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종이는 욕망과 욕심을 구별할 줄 안다

첫 번째 영수 님

by 전해리

기본 인터뷰


1.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까지 저는 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좋은 친구, 좋은 아들, 좋은 학생, 심지어 좋은 손님으로도요. 명예롭고 위대한 사람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조그맣게나마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촛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치관이 점점 최우선시되다 보니, 제 자신의 모습은 도리어 촛농처럼 녹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자아가 없는 로봇처럼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을 통해서만 삶을 입증하려는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물론 늘 남의 시선을 통해 저 자신을 바라보았기에 저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는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제 자신을 찾기 위해 이번 여행길에 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2. 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이뤄진다면 하고 싶은 일 혹은 직업은?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이 영화는 하루하루 순간의 현실에 대해 만족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며 크게 흥행했습니다. 저 또한 이 영화에 큰 감명을 받았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미 비교적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일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는 것마저도 열심히 하죠. 한 예로 한국직장인들의 유럽여행을 들여다보면,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렌트카를 몰며 온갖 관광지와 먹거리 사진을 찍고 느지막이 호텔에 돌아와 지쳐 쓰러지곤 합니다. 많은 유럽인들은 “저들은 분명 쉬러 온 건데 왜 저렇게까지 열심이야?” 라며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죠. 오죽하면 유럽의 렌터카 업체 직원들이 동양인 관광객의 렌터카 킬로수만 보아도 그들 중 누가 한국인인줄 안다고 하겠어요. 그래서 유럽의 심리학자들은 우스갯소리로 한국인 관광객을 일컬어 복장만 관광객인 근로자라고 말하곤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건, 한국인들은 돌아오는 길에 후회를 한다는 점입니다. 사진을 이렇게 찍을 걸, 코스를 이렇게 정해보면 더 좋았을 걸 하고 말이죠. 결국 최선을 다해도 후회는 가슴 한편에 자리잡고 있더라고요… 우리 인생은 늘 그런 식이죠.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전 시간여행을 하고 싶어요. 누구나 후회 없는 선택, 후회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하는 욕망은 가지고 있으니까요.

3. 못다 이룬 꿈이 있나요?

사실 꿈은 어릴 때부터 없었어요. 특히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종종 묻곤 하면, 전 초등학교 때부터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말했어요. 그 어린아이가 꿈이 없다고 하면 어른들이 저를 이상하게 보는 게 싫었거든요. 인생의 목표 없이 살아가다 보니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고1때까지 공부를 일절 안 하던 제가 대학은 왠지 가야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들었죠. 그래서 그때 다니던 학교에서 내신은 문과에서 관리하기가 비교적 쉬워서 문과를 선택했고, 대학교 학과도 당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별 관심도 없던 중국어과를 택했어요. 교직이수도 학과에서 가장 가치 있게 제공하는 수업이라 생각해서 이수했고, 지금 제가 어학연수 중인 사범대도 교직이수로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이 유리했기 때문에 진학했던 것이고요. ‘이런 직업은 어떨까?’ 하는 생각은 가끔 해봤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BBC나 디스커버리 같은 다큐멘터리 회사에서 제작한 공룡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좋아해서 지질학자나 생물학자를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고, 에릭 클랩튼의 곡을 좋아해서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는 도전하기 힘든 꿈들이기에 그냥 취미로 그리고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어요.

4. 당신이 현재 가장 두려운 건?

가끔 나 자신이 도태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두려워요. 과거의 나와 비교해봤을 때, 현재 제가 어떠한 부분에 대해 발전한 점이 없고,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안일함과 안락함에 취해 게을러지고 나태해졌음을 발견할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그 분노가 저는 가장 두려운 것 같아요. 이 분노를 느낄 때마다 저는 오늘 하루를 잘 살지 못했고, 시간을 허비했고, 따라서 어떤 결과에 대해 좋은 기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갇혀버리거든요. 목표가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노력해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저의 모습을 보면 때때로 정말 구역질이 날 것 같아요.

5.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휴강, 자가격리 중 대사관에서 보내준 컵라면, 중국 택시기사님의 뜻밖의 택시비 할인,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와 피운 이야기꽃 등등 소소한 즐거움과 기쁨은 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행복은 좀 더 고차원적인 감정인 것 같아요. 즐거움이나 기쁨과 같은 감정이 행복의 요소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즐거움과 기쁨 자체가 행복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제가 행복이란 감정에 너무 큰 기대를 바라고 있는 걸 수도 있겠네요.

6. 몰랐지만 알고 보니 나에게 무척 중요했던 가치는?

경청이요. 예전엔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빨리 친해지기 위해 상대방보다 말을 비교적 많이 했었어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공감대를 빨리 찾는 것이 시간을 최대한 적게 사용하면서 빨리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해보니 제가 굳이 먼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에게 다가갈 이유도, 빨리 친해질 이유도 없더라고요. 오히려 그들에게 열린 질문을 함으로써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이 더 깊은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고,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더군요. 그리고 실제로 말하는 것보다 주의 깊게 듣는 것이 더 어렵고, 중간중간 비언어적 표현도 해야 해서 에너지 소비도 많이 되더라고요. 이렇게 힘든 일인데도 겉으로는 오히려 여유로워 보이는 부분이 참 매력적이면서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7. 다른 사람이 오해하는 / 모르는 나의 모습은?

뭐든지 그냥 다 알아서 잘 하는 꼼꼼한 친구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사실 사람이 그렇잖아요, 자신의 강점은 내보이고 싶고, 단점은 숨기고 싶죠. 저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잘 못하는 부분은 말하기 부끄럽고 창피해서 말을 안 하는 것일 뿐,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족한 모습도 많고요. 허술할 때도 많고, 뭘 잘 빠트리거나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들에게는 굉장히 관대하고 이해심도 넓은 편이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조금 엄격한 편이라서 완벽주의인 경향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저랑 사적으로 만나서 노는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리드하는 일을 함께 했던 친구들은 피곤함을 많이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요. 아, 그리고 요즘 머리를 많이 길렀더니 외국 친구들이 처음에 일본인으로 오해하더군요. 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8. 당신은 무엇에서 자부심을 느끼나요?

성취감을 느낄 때 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곤 하죠. 성취를 함으로써 자신감과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드니까요. 이외에는 잘 생각나지 않네요.

9. 살면서 그리운 순간이 있다면?

시간이 지나간 직후부터 그리움은 늘 크고 작게 생기는 것 같아요. 그곳에는 현재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웃고 있고, 현재는 느낄 수 없는 경험이 남아있기 때문이죠. 이제는 일상이 아닌 한국에서의 생활과 덤덤하게 가족들과 인사했던 순간, 야간근무 후 세탁실에서 몰래 먹던 컵라면의 따스함, 하늘로 먼저 보낸 그 녀석과의 물장구질, 사랑했던 여자와 같이 보았던 눈의 춤사위, 무지개 다리를 건넌 강아지와 산책했던 봄 바람 내음, 야간자율학습 중에 학교를 탈출해 즉흥적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갔던 매 맞을 순간, 마지막 순간을 함께해드리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부고소식을 들은 죄인이 된 나의 모습까지. 수도 없이 많은 그리움을 만들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네요.

