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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우면동 옥탑

살던 집 시리즈. 일곱 번째. 우면동 집

by 조은미

집을 비워야 할 날이 다가오면서 엄마는 아버지의 유품 중 값이 될 만한 것들을 급히 처분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수집한 진품 골동품들은 모두 모조품 값으로 흩어졌다. 딸 셋과 함께 갈 곳을 찾지 못한 엄마는 우면동의 방 한 칸을 보지도 않고 전화로 결정했다. 도착해 보니 짐들을 풀 수도, 네 명이 누울 수도 없는 부엌에 달린 작은방이었다. 망연자실 방바닥에 주저앉은 우리를 본 집주인은 고맙게도 옥탑에 이어진 다락방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그곳에서 두 계절을 보냈다. 초 여름에서 늦가을까지 식구들은 함께 잠잘 수 있는 옥상과 연결된 지붕 밑 다락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여름방학이었다. 난방 없는 널찍한 공간의 천정은 낮고도 경사가 심해서 내려가는 계단 부근에서는 허리와 고개를 굽히고 다녀야 했다. 식구대로 여러 번 천정에 머리를 박고 나서도 또 가끔씩 부딪치며 살았다. 마치 누군가가 정신 차리고 살라며 쥐어박는 것 같았다. 한 번은 군대 간 첫사랑이 그리워서 편지를 보냈는데, 봉투의 달라진 내 주소를 보고 '우면동'은 어디냐고 '우동과 라면'만 먹는 동네냐는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쓴 답신을 받았다.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중학생이 된 막내, 고등학생이 된 둘째, 그리고 첫사랑이 박살 난 나 그리고 여전히 세상 물정 모르는 엄마 이렇게 네 명의 여자들은 그 옥탑 다락에서 맥없이 앉거나 누워 뒹굴었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추락에 몸을 맡긴 듯했다. 철없는 엄마가 우리들 앞에서 한 위로의 말은 "내가 딸 만 셋을 낳아서 참 다행이야. 이 중에 아들이 끼어있었으면 얼마나 불편했겠니?"였다. 우리는 맞다며 엄마를 칭찬했다.


옥탑 창고방 한쪽 끝은 시멘트 바닥의 바깥 옥상과 연결된 문이 있어서 신발을 신고 나가면 비로소 허리를 제치고 반듯이 서서 하늘을 볼 수가 있었다. 여름밤, 나가지 않고 방 안에서 누운 채로 문을 열어두면 달도 보이고 별도 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보다 몇 백 배 더 참담했지만, 엄마는 사기당한 걸 알아버린 직후처럼 우리에게 같이 죽자고 울부짖지 않았으며, 여자 넷은 때때로 이야기하다가 까르르 낄낄 웃기도 했다. 찬 바람이 불어 새시문을 열 수 없을 때까지 그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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