로 문학사 정리가 잘 되어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 좋을 것 같다. 학교에서 문학 시간에 배웠던 작가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나서 반갑기도 하고, 친근하기도 했다. 미술관, 박물관, 문학관 같은 곳에 가면 모르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집 박물관은 다르다. 아는 작가들과 작품이 많아 더 친근하고 즐겁다. 게다가 '문학의 흐름' 단원 같은 데서 배운 내용도 잘 정리되어 있어, '아는 내용'이다.
시문학파기념관(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17)에서 만난 박용철, 김영랑 시인,
박목월(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24),
이육사(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28),
조지훈(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30),
아내와 함께 방문했던 김달진문학관(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8)의 김달진 시인
마산문학관(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4)에서 만날 수 있었던 천상병 시인,
박재삼(https://brunch.co.kr/@dccf2b522a5a488/7) 시인까지.
문학관에서 만난 시인들을 여기서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특히 김달진 문학관은 아내와 진해 라이딩 겸 함께 다녀왔었는데, 아내와 나는 김달진 시인을 기억을 하고 여기서 다시 만나 반가워했다. 만일 김달진 문학관을 가지 않았다면 이름 석자 보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다.
한국시집박물관은 이름부터가 문학관이 아니고 '박물관'이고, 희귀 시집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곳 정도로 생각했다. 그래서 관람 시간도 짧게 잡았다. 그래서 점심 식사 후 시집 박물관은 간단히 둘러보고 만해마을과 박인환 문학관을 여유 있게 관람하면 숙소에 좀 일찍 들어가 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시집 박물관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 버렸다. 구성이 잘 되어 있어 시대별로 시문학의 흐름을 하나씩 읽다 보면, 작가들이 보이고 작가들을 보다 보면 아는 작품들이나 학창 시절 배웠던 작품들도 눈에 띈다. 그러다 보면 화면에 있는 작가와 시들을 터치하며 검색해 보고 또 전시된 오래된 시집들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 버렸다.
전시실 끝부분에는 체험공간이 있다. 체험 코너 한 곳이 고장으로 다 체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전시 자체가 관람객 중심으로 잘 꾸며져 있어 충분히 좋았다. 김수영과 이상 시인의 시와 삶을 영상으로 구성한 별도의 코너가 있었는데, 매번 바뀌는 코너인 것 같았는데, 확실치는 않다.
'한국시집 박물관'은 설악산으로 여행을 간다면, '만해마을'과 함께 필수코스로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다.
그리고 특별 전시로 밥상의 기억이라는 '소반'과 시를 함께 전시하고 있었는데, 시집 박물관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내는 바람에 대충 훑어만 보고 나왔다.
시집 박물관에서 천상병 시인의 '새'를 읽었다. 워낙에 유명한 시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참 좋은 시라는 걸 새삼 느꼈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호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는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 천상병, <새>
한 줄 느낌
- 어떻게 하면 관람객들에게 우리 근현대시를 잘 보여줄지 고민한 흔적이 가득한 박물관.
한 줄 평
- 전시의 구성, 기획 등 모든 면에서 손에 꼽는 문학관으로 강원도 인제 관광의 필수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