10. 그래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날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툭 던져 놓으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영국 런던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습니다. 여행 둘째 날 크라이스트 교회 > 옥스포드 대학 > 코츠월드 코스 투어일정이 있었습니다. 약속시간이 오전 9시였기 때문에 저는 일찍 일어나 약속 장소로 향했죠. 그때 본 영국시민들의 출근하는 모습은 한국과 달리 굉장히 여유로웠습니다. 뛰는 사람은 고사하고 빨리 걷는 사람도 몇 안 되었죠. 심지어 탬스 강 라인을 따라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가는 길을 잠시 멈춰서 그들의 연주를 다 듣고 난 후 발걸음을 다시 옮기는 직장인들의 모습이 더더욱 놀라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여유 있고, 생활리듬이 완만한 삶은 너무나도 풍요롭다는 것을 처음 느꼈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에서 저는 그런 것들을 거의 죄악시했고, 부지런함이 보람을 느끼는 요소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일정이 없는 날에는 아침부터 와인을 병째로 조금씩 마시면서 한가로이 런던시내를 걷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여유있는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이 영국은 아니니깐요. 적응을 못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힐링을 했다는 기억이 있다 매사에 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죠. 그래서 이전 질문들과 저를 다 종합해봤을 때 “나는 물과 같은 사람인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황과 환경, 사람이라는 그릇의 모양에 맞춰 변화하고 마찰을 일으키지 않으며 조화롭게 어울리는 물. 네, 저는 그러한 물처럼 적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입니다.


심화 인터뷰


문. 제가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답. 이름 하니까 올해 학기 초 회화 수업이 생각나더라고요. 본인 이름과 그 뜻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심지어 어떤 학생은 자신의 이름에 담긴 뜻대로 인생을 살겠다는 포부를 밝히더라고요. 한국사람들 또한 한자이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다만, 한국어가 표음문자이다 보니 그 이름이 지닌 깊은 의미가 부각되지 않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 인터뷰를 위해 제 이름의 뜻이 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이름을 지어보려고 해요. 제 이름은 ‘하얗다’는 뜻과 ‘종’의 뜻을 지닌 한자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하얀색을 좋아해서, 하얀색을 긍정적인 의미로 활용했다고 해요. 종은 행사나 예식, 시간 등 어떠한 관례를 행하거나 소식을 전달할 때 쓰는 도구로 사용했죠. 그래서 뜻을 조합해보면 ’기쁨을 알리는(들려주는) 사람’ 이라는 뜻이 됩니다. 저대로 쓰기엔 이름이 조금 긴 것 같으니, 간단하게 직역해서 ‘흰 종’이라고 하려 했어요. 하지만 아직 좀 딱딱한 느낌이 강해서 ‘흰 종이’라고 하려고 해요. 저는 마음에 드는데 작가님 생각은 어때요?


해리(이하 ‘해’). (웃음) 저는 정말 좋은데요. 처음에는 ‘너무 귀여운데’ 싶었는데 다시 보니 인디언식 이름 같아요. 제가 바라던 대로 아주 센스 있고 스타일리쉬해요. (웃음) 자, 그럼 흰 종이 님, 이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보내고 있었나요?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흰 종이(이하 ‘흰’). 현재 중국은 코로나 이전 시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물론 학교 밖 사람들은 마스크를 비교적 잘 착용하지만, 캠퍼스 내 활동하는 사람들은(외출 목적이 있는 친구들을 제외하고) 마스크를 벗은 친구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좀 더 조심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부터 학교 밖을 돌아다닐 코스를 계획하고, 점심에는 처음으로 학생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했어요. 메뉴는 마라탕을 먹었고요. 나쁘지 않더라고요. 한국에서 샀던 중국 유심 로밍 기간이 끝나서, 중국 핸드폰 매장에 가서 유심을 새로 샀어요. 통장도 개설하려고 했는데, 요하는 문건이 추가로 있어서 아쉽게도 오늘은 개설을 하지 못했네요. 딱히 대단하게 뭐 한 것도 없는데 중국이 워낙 넓다 보니 걷는데 시간을 다 쓴 느낌이 들어요. 이제 룸메이트인 가나 출신 친구와 저녁 먹으러 나갈 준비를 하려고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만약 지금 제가 한국에 있었다면 정말 무료하게 휴일을 허비했을 거에요. 그래서 오늘 하루, 피곤하지만 감사하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해. 하루를 알차게 보낸 흰 종이 님과의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앞서, 한 가지 고백하고 싶은 게 있어요. 사실 그때 우리가 카카오톡으로 오랜만에 대화를 나눴잖아요. 그 대화가 남긴 충격이 저에게 너무 컸어요. 흰 종이 님은 코로나 시기임에도 유학을 떠날 결단을 내리고 실행한 거잖아요. 그런 흰 종이 님을 보며 간신히 묻어 둔 저의 못다 이룬 꿈이 또 떠올랐지 뭐에요. 뉴욕 같은 도시에서 다국어를 구사하며 외국인 친구들이 많은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었어요.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해도요. 그런데 3년 전에 멜번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저에게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도 ‘아, 이건 숙명이고 운명이야’라는 순간들이 계속 생겨났고 결국 글을 쓰고 여러 예술 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죠. 하지만 무섭고 겁이 납니다. 특히 흰 종이 님과 그때 대화하고 나서 애써 외면했던 공포를 실감하고 말았죠, 나에겐 정해진 길이 없다는 것을요. 게다가 저는 공황장애가 심해 마스크를 쓰고 장시간 무얼 하기가 벅차 외부활동을 포기하고 있어 그런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보이는 모험이 부럽기도 했어요. 제가 이렇게 집에서 뭘 한다 해도 정말 티가 안 나거든요. 따라서 서럽기도 하고요. 그렇게 순간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우리는 약 6년 전만 하더라도 같은 학과, 같은 강의실에 있었는데 지금 어쩌다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그래서 말인데, 유학길이자 여행길에 오른 지금 심경이 어떤가요?

흰. 예전 일을 좀 말해보고 싶어요. 저는 교직학생이기 때문에 4학년 1학기에 교생실습을 나가야 했었는데요. 학교가 신탄진에 있어서 출퇴근도 오래 걸리고 졸업준비를 위해 학원에 다니면서 HSK를 따로 준비했어요. 물론 유학준비도 병행하면서 말이죠. 그 와중에 기말고사 기간이 점점 다가오는 압박감은 정말 끔찍했죠. 그래서 매일 4~5시간 숙면으로 자기시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다 결국 기말고사를 보고 나서 번 아웃이 되었어요.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던 HSK 시험 당일 날이 되어서도 집밖을 나오지 않을 만큼 지쳤었고요. 매일 술로 시작해서 술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것 같아요 하루의 경계도 모호할 만큼 정신이 피폐했어요. 그런데 희한하게 그러던 중에도 유학준비는 놓을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사는 저 자신이 너무 싫고 미워서 나 자신을 공부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즉, 사람같지도 않게 살아가는 저를 깊은 구석까지 몰아넣어서라도 움직이게 하고 싶었어요. 측은함과 저주가 오묘하게 섞이기 시작하고 또 코로나라는 하늘 길 장벽 때문에 오기까지 발동해 거의 광적으로 유학생활 준비에 미친 듯이 매달렸어요. 절대 어떤 신념이나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살고 싶어서, 그리고 이렇게 사는 현재 내 모습이 너무 싫어서 준비한 유학 생활이었던 거죠. 작가님이 어둡게 준비한 제 유학생활을 대단하다고 여겨줘서 제가 오히려 좀 놀랐어요. 냉정하게 정리하자면, 전 코로나에 적응을 못해 유학이라는 거대한 간판 뒤에 몸을 숨겨 도망간 비겁한 패배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작가님의 사진회를 방문했을 때 작가님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어요. 군대만 갔다 왔지 이루어 논 것 하나 없는 놈이 그저 친구의 들러리나 하러 온 것 같아 속상한 감정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정말 그때 작가님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꼭 품에 꽃을 안겨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꽃을 전달했던 것이고요. 제가 유학 준비를 하던 대학교 주변에 작가님이 사진회를 위해 빌린 카페가 있어, 볼 때마다 그때의 작가님 이 종종 생각났어요. 여전히 큰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죠. 그래서 이 인터뷰에 거리낌 없이 흔쾌히 응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전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두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그 사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빛을 비추면 어둠은 빛에 의해 자연히 사라져 보이겠지만, 빛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바꾸어 비추면 어둠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 자리를 지키러 오니까요.

