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열세 번째 책.
저자 김영하 / 문학동네 / 2014.09.18
부자에게든 빈자에게든 주어진 시간은 똑같다. 다만 그 가격이 다르다. 부자의 시간은 비싸고 빈자의 시간은 싸다. 소득을 시간으로 나누면 재벌 그룹 총수가 한 시간에 버는 돈이 평범한 샐러리맨 김대리가 일 년간 버는 연봉보다 많을 것이다. 소득이 높으면 휴식의 가치도 덩달아 치솟는다. 예컨대, 하루에 천만원을 버는 성형외과 의사에게는 하루의 휴식이 천만원짜리가 된다. 반면 하루에 십만원을 버는 노동자에게 하루의 결근은 십만원짜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고소득자 중에 일 중독자가 많다고 한다.
- 10~11p -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감수성이 발달한 부자들은 점점 스마크폰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뉴욕에서 유행하는 '폰 스택(Phone Stack)' 게임을 소개했다. 룰은 간단하다. 고급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할 때 모두의 휴대폰을 테이블 한가운데 쌓아놓고는 먼저 폰에 손을 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것이다. 이 게임은 얼핏 보기에는 스마트폰에 주의를 빼앗기지 말고 대화와 식사에 집중하자는 건전한 뜻을 품고 있는 것 같지만, 파워 게임의 면모도 있다. 더 오랜 시간 스마트폰에 무심할수록 더 힘이 강한 사람, 더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모두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들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이, 지위가 낮은 이들의 스마트폰 의존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 부자나 권력자와 달리 사회적 약자는 '중요한 전화'를 받지 않았을 때의 타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 12~14p -
스티브 잡스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을 더 나쁜 방향으로 실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가난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드린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 15p -
남의 위험은 더 커 보인다. 반면 자기가 처한 위협은 무시한다. 그게 인간이다.
- 90p -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파국을 상상해보는 것은 지금의 삶을 더 각별하게 만든다. 그게 바로 카르페 디엠이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은 그렇게 결합돼 있다.
- 90~91p -
"삶이 이어지지 않을 죽음 후에는 전혀 무서워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에게는 삶 또한 무서워할 것이 하나도 없다." - 알랭드 보통 <철학의 위안>
- 90~91p -
우리는 정보와 영상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원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고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않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 208~20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