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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signer MYO Nov 20. 2018

day 58. 소울 푸드 : 꼬리곰탕

이 와중에 꼬리곰탕을 끓입니다.

잠을 제대로 잔 게 언젠지 모르겠다. 아파서 못 자고, 무서워서 못 자고.. 그래도 지난 6일 동안 잠이 오지 않았던 건 아무래도 약 때문이었나 보다. 약을 먹지 않았더니 드디어 해가 뜨기 전에 잠들 수 있었다.


9시쯤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방 안이 캄캄했다. 요즘엔 항상 스탠드를 켜놓고 잔다. 분명 끈 기억은 없다. 버튼을 눌러보니, 켜지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히터가 돌아가는 소리도, 냉장고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밖에 나가서 확인을 해보니, 전기가 나간 듯했다. (정말 가지가지 한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해야겠지만(안젤리카는 뉴욕으로, 알시노는 LA로 떠났다. 같은 날 나도 샌프란시스코에 가려 했지만, 몸이 좋지 않았던 관계로 혼자 매디슨 빌딩에 남아 있다.) 이런 단순한 일조차 처리할 기운도, 더 놀랄 기운도 없었다. 일단 다시 침대에 누웠고, 조금 더 자고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동고 안을 보니 아프기 전에 사다 놓았던 소꼬리와 잡뼈가 보인다. 여기서 만난, 공부하느라 힘든 한국인 동생과 함께 먹겠다고 사다 놓곤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전기가 나간 덕에 제법 녹아 있어서 다시 얼렸다가 나중에 먹긴 힘들어 보였다.


왠지 처량해 보이는 저 고깃덩어리가 지금의 나 같아서.. 버리고 싶진 않아 찬물에 담가 두었다.

(전기는 1시간 후에 갑자기 들어왔다. 어찌  건지 나도 모르겠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날 때마다 물을 한 번씩 갈아줬고, 5시간쯤 지나 핏기가 다 빠졌을 무렵, 냄비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초벌로 10분 정도 끓인 다음, 고기와 냄비를 깨끗이 씻어 다시 끓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온도 조절이 가능한 가스레인지라 깜빡 잠이 들어도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듯했다. 2시간쯤 끓이니 그래도 제법 고깃국 냄새가 난다. 기름을 좀 제거하고 넣었어야 하는데, 그럴 정신이 없었다. 하하.. 그랬더니 기름이 둥둥. 그래도 파를 넣고 국물을 조금 마시니 기운이 나는 것 같다.

물을 조금 더 붓고 중불에서 2시간 정도 더 끓였다. 하루 종일 냄비에서 꼬리곰탕이 끓고 있으니 집 안에 온기가 가득하다.

2~3시간 후 꼬리는 건져 살을 발라내고 뼈는 다시 탕 속으로.

냉장고에 넣어 식힌 후, 기름을 싹 걷어내고 한 번 더 끓였더니 뽀얀 국물이 우러나온다. 진짜 꼬리곰탕이다.

다른 건 필요 없다. 송송 썬 파와 소금을 조금 넣으니 훌륭한 한 끼다.

이 와중에 살겠다고 꼬리곰탕을 끓이는 내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지만, 하루 종일 끓인 꼬리곰탕이 진짜 나를 살렸다. 시간마다 확인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 했고, 덕분에 가려움증과 통증도 아프다는 사실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펄펄 끓여 댄 덕분에 집 안엔 온기가 가득했고, 구수한 냄새는 긴장한 마음을 녹여주었다.


큰 냄비가 바닥을 보일 때쯤엔, 나도 완전히 괜찮아져 있기를.

앞으로 몸과 마음이 아플 땐 꼬리곰탕을 끓여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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