현재 유학생활은 격리생활 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혼자라서 겪는 외로움과 의지할 곳 없는 고독함이 가끔 저를 힘들게 하긴 하지만, 학교 기숙사에 온 지 이틀 만에 정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었어요. 물론 이들과 심도 깊은 대화로 제 속마음을 달랠 수는 없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전 그들의 영어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여야 해서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해. 저야말로 흰 종이 님이 이런 사람이라 인터뷰를 청한 거지요.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았지만요. (웃음) 다만, 전시회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어요, 흰 종이 님은 초라한 사람에게 꽃을 안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요. 본인의 이야기를 고백했으니 저도 하나 고백할까요? 그 전시회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무관심과 냉대를 곧이곧대로 맞아야 하는 현실이 견디기 조금 어려웠어요. 그런데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건 친구의 질투였어요.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부러움과 질투는 다르잖아요. 나는 친구가 나를 좀 토닥여 주길 바랐는데 그 친구는 정반대로 날 질투하고 있었으니 기분이 얼마나 씁쓸하던지! 이 지점에서 흰 종이 님은 이제껏 만난 다른 사람들과 달랐어요. 학교에서 만나면 서로 놀리느라 옥신각신하면서도 (웃음) 우린 부러움 때문에 서로를 깎아내리지 않는 친구였잖아요. 그때 전시회에서 꽃다발로 성과보다 성장을 축하해주는 진심을 느꼈어요. 저는 이 인터뷰를 명목으로 ‘내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친구로 두고 있다’고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애초에 제가 흰 종이 님을 대단하다 치켜 올리기 전에 본인이 먼저 그랬잖아요. (웃음) 그렇다고 인정해요, 어서. (웃음) 그나저나 유학 준비에 있어서 사뭇 어두운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어요. 저에게 들려줘서 고마워요. 어둠이 나쁜 건 아니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대사가 있어요. 1996년에 개봉한 ‘제인 에어’라는 영화인데, 주인공을 맡은 샤를로뜨 갱스부르가 이런 말을 해요. “Remember, the shadows are just as important as the light”(명심해, 그림자는 빛만큼이나 중요하단다.) 어둠이 없다면 우린 빛을 모를 거에요. 어둠은 참 소중해요. 어두운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줬다면, 본인의 어두운 면모와 빛나는 면모도 함께 말해줄 수 있나요? 당신의 어둠과 빛은 어떤가요? 구체적으로 사례를 들어도 좋고, 추상적으로 말해도 좋아요. 난 당신의 어둠과 빛을 한번 바라보고 싶어요.

흰. 어두운 면모와 빛나는 면모요? 어떠한 부분은 어둡고, 어떠한 부분은 밝다고 명확히 나누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어떤 부분에 어둠과 빛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얘기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저는 굉장히 자기비하가 심한 사람이에요. 자존감과 자애심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낮아요. 그래서 별거 아닌 일에도 사과를 종종 하곤 해요. 다 제가 잘못한 거 같아서요. 하지만 이런 단점 덕분에 진심으로 겸손할 줄 알고, 내가 맡은 일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끝마치려고 해요. 한편, 저는 신중하고 꼼꼼한 사람이에요.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조언을 정리한 후, 체계적인 계획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죠. 단점으로는, 결정하거나 준비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투자하는 경향이 있어서 만일 계획한 일을 이루지 못하면 엄청난 시간을 낭비한다는 점이 있어요.

Ponte de frente al sol y las sombras quedarán detrás de tí. 제 폰 배경화면에 항상 써 놓는 글귀에요. ‘태양 앞에 서라, 그러면 그림자는 당신 뒤에 있을 것이다’라는 뜻인데요. 저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해요. “태양처럼 거대하고 원대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큰 사람에게는 항상 어둠의 그림자와 같이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다”라는 뜻과 “태양 앞에 섰다고 두려워할 것 없다. 그림자가 나와 언제나 함께하니까”라는 뜻이요. 내 안의 어둠과 빛을 조명해보니, 작가님이 말한 것처럼, 또 이 글귀처럼 어둠은 걸림돌 역할을 하면서도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해. 듣고 보니, 경우와 상황에 따라 어둠이 빛이 되기도 하고, 빛이 어둠이 되기도 하네요. 적극적 해석이면서 흥미로운 이론이에요. 덕분에 저 문구가 굉장히 와닿아요. 저 문구가 항상 폰 배경화면에 있었다면 제가 질문하기 전부터 빛과 어둠의 공존에 대해 일찍이 인식하고 있었다는 건데, 맞나요? 어떤 계기로 이 세상의 많고 많은 문장 중 저 문장에 마음을 빼았겼는지 정말 궁금해요. 알려줄 수 있어요?

흰. 사람들 누구나 각각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 현상에 대해서도 A라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고, B라는 해석이 나올 수도 있죠.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살아가면서 어떤 현상을 바라볼 때는 자신의 경험과 인식에 기대 해석하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볼 때 내가 보는 것처럼 다 안 좋게 보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저 문구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아요. 물론 사람 생각이라는 게 한순간 변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더군요.


해. 저는 흰 종이 님이 사상 초유의 전염병 시국에도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갈 용기를 냈다는 데서, 인터뷰 중 언급했던 도태에 관한 두려움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거라 봤어요. 제 짐작이 맞나요? 지금 심경이 그 두려움과 연관이 있을까요?

흰. 질문의 반은 이미 위에서 얘기를 했네요. 지금은 격리기간이 끝나고 2인 기숙사 실에서 사는데 룸메이트가 중국어를 못하고 영어만 할 줄 알아서 안에서는 영어를 하고 밖에서는 중국어를 하는 오묘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정신적으로 좀 힘들지만 이색적인 경험을 쌓고 실력이 늘고 있는 게 보여요. 게다가 진짜 타지에서 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까 할 일이 끊임없이 저를 몰아붙여요. 그래도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사고하고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하는 지금의 시간은 정말 감사하고 귀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조금만 여유가 생기고 내 자신이 편해지면 그 두려움과 도태함이 저를 잠식할 기회를 엿보겠죠? 도태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열심히 살아서 그런 두려움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해. 사실 도태에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에서 크게 공감했어요. 제가 지금은 제 꿈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지만 이 결과에 대해서는, 바로 앞서 말했다시피 아무도 장담할 수 없잖아요. 예술은 그 어느 분야보다 성공이 간절한 분야니깐요. 그래서 이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쓰고, 다른 시간에는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등 그 어느 때보다 악착같이 살고 있어요. 책, 영화, 외국어 공부도 절대 놓지 않고요. 두 가지 면에서 도태될까 봐요. 하나는, 정말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냉정히 말해 훗날 제가 원하는 일을 못하게 되고 다시 취업 경쟁의 판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면 저는 이미 다른 경쟁자들보다 경력이 뒤쳐지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기 싫어서 하루하루를 불사르고 있고요. 또 하나는, 글이든 뭐든 내가 바라는 기준이 있고 나에겐 이 청춘의 시간이 길지 않은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그 기준을 못 따라잡게 될까 봐 두렵습니다. 즉 환경에서의 도태와 스스로가 세운 기준 상 도태, 흰 종이 님은 둘 중 어느 두려움이 더 큰가요?

흰. 이 질문은 만약 내가 작가님이라면 뭐가 두려울까 하고 생각해 보았는데요.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전자가 더 큰 두려움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후자라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작가님처럼 완벽주의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봤을 때는 작가님은 절대 어느 기준에도 만족할 수 없을 거에요. 인생을 살면 우리가 산을 넘을 때가 있죠.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고, 그 산을 넘으면 또 큰 산이 있거든요. 결국 기준도 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기준을 정하면 또 그 기준과 비슷한 사람끼리 경쟁하게 되고 더 높은 기준을 정하게 되고 또 그 기준을 정하게 되면 다시 또 그 기준과 비슷한 경쟁자가 작가님 주변에 생기고, 그럼 또 다시 반복. 그렇게 되다 보면 글쎄요. 어느 순간 허망함과 공허함을 느끼게 되고, 자신의 길로부터 이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까닭에 전 후자가 좀 더 치명적인 두려움이라고 생각해요.


