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증 지방간

by 이곰

23년여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퇴직한 지 3년째 접어들었습니다. 퇴직 후 1~2년은 그냥 쉬어도 좋으련만 그동안 살아왔던 습관은 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파워 J'답게 계획을 세우고 해내려 애쓰고 못하면 속상해하고 잘하면 또 다른 걸 계획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진도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청년 시절처럼 나를 채찍질하기에는 이제 나이가 들었고 무언가를 하려면 힘에 부칩니다.


갱년기 시즌 초입이고 심각한 갱년기 증상은 없지만 몸의 변화는 감지되고 있습니다. 뭐랄까.... 온몸 여기저기, 구석구석에 붙어있던 접착제들이 오래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느낌입니다. 40대 후반에는 몸이 피곤하고 무기력한 정도였는데 나이의 앞 숫자가 '5'로 바뀌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기하고 있던 신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 처음 이석증을 경험하며 공포 체험을 하였고 평생 한 번도 안 걸렸던 A형 독감과 코로나 난리였을 때도 안 걸렸던 코로나에 동시 감염되었습니다. 가끔 몸이 훅 더워지며 땀이 확 나기도 했습니다. 갱년기 선배 왈, 본인은 이 증상이 심해져서 안면홍조가 생기고 밤에 잠을 못 잤다고 했습니다. 오른쪽 치아 금니가 빠져서 재공사를 했는데 한 달 후 젤리를 먹다 왼쪽 치아 금니가 빠졌습니다. 젊었을 때 치료받았던 치아가 중년이 되면 비슷한 시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자기 관리는 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한꺼번에 터지는 갱년기 지뢰밭을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갱년기는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것을요. 물론 갱년기 증상은 완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떨어지면 붙이고 느슨해지면 덜 느슨해지도록 손 볼 수는 있지만 청년 시절 컨디션처럼 보수할 수는 없습니다.


아침에 TV를 켜면 모든 채널에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 나옵니다. 그중에 많은 부분이 갱년기를 맞이한 여성 건강에 관한 내용입니다. 오전 TV 주 시청층인 중년 여성을 잡기 위한 편성이겠지만 갱년기를 겪으며 다양한 질환을 겪는 여성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40대 초반만 하더라도 TV에 갱년기를 겪는 여성들이 나오면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면서 자기 관리하면 되지 왜 저렇게 유난일까?'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갱년기 시즌을 지나며 보니 그렇게 쉽게 할 말은 아니었습니다. 반성합니다.


저도 모르게 갱년기 여성 건강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에 눈길이 가고 홈쇼핑에 나오는 갱년기 관련 건강보조식품을 유심히 보게 됩니다. 엄마 지인 분이 건강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을 하나둘씩 사다 보니 식탁에 건강보조식품이 가득 쌓여 난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그분이 좀 한심했는데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그러셨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갱년기 시즌을 보내던 중 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모든 수치가 나빴습니다. 낮아야 할 수치는 높았고 높아야 할 수치는 낮았습니다. 가장 큰 충격은 ‘경증의 지방간’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숫자로 건강 상태를 확인하니 지금까지 해 왔던 방식과 강도로는 건강 유지가 어렵다 판단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고 집 근처 운동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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