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을 하면 매일 보는 단어 WOD(Workout Of the Day, 이하 와드). 쉽게 말해서 ‘오늘의 운동’이란 뜻입니다. 그날 진행될 운동 동작들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크로스핏을 한 지 10개월 정도 되었는데도 와드에 새로운 동작이 많아서 수업 전에 하나하나 검색해서 동영상을 보고 수업에 들어갑니다. 예습을 하는 거죠. 그런데 오늘 와드에 ‘Wall walk’라는 동작이 있습니다. ‘벽을 걷다’ 단어 자체가 무섭습니다. 수업을 들을까 말까 고민이 됩니다.
그런데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벨을 처음 만났던 날입니다. 그날은 와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체육관에 갔습니다.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때라 수업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날 와드에 바벨 동작이 있었던 겁니다. 덤벨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바벨이라니……. 무언가를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을 한 번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코치님에게 “저 너무 무서운 데요” 하고 진심을 말해 버렸습니다. 창피했지만 겁이 덜컥 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졸지에 바벨을 들어야 했으니까요.
코치님이 말했습니다. “처음이라 무섭죠? 플라스틱 막대기를 드시면 됩니다.” 플라스틱 막대기? 다른 사람들은 폼 나게 바벨을 드는데 그 속에서 플라스틱 막대기를 들고 있는 내 모습도 좀 이상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무서움의 크기가 더 컸기에 코치님이 하라는 대로 플라스틱 막대기를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보자에게는 무리하게 바벨을 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플라스틱 막대기를 들면서 자세가 익숙해지게 한 다음 바벨을 들게 합니다.
코치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업 전에 와드를 공지할지 말지 항상 고민이라고. 회원들이 새로운 동작이나 본인이 잘하지 못하는 동작이 와드에 포함되면 수업에 안 들어온다는 겁니다. 동작이 어려울수록 더 연습해야 하는데 반대로 피한다는 거죠. 그래도 회원들이 수업 내용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공지한다고. 저 같은 회원이 많은 겁니다. 하지만 바벨을 처음 접했던 날 와드를 보고 겁에 질려 수업을 듣지 않았으면 바벨을 경험하지 못했을 겁니다. 덕분에 지금은 가벼운 무게의 바벨 동작은 어느 정도 따라 합니다.
그래서 ‘Wall walk’ 벽을 걷는 동작이 포함된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하면 코치님이 대체할 수 있는 동작을 알려주기 때문에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날 모인 저를 포함한 4명은 수업 시작 전부터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어찌 내가 벽을 걸을 수 있으랴. 벽을 걷는 동작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동작 2개를 먼저 연습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드디어 벽을 걷는 동작!!!. 단계별로 진행되는 코치님 동작을 눈이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코치님이 저에겐 팔로 버티는 동작까지만 진행하라고 했습니다. GO!. 조심조심 팔로 버티는 동작까지 하는데 손을 뒤로 조금 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만 뒤로 가 보겠다고 코치님에게 말했는데 한번 시도해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해 보았는데 어설프지만 한 뼘 정도 뒤로 가는 게 가능했습니다. 엉겁결에 한 뼘 더 뒤로 가려고 하니 코치님이 말렸습니다. 욕심부리는 게 보였던 겁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욕심을 부리면 부상이 생깁니다.
‘어 뭐지?’ 순간 어리둥절해하며 동작을 마쳤습니다. 내가 벽을 조금은 걸을 수 있었던 겁니다. 우연히 된 건가 싶기도 했는데 그 이후 이어진 와드에서도 어설프지만 동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와드를 진행하는데 코치님이 계속 저를 주시했습니다. 욕심을 부려 자칫 부상을 입을지 관찰하는 겁니다. 다행히 벽을 걷는 동작 15번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마무리 운동을 하는데 코치님이 제가 꽤 기특했나 봅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코치님 제가 뒤로 한 뼘 갈 줄 몰랐죠?” 코치님 왈, 팔로 버틸 줄은 알았는데 한 뼘 갈 수 있을지는 몰랐다고 하시네요. 같이 운동한 이들과 크게 한번 웃으면서 운동을 마쳤습니다.
기존의 삶의 방식과 다른 모든 것들에 도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작게는 살아온 습관을 바꾸는 것부터 새로운 분야의 공부에 도전하거나 해 보지 못한 운동을 경험하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일단 해 보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동작을 내가 한다고?’ 어리둥절해하다가 ‘내가 나를 과소평가했네’ 스스로 대견해하다가 ‘이제 새로운 동작이 나와도 너무 겁먹지 말자’ 다부진 다짐을 하곤 합니다. 동작을 잘 해내는 건 나중 문제입니다. 일단 해 보는 용기는 필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