해. 저를 기준으로 삼고 (웃음) 사유해줘서 고마워요. 산에 대한 비유도 공감하고요. 그래서 제가 등산을 안 좋아하나 봐요. (웃음) 그런데 한 가지 바로잡고 싶어요. 저는 경쟁이 두려운 게 아니라 싫어요. 명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면요, 저의 두려움은 내가 원하는 문장이 나에게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에요. 쓰고 싶은 문장이 있지만 지금은 두루뭉술하고 정확하게 몰라서 갑갑하죠. 그 문장을 넘어야 다른 문장을 쓰고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마음 놓고 쉴 수가 있어야죠. 다른 글로 잠시 옮겨 갔다가, 운동을 가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등 문장 하나를 떠올리는 데 별의별 짓을 다 해요. 안 그래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인데. 굳이 경쟁이라는 단어를 써야 한다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죠: 조금 부족한 나와 조금 더 나은 나와의 경쟁. 흰 종이 님이 이해한 두려움이 방금 제가 설명한 것과 같나요?

흰. 저희는 두려움의 대상이 다른 것 같아요. 작가님은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두는 반면 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좀 더 초점을 뒀네요. 제가 작가님은 아니니까 작가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제 경험과 제 느낌이 반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네요. 작가님이 설명한 부분은 잘 이해했어요.


해. 그래도 흰 종이 님과 공통점이 있다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성향 아닐까요? 그 채찍질로 얻은 좋은 성취가 있다면 저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요? 성취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으니 자랑 한번 해주세요!

흰. 사실 나를 칭찬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인색한 편이라서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 확신도 없는 편이고 내세우는 것도 좀 창피하고 그래요. 하지만 용기 내서 말해보자면 유학생 배치고사를 봤을 때 1등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네요. 부끄럽습니다. 사실 별 거 아니에요. 진짜로요……


해. 어휴, 별 거 아니긴요. 저는 뭔가 1등을 한 기억이 그다지 없는데요, 뭘. (미소) 너무 민망해하니 앞으로 만날 때마다 ‘이번엔 뭘 잘했니’ 물어봐야겠어요. (웃음) 그렇다면 나쁜 성취도 있을까요?

흰. 사실 저는, 아니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예전부터 목표에 대해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때는 교사가 하고 싶어서 열심히 학점관리를 해서 교직이수를 했고, 한때는 적성에 서비스 직이 잘 맞는다고 해서 SMAT 자격증을 취득했고요. 한때는 공기업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사와 컴활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이것도 아니다 싶어서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학업에 일관성은 있어야겠다 싶어서 HSK 시험을 보고 유학준비를 하고 지금은 중국에 있죠. 이렇게 하나의 진로에 맞춰 준비한 자격증은 진로가 바뀌면 의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허탈하기도 하고,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원망하곤 해요.


해. 음… 본인이 신중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뭘 해도 일정한 성과를 낼 줄 알기 때문에 목표를 바꿀 수 있던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그것도 다 능력 아니에요?

흰. 누구나 시작보다는 끝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물론 새로 시작하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지만, 결국 인내와 인고의 결실을 맺는 이 끝이라는 단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과라고 생각되지도 않고, 오히려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정도의 가르침만 얻었던 것 같네요.


해. 목표는 바뀌었지만, 어쩌면 그런 변화 속에서도 일괄되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요? 어때요?

흰. 창업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웃음) 그건 일관적이네요. 전공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는 일관성은 있네요. 물론 당장 제게 필요 없어 보이는 자격증이라도 언젠가 어느 우연한 순간에라도 저에게 득이 될 순 있겠죠. 하지만 그 우연한 순간에 도움을 얻기 위해 시간을 투자한 건 아니니까요. 실과 득을 잘 따져서 앞으로 시간을 잘 안배해 봐야겠네요.


해. 어느 사람들은 매사 열심히 하는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겠죠. 그런데 저는 이런 태도가 전반적으로 옳을 때가 많다고 생각해요. 흰 종이 님이 말한 것처럼, 설렁설렁하는데 과연 성취를 얻을 수 있을까요? 성실하고 언제 어디서나 노력하는 태도의 장점을 흰 종이 님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흰. 사실 전 열심히 살아서 절대 얻을 수 없는 부분이 의외로 많다고 봐요. 어떻게 해야 잘 놀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자신을 쉬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삶의 풍요로움을 느끼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즉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화하는 일은 여유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장점을 말하자면, 자신에게 확신과 자신감을 가져다 주는 것이 분명 장점이에요. 하지만 저처럼 남들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신을 평가하는 수동적인 삶에서는 자칫하면 독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사실, 저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을 굉장히 선망했어요. 그러나 저희가 얘기했던 ‘도태’라는 늪에 빠지게 될 것 같아서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남들이 볼 때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 봐 다시 채찍질을 감행하곤 했죠. 그런데 반대로 나처럼 누군가도 저런 여유 있는 삶을 선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겉으로는 공부 안 하는 척이란 척은 다 하면서 몰래 공부하던 가식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아요. 사회적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솔직히 이런 행위는 에너지 소모가 정말 많이 돼요. 대신 공부만 한다고 재수 없다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되고, 그렇다고 맨날 논다고 한심하단 소리를 안 들어도 돼서 정신적으로는 편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은 행복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말이죠. 결국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해. 이미지를 중요하다 생각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남들이 바라봐 주길 바라는 모습이 있었네요. 그건 본인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완전히 일치하나요?

흰. 특별히 구체적인 모습은 없어요. 그냥 좋은 사람?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모습은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남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많이 쏟는 것 같아요. 문제는, 정작 나 자신이 세상을 향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지금 생각해보니 무서워요. ‘내가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많이 잃어버렸으면 이러는 건지, 과연 어디까지 잃어버린 건지. 아니 이미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런 인생은 생각없이 살아가는 금수와 별반 다르지가 않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해.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 후, 내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는 거에요. 따라서 대학생활 내내 자아 찾기에 몰두했고요. 졸업 즈음, 희한한 결과에 부딪치더군요: “그래서 너는 네가 겨우 알아낸 본연의 모습대로 살 수 있어?”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그때 가장 소중한 친구가 “그 누구도 되고 싶지 않다”고 토로한 저에게 그랬어요: “해리야, 너는 그 누구도 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나 자신으로 살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따끔하겠지만, 이 질문을 하고 싶어요: “흰 종이 님은 본연의 모습을 세상에 가감없이 보여줄 용기가 지금 있나요?”

흰. 본연의 모습이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타지에 있으면서 제가 느낀 분명한 저의 모습 중 한 가지는 남의 감정을 우선시한다는 것이었어요. 물론 이 부분은 한국에서도 느끼는 바가 있었지만 여기서 보니 정말 확연히 드러나더라고요. 제 주위 사람의 성격에 퍼즐처럼 끼워지고 싶어하는 물 같은 제 모습 때문에 정말 근원적이고 원초적이고 불순물 없는 나의 모습은 여전히 찾기 힘들더군요. 지금은 모르지만, 그냥 이런 삶이 제 진짜 모습이라고 느껴진다면 그때는 그저 조용히 인정하고, 자꾸 나를 탓하거나 저주하는 대신 아무 말없이 내려놓는 선택을 하고 싶어요.


해. 어려운 문제죠. 우리가 아무리 대화해도 정답을 낼 순 없을 거에요. 하지만 꼭 말해주고 싶은 건, 흰 종이 님은 저에게 늘 좋은 사람이었어요. 흰 종이 님이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흰 종이 님이 흰 종이 님이기 때문이에요. 타인을 배려하고, 책임감을 알고, 생을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어때요? 지금껏 저에게 보여준 이미지는 본인의 모습이 맞나요?

