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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수 Sep 07. 2017

수면제, 복용 1년 만에 드디어 줄였습니다

우울과 불면, 불안을 상대로 한 길고 긴 싸움

2015년 12월, 처음 정신과에 방문한 이후를 문득 돌아봤습니다. 조각난 내면을 쓸어 담아 양손에 안고 병원의 문턱을 넘었던 그 날을. 당시엔 모든 게 버거웠고, 하루하루가 형벌 같았습니다. 매일 밤마다 축축한 절망 속에 발을 담근 기분이었고, 제발 다음날 아침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빌었습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날은 밝았고 출근할 때마다 우울함을 감추려고 웃는 얼굴을 가면처럼 쓰고 살아야 했습니다(관련 글 : 우울증과 함께한 날들).


어느덧 1년 하고도 6개월이 훨씬 넘게 지났습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지난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그리 오랜 나날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식으로 버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처음 불안 장애와 우울증으로 괴로웠던 날보다 이제 많이 나아졌습니다. 매주 상담을 받고 꾸준히 약을 복용하면서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더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난 사실 진작 죽어버렸어야 맞는데 괜히 미련하게 버티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이젠 꼬리를 물지 않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의 바닥이 사라지고 추락할 것 같은 불안이 죄어오는 빈도도 줄었습니다. -우울이 호전된 것인지, 그저 내 감정이 무뎌진 것인지 가끔 회의적일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가 맞다고 봅니다.



우울과 불안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그 깊이도 같이 줄어들었습니다. 흔히 '우울은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우울과 불안은 감기 걸렸을 때 며칠 쉬고 약 먹으면 그러는 것처럼 '씻은 듯이 낫는' 증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떨어트릴 수 없는 신체의 한 부분처럼, 계속 지니고 살아야 할 삶의 일부라고 여기기로 했습니다. 다만 불안과 우울을 '조절 가능한 범위'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개인적 비극을 보편적 불행으로 바꾸기


상담과 투약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시작한 운동을 쉬지 않고 같은 기간 동안 꾸준히 해왔습니다. 헬스장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가볍게 하는 정도지만 복잡한 생각이 들 때 머리를 비우는 효과로 충분했습니다. 꾸준히 운동하면서 조금씩 체력이 좋아진 것도 좋은 효과였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비쩍 말랐던' 모습에 콤플렉스가 심했는데, 어깨가 조금씩 넓어지고(스무 살 이후로 평생 티셔츠 사이즈가 100이었는데 최근 105로 늘어났습니다) 하체가 두꺼워지면서 자기혐오를 벗겨내는 데도 도움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체중이 15kg 정도 늘어나긴 했는데, 뭐 크게 신경 쓰진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의 역할은 불행을 행복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개인적 비극을 보편적 불행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프로이트가 말했다고 하죠. 상담을 받으면서 그 말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만난 정신과 의사는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공감해주는 좋은 선생님이었지만, 나의 문제나 고민에 대신 판단해서 답을 내려주는 역할은 아니었거든요. 당연하게도 그 역할은 온전히 제 몫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지나치게 자책할 때, 부담과 압박을 느낄 때, 불안과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그러지 않아도 된다'거나 '충분히 불안(우울)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그런 감정을 느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사소한 위로의 말들이 쌓여서 제게 큰 힘이 됐음을 느낍니다. 작은 언덕을 넘는 일조차 힘겨웠던 순간에 '급하게 뛰어가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고 할까요. 나를 다그치고 재촉하는 일 투성이인 일상 속에서 진짜 필요했던 말은 그런 것에 가까웠던 거겠죠.


오히려 우울에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내가 아는데 우울증이란 말이지', '지금 네 문제란 어떤 거냐면 말이야' 따위의 참견이나 장황한 말을 들었더라면 정말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난 익사하고 있는데 넌 물을 설명하고 있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말이죠.


수면제 복용 1년 만에 드디어 '완전히' 끊었다


우울증이 심해졌던 건 크게 보자면 두 차례였습니다. 2015년 12월 우울증이 심해져서 자살을 매일 떠올리게 됐고, 이후 완화되는 듯했다가 2016년 6월 다시 심해졌습니다. 그때 악화되면서는 불면증까지 동반됐죠. 우울증을 앓기 전에 저를 알던 누군가는 '네가 불면증이라고?'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전 평생 '베개에 머리만 대면 곧장 잠드는' 타입으로 살았거든요. 그리고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자는 편이었습니다. 그랬던 지라 불면증은 낯설었고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더 어렸던 시절, 지인이 불면증을 앓는다고 털어놨을 때 '잠이 오지 않으면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 좋겠다' 같은 철없던 소릴 했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잠들지 않고 일해야 할 순간이 아니라, 피곤과 우울에 지쳐서 잠들고 싶은데 도무지 잠들 수 없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땐 몰랐죠. 지금이라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사과하고 싶을 지경입니다. 약의 기운이 아니면 잠들 수 없을 정도의 불면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고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울증을 앓는 기간 동안 타투도 몇 개 새겼습니다. 평생 처음 새긴 타투는 우울증을 앓기 전에 새겼는데, '비록 세상이 고통스러운 것들로 가득할지라도 또한 그것을 이겨내는 것들로도 가득하다'는 문장이었습니다. 우습게도 타투를 새길 땐 누가 한 말인지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헬렌 켈러가 남긴 말이더군요.


우울증을 앓기 전에도 타투를 더 하고 싶었지만, 우울한 나날을 보내면서 뭔가 의미를 새기고 오래 곱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헬렌 켈러의 말을 새겼던 것처럼, 잊지 말아야 할 의미를 담아 문양을 남기고 매일 거울 속에서 확인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매번 새겼던 타투들은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손목에 새긴 세미콜론 타투도 그렇고요(관련 글 : 세미콜론 타투를 새겼습니다). 그 힘은 순간적이라기보다 지속되는 편이었고,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다시 수면제 얘기로 돌아오면, 지난 4월부터 복용량을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루 1알씩 잠들기 전에 먹던 걸 하루 반알로 줄였고, 5월과 6월부터는 그마저도 가능하면 안 먹고 자는 걸 시도했어요. 그러다가 6월에 들어서는 수면제에 의지하지 않고도 잠들 수 있게 됐습니다. 8월부터는 항불안제 복용량도 조금씩 줄이고 있습니다. 목표는 항우울제까지 모두 줄이는 것이겠지만, 의사와 상담하면서 천천히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해 약을 줄이려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서두르진 않으려고 합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약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도움을 받으라는 겁니다. 제가 정신과에 다니기 전에 '감기에 걸리면 감기약 먹는 것처럼, 우울증에 걸리면 항우울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다'라는 직장 상사의 조언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말이 괜한 편견에 넘기 꺼리던 정신과의 문턱을 넘게 만들었고, 이후 증상이 나아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수면제도 마찬가지겠죠. 안 먹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필요할 땐 먹고 잠을 자는 게 훨씬 좋습니다.


언제 다시 우울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지, 불안이 발 밑에서 나를 잡아당길지도 모르겠죠.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추락하지 않을 자신이 생겼습니다. 여전히 일상의 울타리는 좁은 상태라서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고 지내고 있지만, 크게 불만은 없습니다. 여전히 살아가고 있고, 그게 크게 괴롭지 않은 정도로 만족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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