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가나 이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 생활 당시 늦은 승진 덕분에 나이에 비해 실무를 오래 맡았고, 자연스럽게 나이 어린 후배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았다. 업무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젊은 친구들의 특징이나 말투, 행동 등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후배들과 대화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몰래 찾아 외우고, 점심을 함께할 때는 대화 주제를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 가기도 했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후배들도 나와 함께하는 점심시간을 즐거워했던 것 같다. 퇴직 후에도 연락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렇게 믿고 싶다.
이런 경험 덕분에 퇴직 후 젊은 사람들과 무언가를 함께할 때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 봉사활동을 하는 곳에서도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게 되는데 젊은 친구들의 특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보니 예상보다 부드럽게 일이 진행됐다. 그래서 변화에 적응하는 데 나름 자신이 있었다. 회피하기보다 직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시도를 앞두고 주저하는 내 모습도 보인다. 크로스핏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덤벨이나 케틀벨을 이용한 웨이트 동작은 어느 정도 경험이 있어 괜찮았지만 바벨을 사용하는 동작은 쉽지 않았다. 특히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릴 때 순간적인 두려움이 느껴졌다. 바벨 동작은 좌우 밸런스가 맞아야 안정적으로 들 수 있는데 나는 오른손에 비해 왼손 근력이 많이 약하다. 무게가 조금만 올라가도 좌우 균형이 깨지곤 했다. 처음에는 두려운 마음에 와드(WOD)에 바벨 동작이 포함된 날은 운동을 쉬기도 했다. 하지만 크로스핏에서 바벨은 반드시 다뤄야 하는 도구였다. 바벨을 제외하고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은 제한적이었다.
피하기보다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가장 불편했던 부분은 왼손 엄지손가락 통증이었다. 바벨을 들 때 엄지손가락이 닿는 부위에 통증이 생기고 물집이 반복됐다. 통증이 생기면 왼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그 영향으로 자세도 불안정해졌다.
통증과 물집을 줄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실리콘 보호대부터 각종 테이프까지 여러 가지를 시험해 본 끝에 자가 접착 밴드를 사용하게 됐다. 접착제가 없어 제거 후에도 손에 끈적임이 남지 않았고 쿠션감이 있어 엄지손가락에 몇 번 감아주면 통증도 줄고 물집도 생기지 않았다.
바벨 동작이 있는 수업 날에는 미리 집에서 30분 정도 준비운동을 한다. 전신 근육이 동원되는 동작이라 관절과 근육을 충분히 풀어두지 않으면 어깨, 무릎, 발등까지 통증이 이어질 수 있다. 준비운동을 마치고 엄지손가락에 밴드를 감고 손목 보호대를 단단히 착용하면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영화 속 복서가 링 위에 오르기 전 마우스피스를 끼고 손에 밴드를 감으며 집중하는 장면과 비슷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할 수 없는 이유부터 찾게 된다. 나이가 많아서,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등 여러 이유가 떠오른다. 용기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안 되는 이유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 이유만 크게 보이고 다른 선택지는 보이지 않게 된다.
앞으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과 사람들, 그리고 몸과 마음의 변화를 계속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바벨을 들어 올리던 내 모습을 떠올리려 한다. 젊었을 때라면 더 무거운 무게를 들고 더 멋진 자세를 만들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몰아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몸 상태에 맞춰 무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꾸준히 연습하는 모습,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