흰. 정말 제 모습이 맞나요? 정말 그렇게 제가 보인다면 전 오히려 작가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은 한없이 부정적이라 정말 감동이에요. 누군가에게 저 자신에 대한 모습을 들어보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전 항상 어느 학교 어느 대학생, 어느 학과 누구누구, 꽃가게 아들 등 이처럼 소속을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 받았거든요. 정말 감사해요.


해. Life isn’t about finding yourself. Life is about creating yourself. 조지 버나드 쇼가 한 말인데, 삶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창조하는 과정이라는 거죠. 저도 그래요. 한때는 자아 발굴이 참 중요했어요.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뭘 싫어하는지 등등. 그렇지만 이젠 내가 모르는 내가 더 궁금해요. 나는 어떤 나를 만들 수 있을까? 가령, 글을 쓸 줄은 알았지만 어떤 글을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어요. 그렇지만 하루하루 흰 종이 님처럼 성실하다 보니, 어느덧 소설도 쓰게 되고, 글을 예술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을 고려하게 되었어요. 흰 종이 님에게는 조지 버나드 쇼의 이 명언이 가닿나요?

흰. ‘나를 만든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말이네요. 그렇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창조보다는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부분을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게 맞지 않을까요? 결국 자신을 얼마큼 알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가를 통해 발전시키고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정말 다시금 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에 큰 영감을 주는 명언이네요.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해. 어찌 되든! 흰 종이 님은 가능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게 제 눈엔 보여요. (미소)

흰. 감사합니다. 작가님 덕분에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할 것 같네요. (웃음)


해.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요? 이렇게 말했죠, ‘목표가 없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더 노력해야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본인의 모습을 보면 구역질이 날 것 같다’고. 그런데 말이에요, 흰 종이 님은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데, 그럼 무얼 위해 그렇게 뭐든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거에요? 스스로를 고단하게 만드는 이유가 꿈과 목표가 아니라면 무엇인가요?

흰. 꿈이 없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노력할 터인데, 저는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죠. 저도 작가님하고 똑같아요. 정해진 길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가는 보편적인 여러 길들을 추산해서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에요. 사실 꿈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건 구차한 변명이에요. 꿈이 없기 때문에 뭐라도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렇다고 계획 없이 무작정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공부하는 것은 썩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사람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 날부터 쭉 하고 있는 공부와 관련 지어서 능력의 가지를 뻗쳐 나가는 것을 중시해요. 그렇지 않으면 지나온 세월의 일부가 부정되는 매스꺼운 느낌이 들을 것 같아서요.


해. 동감해요. 저는 이제는 코즈모폴리턴 커리어우먼은 못 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감행한 노력은 유산을 남겼죠. 예를 들면, 외국어 공부요. 제가 3개 외국어를 공부했잖아요. 어디 취업하는 데 비비지 못하겠지만 대신 다른 세상 다른 언어의 이야기를 한글로 전달하는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그 소질로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고요! 이런 일관성은 제가 의도한 건 아니죠. 그렇지만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나 자신을 중심으로 두지 않은 적이 없어서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흰 종이 님은 어떤가요? 어떤 공부를 했고, 지금 어떤 공부를 하길래 흰 종이 님 스스로를 어떤 상황에서도 준비된 사람으로 만들고 있나요?

흰. 3개 외국어를 공부했는데 어디 취업하는데 비비지 못하다는 건 저를 두 번 죽이시는 말씀이네요. 저도 작가님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글쎄요. 저는 작가님과 반대로 여전히 나 자신을 중심에 두지 못해 세상의 흐름에 따라 흘려보내곤 해요. 남들이 다 하는 거 말이에요. 그래서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목표도 불확실해요. 하지만 용기 내어 적어보려고 해요.

일단 그동안 어떤 공부를 했는지는 이미 답을 했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요. 현재 상황을 좀 얘기하려고 해요. 요즘은 중국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토익을 준비하고 있어요. 풍문에는 중국에서 토익을 보는 게 한국보다 더 쉽다고 하더라고요. 아, 물론 어디까지나 소문이에요(웃음). 마침 룸메이트도 영국식 발음을 멋있게 구사하는 가나 사람이고, 옆방 룸메이트도 호주사람이라서 강제 영어회화수업(?)도 하고 있고요. 아니, 제 룸메이트는 중국에 온 지 3년이라는데 중국어를 你好랑 谢谢밖에 할 줄 모른다는 거에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얘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네요. 미안해요. 너무 화가 나서 그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교생실습을 나가거나 교직수업 발표준비를 할 때 영상편집을 몇 번 한 적이 있어요. 토익을 끝내고 나면, 영상편집이나 포토샵을 배워보려고요. 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경험을 한 장면을 모아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 계획이에요. 그래서 중국어 교육 관련 회사에서 강의를 편집하거나 중국관련 컨텐츠를 제작 혹은 중국으로 영상송출을 원하는 유튜버의 편집자로 일을 해보고 싶어요.


해. 정말 고무적인 환경이네요! 부러워요. 즐거워 보이고요. 하고 나서, 절 좀 가르쳐 줘요. 저도 나중에 영화를 만들고 싶거든요.

흰. 영화 분야와 제가 하고 있는 편집 분야는 특히 CG방면에서 아예 다른 기술이라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자막이나 음향부분은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도움이 필요하시면 꼭 연락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서 흰 종이 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나요?

흰. 인터뷰 초반만 해도 행복했는데 계속 마음 속의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결국 저도 마음 한구석에 어둠이 터줏대감처럼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되네요. 우울하고, 바보 같고, 후회되요. 뭐, 당시 저는 최선을 다했던 선택이었겠지만, 돌아간다면 아마 다른 선택을 할 것 같네요.


해. 흰 종이 님은 전혀 바보 같지 않아요. 저도 우울이 마음 깊이 자리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그러니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마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저는 흰 종이 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에요. 그건 누구나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지금은 후회하는 그 선택으로 흰 종이 님이 누렸을 행운, 행복이 있지 않을까요?

흰. 저도 작가님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이미 큰 행운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뭐라고 살면서 이런 인터뷰를 받아보겠으며, 제가 무슨 연예인이나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닌데 어느 기자나 작가가 제 이야기를 쓰려고 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귀한 경험이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혼자 외국에 와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정말 큰 경험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또, 다른 언어로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일이고요. 룸메이트를 포함한 여러 외국인 친구들이 저와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 중인데요. 룸메이트가 저에게 많은 친구들을 소개시켜 줬어요. 특히 같이 중국에 온 가나 친구들을 많이 소개시켜 줬는데요. 그들도 한국인은 낯선 외국인일 텐데 저를 진심으로 환영해주었어요. 좋은 친구들을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에요. 이 친구들이 악기를 잘 다뤄서 종종 대학가에서 공연을 했어요. 룸메이트는 색소폰 연주를 할 줄 아는 멋진 친구인데요. 어느 날 룸메가 갑자기 합주를 하자는 거에요. 마침 가나 친구들 중 기타를 가져온 친구가 있어서 같이 합주를 했어요. 음악으로 하나된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음악으로 통하면서 저도 그들의 진짜 가족이 된 느낌? 정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값진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마침 건반을 칠 수 있는 친구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님 생각이 났어요(웃음).


해. 아이구, 저는 합주를 할 만한 실력이 아니에요. 그래도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웃음) 기본 인터뷰를 읽어 보면, 외국 여행에서 느꼈던 현지인들의 여유로움에서 크게 감명받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또 그렇지 않은 삶에 어느 정도 비판적 시각도 있고, 선망심도 있고요. 맞나요?

흰. 전에 했던 질문에 대한 답변과 살짝 겹치는 내용을 이미 썼던 것 같네요. 맞아요. 나쁘게 말하면 나태하고 게으르며 철이 없는 것이지만 좋게 말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니까요. 여전히 선망하지만 여전히 다가서기 힘든 삶의 모습이에요.


해. 그래서 저는 굉장히 큰 모순을 느꼈어요. 느긋함에 관한 동경과 도태에 관한 두려움은 사뭇 멀지 않나요? 물론 모순을 비난하는 건 아니에요. 인간은 모순적인 존재니까요. 하지만 제가 듣고 싶은 건 어느 쪽 감정이 더 크냐에요.

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 느긋함이 될 수도 도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잘 알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쉼에 대해 너그럽고 관대하게 기준을 정하는 반면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불신하는 사람은 쉼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너그러울 수가 없어요. “결국 5분만 쉴까 하다가 10분은 또 쉬겠지 아니야 20분은 또 쉬겠다고 개, 돼지처럼 본능에 지겠지”? “네가 이래서 아직까지 그 모양인 거야 알겠어”? 이런 자신을 깎아 내리는 생각에 또 사로잡히게 되죠. 그런 생각에 잠식당하게 되면 화가 나고 무기력해져서 자기자신을 쓸모 없는 쓰레기로 여기고 결국 진짜 쓰레기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도태의 감옥에 갇히죠. 작가님이 공감해주실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 게 도태와 느긋함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해. 제가 공감하고 말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존중하고 싶어요. 상황과 환경, 사람에 따라 적응할 줄 아는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본인을 묘사했죠. 지금 가 있는 곳은 한국과는 다르겠죠? 또, 혼자 여행하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고도 답변했고요. 그곳에서 본인은 아직도 도태될까 두렵나요, 영국 여행에서처럼 한가롭나요?

흰. 둘 다 아니에요. 이미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앞에서 했네요. 추가로 얘기해 보자면, 공산주의 나라에서 살다 보니 행동 하나하나에 특별히 조심해야 할 일들이 있곤 해요. 그리고 혼자 유학 길에 오른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할 일이 많고요. 따라서 도태될까 두렵다고 생각할 수 없어요. 그런 잡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할일이 산더미고요. 하지만 마음만큼은 한국에서보다 더 여유로워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누군가 그러더군요. 감정도 전염성이 있다고요. 현재 저랑 같이 지내고 있는 친구들은 한국사람들보단 많이 웃고 자유로운 사람들 같아요. 그렇기에 제 마음이 좀 더 가벼운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해. 머리는 여유롭지 않지만 마음만큼은 여유로운 상태군요. 저도 멜번 여행할 때 그랬어요! 머릿속은 복잡한데 마음은 신기하게 느긋했어요. 물론 멜번의 환경과 문화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같이 살던 룸메이트들의 영향이 가장 컸겠죠.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정과 애정으로 살던 그들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했어요. 저는 그 태도를 한국에서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면, 흰 종이 님은 이제까지 했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여행을 하고 있네요. 그렇다면 이 여행을 통해 기대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이 있을까요? 이 여행이 본인에게 어떤 감정, 느낌, 배움을 가져다줄까요? 환경과 문화가 바뀌면 그에 따라 변모한다는 흰 종이 님도 저처럼 어느 곳에 가도 특정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될까요?

흰.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싶지는 않아요. 앞서 말한 것처럼 목표는 있지만, 어떠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제 자신에게 또 다시 실망을 느끼거나 저주를 내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기 환경은 감사할 부분이 참 많아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좋은 수업을 듣고 있고, 좋은 선생님을 만났어요. 기숙사비, 교재비, 보험비, 학비가 다 장학금이고요. 물가도 싸서 굶을 걱정도 없고, 저를 미워하는 사람도 없죠. 눈을 뜨고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일들도 넘쳐나고요. 그래서 여기서 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이미 저에게 큰 축복이에요.

한국에서도 이러한 감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아요. 따라서 비자를 연장해서 더 중국에 있어야 할지 고민이에요. 하지만 전 중국에 온지 이제 1달이 좀 넘었어요. 당장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느끼고 생각하는 게 다른데 이런 고민은 더 나중의 나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해. 듣다 보니, 흰 종이 님이 점점 부러워지는데요. 큰일났네요. (웃음) 눈을 뜨고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라니! 흰 종이 님이 무얼 말하려는지 충분히 알겠어요. 나중 일은 나중에 맡기고 (웃음) 흰 종이 님은 그곳에서, 저는 여기서 하루하루를 만끽해요! 어때요? 찬성?

흰. 적응이 될 만하면 이곳저곳에서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에요. 가끔은 평탄하고 긴장감 하나 없던 한국에서의 삶이 그립기도 해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지금 이 때를 너무나도 훨씬 그리워할 것을 알기에 본국 생각은 잘 안 하려고요! 작가님도 건강히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해. 여행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시간 여행을 하고 싶을 만큼 그리운 순간이 많아 보였어요. 그럼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흰 종이 님은 시간 여행을 하고 있다고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후회가 남는다면, 이 순간, 그곳에서 본인은 후회 없는 자기자신으로 살고 있나요?

흰.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원인을 인지하는 상태에서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그것을 모른 채 시간여행을 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을 가지고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는 것과 지금 기억을 지우고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는 것에 많은 차이가 있듯이 말이죠. 인생은 어떻게 해도 후회가 남는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도 후회 없는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죠. 또 시간여행은 그저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해. 혹은, 이 순간을 훗날 다시 되돌아봤을 때 그리워할 것 같아요?

흰. 네 모든 지나간 시간은 조금이라도 그리움을 남기니까요. 지금 제가 새롭게 경험하고 있는 이 순간들은 큰 그리움을 선사할 것 같아요.


해. 그리움을 논해서 말인데,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이 떠오르더라구요. 그 노래 좋아해요? 지금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는 노래잖아요.

흰. 자신보다 먼저 하늘로 올라간 아들에 대한 슬픔을 덤덤히 담아낸 노래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에릭 클랩튼의 블루스 락 장르의 노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이지 그리움과는 딱히 연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Tears in Heaven’ 자체가 블루스나 재즈 락 계열 노래도 아니라서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 곡도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Wonderful Tonight’이나 ‘Old Love’같이 블루스와 재즈색이 짙은 일렉 기타 리프가 묻어 있는 곡들을 추천하고 싶어요.


해. 영화 ‘비긴 어게인’의 댄이 이런 말을 하죠: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흰 종이 님이 즐겨 듣는 노래 10곡을 알려줄 수 있나요? 제가 흰 종이 님을 너무 모르지 않게요.

흰. 에릭 클랩튼 노래는 꼭 라이브로 듣는 걸 추천 드려요. 개인적으로 저는 연령대가 중후했던 에릭 클랩튼의 라이브를 좋아해요.

Wonderful Tonight - Eric Clapton

Still Got The Blues - Gary Moore

Bed of Roses - Bon Jovi

내려놔요 - 브라운 아이드 소울

Supermassive Black Hole – Muse

What You Do - Chrisette Michele (Feat. Ne-Yo)

Wake Up Love - Teyana Taylor (Feat. Iman)

Slow Down - Mac Ayres

I Hate You, I Love You - Gnash (Feat, Olivia O'brien)

혼자만의 사랑 – 김건모

사실 Eric Clapton 노래만 해도 추천할 곡이 10개는 넘어서요. (웃음) 최대한 다양한 가수의 노래를 적어봤어요.


해. 에릭 클랩튼의 라이브는 여러 곡으로 이미 들어봤지요. 플레이리스트를 들여다보니, 흰 종이 님에 대한 이미지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듯해요. 덕분에 제 음악 스펙트럼도 넓어지네요. 아니, 음악 열정을 그동안 왜 드러내지 않았어요!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잖아요. 음악에 대한 열의를 펼칠 계획이나 용의가 있나요?

흰. 아쉽게도 음악에 대한 어떤 비전이나 계획은 현재 없습니다. 그저 취미로 즐기기로 결정했거든요. 물론 내가 열의가 있고 정말 좋아하는 일에 관련된 직업을 얻게 된다면 매우 행복한 일이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현재 제가 하고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이 제게 더 이점으로 다가올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취미로 음악을 사랑하고 공유하며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멋있는 일이겠죠.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음악과 함께하는 삶이니까요.


해. 제가 예전에 아이폰 메모에 남긴 아주 짧은 글이 있어요. 2018년 2월에 쓴 건데, ‘사는 건 결국 그리움을 쓰다듬거나 기대를 맴돌거나’라는 글이에요. 흰 종이 님이 ‘수도 없이 많은 그리움을 만들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하길래, 잠들어 있던 글을 다시 꺼냈어요. 그렇지만 제가 느끼는 그리움에 관한 감정은 흰 종이 님과 약간 결이 다른 듯해요. 왜냐하면 저는 그 어느 시간으로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요. 하물며, 어제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피곤하고 괴롭고 외로워요. 모든 순간의 99%를 노력으로 이루며 살았거든요. 정리하면, 제가 느끼는 그리움은 ‘돌아가고 싶음’이 아니라 그 시간들 자체에요. 그 시간들 속 내가 아니라 그 시간들이 지닌 가능성, 젊음이 그리워요. 그 젊음만 이 시간으로 가져오고 싶어요. 이 점에서 제 자신이 안쓰러워요. 그리운 순간이 없어서요. 그래서 그리운 순간이 있다는 게 참 행복한 것 아닐까요? 그 순간이 정말 기쁘고 신나고 애틋했다는 게, 흰 종이 님이 잘 모른다는 그 행복이지 않을까요?

흰. 글쎄요, 작가님보단 제가 추억할 거리가 많다면 삶의 질 자체에서 풍요로운 면이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리움과 애틋함이 행복이란 감정과 이어진다고는 생각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일반 노인분들 대부분은 매일 행복에 넘쳐 살아가셔야 하는 분들이거든요. 감정에 관한 질문이라 명확하게 이렇다 말하기에는 어려움이 분명 따르네요. 그럼에도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의 강연을 들어보면, 행복은 분명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니깐요. 희망을 가지고 그 행복을 지금부터 잡아보는 일이 더 알맞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님이 정말 그리운 순간이 없어서 자신이 안쓰럽다고 생각된다면 더 늦기 전에 만들어 조금씩 만들어 보는 건 어때요?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씩이요. 오래 전 졸업했던 초등학교를 여전히 지키고 있는 고목나무와 마주하는 일부터 그동안 소홀했던 그리고 더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들에게 작은 용기를 내어 먼저 연락하는 것까지 말이에요.


해. 음, 저도 글쎄요. (웃음) 흰 종이 님이 뭔가 알면서 또 모르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이미 잘하고 있어요. 흰 종이 님한테 연락한 것만 봐도? (웃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잘하고 있어요. 사실 그보다도, 그리움은 의지로만 생성되는 게 아니지요. 그러므로 그리움을 억지로 만들거나 또 재생하고 싶지는 않아요. 다시 말하지만, 내가 그리운 건 그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 젊음이니깐요. 이해를 돕자면, 그 시간 속 내 체력과 두뇌 회전을 땡겨 오고 싶어요. (웃음) 나날이 체력도 떨어지고, 두뇌회전도 잘 안 되어서요. 다시, 흰 종이 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리운 순간들 속 그 사람들은 흰 종이 님이 그다지 꼼꼼하지 않은 모습까지도 다 알겠어요. 그런가요? 완벽하지 않은 모습말이에요.

흰. 공교롭게도 다들 저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이네요. 어떻게 보면 내 약점을 보고도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이기에 더 감사하고 기억에 남는 것 같네요.


해. 다르게 말하면, 성취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흰 종이 님이 뭔가 성취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흰 종이 님을 기꺼이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흰. 다르게 보면 성취란 곧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능력은 남을 도울 수 있는 훌륭한 도구이고요. 그들은 저를 사랑했겠지만 저도 그들을 사랑하기에 저 또한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었을 거에요. 만일 성취가 없다면 제가 그들을 돕거나 의지가 되어주는 일을 못 하잖아요. 누군가를 사랑하면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고, 힘을 북돋아 주고 싶고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주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인데 그러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도 괴로운 일인 것 같아요.


해. 그럴 수 있죠. 멀리 떨어진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달려가고 싶은데 자동차가 없으면 아무래도 너무 힘들잖아요. 하지만 어느 때는, 달려와 주는 자체보다도 그런 마음이 저는 더 예쁘고 고맙더라고요. 이렇게, 능력 없이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준 경험이 있나요?

흰. 글쎄요. 고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에 남들 몰래 손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응원했던 순수했던 그때 말고는 없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물질에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되거든요. 그래서 사랑도 돈 없이는, 그리고 능력 없이는 하기가 쉽지 않죠. 경제가 어려운 이 시대에 해를 거듭하면서 한국의 출산율과 혼인율이 점점 감소하는 것 또한 이러한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요?


해. 그럴 수 있죠. 일부 동의해요. 어쨌거나 그 당시 흰 종이 님 덕분에 그들이 행복했을 수도 있겠네요?

흰. 그랬기를 바래야죠. 행복까지는 아니어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해. 그랬을 거에요. 암, 그렇고 말고요. 이러한 맥락 아래, 흰 종이 님 삶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되지 않을까요? 어때요? 성취가 아니라 흰 종이 님 삶 자체에서요.

흰.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는 다 저마다 가늠할 수 없는 가치가 있죠. 그래서 자신의 삶이 가치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만 알고 실제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사실 어떠한 삶은 자부심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어디서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죠. 그렇기 때문에 감히 나 따위가 자부심을 느껴도 괜찮은 것인가 싶어요. 만일 작가님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그렇다고 생각하신다면 저 한번 노력해 보고 싶네요.


해. 충분해요. 자부심을 가져요. 우선 이 인터뷰 프로젝트의 미약한 시작에 힘을 보태준 것부터 시작해서, 보잘것없는 전시회에 참석해서 꽃을 선사하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비웃지 않은 것 등 흰 종이 님이 자부심을 가져도 될 이유가 이 세상에 차고 넘쳐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저의 질문에 경청해 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경청하기 즐거웠어요.

흰. 저야말로 긴 문장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 마지막으로 제가 질문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마저 경청해줄 수 있나요?

희. 항상 마지막 문제가 제일 어려운 법이니 집중해서 마지막 질문을 경청하겠습니다.


해. 저도 여행을 참 좋아해요. 제가 10년의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1년 반의 시간 동안 써 내려간 미출간 여행 에세이 책이 있는데요. 그 책을 쓰면서 낸 결론이 이거에요: 모든 여행에서 내딛은 발걸음은 결국 나를 향한 발걸음이다. 지금 여행길에 올라 있는 당장의 흰 종이 님은 찾은 자기 자신의 모습은 어때요? 훗날 후회하지 않을 모습인가요?

흰. 제가 인생을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여행만큼 가치 있고, 삶의 활력을 불어넣는 경험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여행을 소중한 경험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여행에 대한 기억에서 더 후회가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여행으로 생기는 후회의 감정은 여행의 순간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특별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난 날의 여행은 조금의 후회와 대부분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는 신비한 기억들입니다.


해. 정말 좋네요. ‘후회의 감정은 그 순간이 소중하기 때문에 생겨난다’라… 잘 숙지하여 다음 여행 에세이 책을 쓸 때 참고해야겠어요. (미소) 지난 번 흰 종이 님과 대화 끝에, 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이 떠올랐어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한 달의 시간 끝에 그 답도 찾았어요. 제가 진짜로 원하는 건, ‘포기하고 싶지 않은 나’에요. 지금 흰 종이 님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에요?

흰. 작가님이 한 달이 걸리셨는데 제게는 더 많은 시간을 주시고 질문해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 질문은 좀 뒤로 미뤄주세요 대신 저도 열심히 답을 찾아볼게요. 작명을 위해 고민했던 지난 날처럼 말이에요.


해. 좋습니다. (웃음) 인터뷰에서 꼭 받아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다면? 제가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본인이 질문하고 본인이 답해보는 건 어때요?

흰.

문. 본인은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중 누구를 더 많이 닮았나요?

답. 저는 얼굴은 엄마를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는 헤어스타일을 단발로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저도 머리를 좀 길러보니까 어머니와 정말 판박이더군요. 그런데 희한하게 성격은 아버지를 쏙 빼 닮았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쭉 아버지가 미웠어요. 아버지께서 한참 사업으로 힘드실 때 술만 드시면 어머니랑 싸우시고, 담배 냄새가 옷에서 지워지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요. 물론 지금은 술 담배 다 끊으시고 어머니랑 잘 지내고 계십니다. 문제는, 제가 어렸을 때 항상 다짐했거든요, 나는 절대 아버지처럼 술 담배를 하지 않을 거라고요. 하지만 나이를 점점 먹으면서 그 힘든 시기에 아버지가 왜 술 담배에 의지를 하셨던 것인지 점점 이해하게 되고, 어느새 저 또한 술 담배를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혼란스러워요. 한쪽에서는 아버지를 이해하고 한쪽에서 아버지를 증오하니까요.


기본 문. 지금 본인의 인생을 살고 계시죠?

답. 지금은요.


기본 문. 건강하시고요?

답. 건강해요.


기본 문. 오늘보다 내일 더 많이 웃고 덜 주저할 거죠?

답.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소회


마지막이라고 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네요. 그래서 그냥 제 얘기를 좀 더 해보려고요. 뭐, 별 얘기는 아니고요. 근황이나 느낀 점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요.

우선 저는 베이징에서 잘 살고 있어요. 항상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며 진실의 미간이 나오기도 하고 그냥 미간이 찌푸려지기도 하죠. 물론 한국음식이 개인적으로 ‘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도 많이 늘었어요. 음식 주문에는 이제 도가 터서 굶어 죽을 일은 없답니다.

이번 주부터 시험기간이고 최근 과제가 겹치기도 했고 일이 좀 많았네요. 약속한 시간까지 답변을 못 드린 건 정말 미안해요.

이 인터뷰를 하면서 참 형용하기 오묘한 감정을 많이 느꼈어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아니, 누구도 묻지를 않아서 말하지 않았던 얘기를 이렇게 해본다는 건 정말 참신하고 신비로운 일이었어요. 몹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가끔 한국 뉴스를 보는데 코로나는 여전히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 항상 건강하시고 바라던 일들 다 순조롭게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밥도 좀 많이 챙겨 드시고, 원하던 글이 안 나온다고 너무 힘들어하진 마세요. 항상 행복하시고요.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아, 책은 무조건 살 거니깐 내 글 예쁘게 편집해줘요.


2021.05.05 시작 2021.05.30 끝


감사 인사


우선, 이 <인터뷰 프로젝트: 나, 영수>가 흰 종이 님의 인터뷰로 첫 발걸음을 뗄 수 있어 저야말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로 결심하고 흰 종이 님에게 인터뷰를 청했던 그때가 생각나요. 저는 늘 하고 싶은데 무서워서, 흰 종이 님에게 이 프로젝트를 카카오톡 메시지로 설명하면서도 몰래 덜덜 떨었다지요. 저의 미흡한 설득에도 흰 종이 님이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고마워할 예정이지만요. 또, 저에게 기꺼이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요. 아무리 가명으로 진행한 인터뷰라지만, 본인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데에는 늘 용기가 필요한 법이니깐요. 흰 종이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인터뷰 프로젝트와 저의 작문 인생에 있어 신념을 공고히 했고, 개인적으로 가슴 따뜻한 용기를 느꼈습니다. 특히, 흰 종이 님의 인터뷰 덕분에 제가 기억해야 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들을 깊이 명심할 수 있었어요.

제가 흰 종이 님의 인터뷰로 <인터뷰 프로젝트 : 나, 영수>를 한 발짝 한 발짝 전진시킬 수 있는 것처럼, 흰 종이 님도 저와의 인터뷰가 당신 인생에 있어 언제고 한 번은 잠시 기댈 수 있는 작은 안식처가 되길 바랄게요. 당신은 제가 본 인터뷰이 중 가장 멋있고 가장 이해심 깊고 가장 견고한 인터뷰이였어요.

마지막으로, 흰 종이 님의 인터뷰가 이 세상의 또 다른 흰 종이’들’에게 굉장한 위로와 기운이 될 수 있을 거란 믿음에 인터뷰어로서 씩씩해져요.

흰 종이 님의 즐거운 여행과 빛나는 미래를 응원해요.

우리, 이 삶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고요. 그러기엔 이 삶이 몹시도 소중하니깐요.


이 세상의 흰 종이’들’에게 추천하는 전해리의 글


* 책[당신이 필요한 여행] https://brunch.co.kr/@eerouri/97

아직 출간되지 못한 책이에요. 진정한 여행에 대한 고민을 다루면서 삶과 여행에 관한 가치관을 세운 작품입니다. 여행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 넘어 수많은 삶을 마주할 수 있는 통로이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 다다르는 여정임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열정적인 여행을 하고 있을 흰 종이 님이 직접 읽을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당장으로선 어렵겠네요. 대신, 탈고하고 난 소회를 브런치에 짧게 써서 올렸으니, 잠시 일단은 이걸로라도 이 책을 만나주세요. 그리고 이 책이 흰 종이 님을 곧 만날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 글<두발자전거를 처음 탔던 마음으로> https://brunch.co.kr/@eerouri/220

이 글은 제가 두발자전거를 떼는 과정을 술회하면서도 그 내면으로는 타인의 무관심과 무시를 이겨내고 당당하고 완벽하게 성취하는 법을 묘사했습니다. 남들은 당연히 하는 걸 자신은 못해서 느낀 설움과 자괴감은 살면서 비단 두발자전거에만 국한되겠어요. 흰 종이 님은 이런 마음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끝내는 획득하는 법을 유독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서 이 글을 추천해요.

* 글<라 돌체 비타! : 달콤한 인생을 굽는 쌀 디저트 가게> https://brunch.co.kr/@eerouri/192

우리 참 열심히 사는 건 맞는데, 가끔은 우리의 의지를 넘어서는 일들이 종종 생기길 마련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대항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이 글이 흰 종이 님에게 잘 소화될 것 같아요. 안타까운 일들을 우리가 막을 수 없지만, 우리가 느끼는 안타까움이 클수록 도리어 우리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그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어요. 그렇기에 인생은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거겠죠.

* 글<나는 여전히 놀라고 싶다> https://brunch.co.kr/@eerouri/138

영화 ‘인셉션’을 해석한 글이에요. 동시에 인생과 꿈을 해석한 글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따라서 다른 글에 비해 조금 깊게 감상해준다면 제가 정말 기쁠 것 같아요! 또, 흰 종이 님에게 이 글을 추천하는 이유는 흰 종이 님이 당신의 인생을 용서하며, 스스로를 늘 발견하고, 꿈을 실현하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 시<물줄기> https://brunch.co.kr/@eerouri/117

공부도 좋고, 취직도 좋고, 돈 버는 것도 좋지만 우리의 인생에는 늘 예술이 존재해야 해서요. 흰 종이 님의 인생이 조금 더 긴장을 풀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추천해요. 모든 인간은 표현해야 하는 예술가임을 부디 잊지 말아요. 언젠가는 흰 종이 님의 예술을 제가 볼 수 있겠죠?



글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자 합니다






이 인터뷰를 읽은 여러분도

인터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참여방법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해주세요!

https://brunch.co.kr/@eerouri/224


위 인터뷰는 네이버 포스트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276991&memberNo=55088636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