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by 고아함

“하하하하 하하, 아이고 배야!”

배까지 움켜잡을 기세다. 사진 속 한 청년이 하얀 윗니 열 개를 드러내고 두 눈이 감긴 채로 소리 없이 웃음을 쏟아내고 있다. 거침없고 경쾌한 웃음이다. 웃음이 빵 터진 후에도 그 웃음기가 잦아들지 않아 몸이 비틀어질 정도다.

자기가 붙여준 노란색 ‘뽀로로’ 대일밴드를 얼굴 한쪽 볼에 붙이고 옆에 함께 걷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너무 깜찍하고 귀여워서 일까. 아니면 폭소가 터질만한 둘만의 대화가 오고 간 걸까.

드라마 한 장면의 사진이다. 보노라면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 기분 좋아 그를 따라 웃게 되고부터 종종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본다. 한줄기의 시원한 폭포수 같은 포복절도 웃음! 그 웃음을 또 다른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간혹 함께 하는 유머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을 때도 있지만,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면서도 웃게 되는 때가 있다.


나는 오래간만에 김유정의 ‘봄봄’ 단편 소설을 읽으며 유쾌하게 웃었다.

주인공 사내는 맑은 하늘 아래, 바위틈의 물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 마을에서, 딸 점순이 크면 혼인을 시켜준다는 주인장-장인의 말에 속아 데릴사위로 우직하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3년 7개월을 머슴살이한다.

그러나 십 년이나 아래인 열여섯 살 점순은 키는 크지 않고 모로만 커졌고, 그것을 빌미로 장인은 그와 점순과의 혼인을 미루며 어르고 달래 일만 부려먹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순이 아침 밥상과 새참을 차려 주며, 자기와의 혼인을 아버지와 담판 짓지 못한다고 은근슬쩍 핀잔을 주며 일만 하는 ‘바보’라고 화를 냈다. 그래서 그가 열을 받았다. 심통이 났다. 꾀를 부려 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바쁜 농사철에 일을 하지 않는다.

어서 빨리 점순과 혼인시켜달라고 배짱을 부리고 옥신각신 장인과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다 끝내 장인과 거시기까지 잡아당기는 우스꽝스러운 몸싸움까지 한다. 그런 중에 점순이 그의 편을 들지 않고 자기 아버지 죽는다며 덤벼들어 사내의 귀까지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는 점순의 속내를 알 수 없어하며 ‘얼빠진 등신’이 되었다고 자괴감에 빠진다.

장인과 싸운 후, 오히려 사내는 장인에게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맞았고 또다시 ‘올 가을에 성례를 시켜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 일터로 향한다. 쫓겨나지 않고 점순과 함께 있게 된 것만을 눈물겹도록 고맙게 생각하며…….


“하하하하!” 웃음이 빵 터졌다. 조롱과 냉소가 아닌, 나의 내면의 순수가 주인공 사내의 순수를 만나 반갑게 조우하여 나온 웃음이었다. 토속적인 인물들의 외모와 어투, 행동도 해학적이고 재미있었지만, 으뜸은 단연 요즈음 시대에 쉽사리 접하기 어려운 그의 순박함과 우직한 순수를 보물처럼 보았기 때문이다. 속은 줄 알면서도 점순을 사랑하여 인내하고, 심통을 부리다가도 전후 사정 헤아려 순진성을 발휘하는 착한 사내.

사람의 마음은 세상사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대항하거나 인내로 반응한다. 인내할 수 없으면 대항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반대로 인내할 수 있으면 참고 기다린다. 포기가 아닌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소중한 그 어떤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각고의 유연한 결단이다.

순수를 만나 웃음을 함빡 터트리고 나니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다. 눈물까지 찔끔 동반해 마음이 맑고 충만해지는 기운. 웃으면 엔도르핀 호르몬이 배로 나와 건강에도 좋다고 하니 몸과 마음에 생기가 돌고 얼굴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 같다.

사람이 웃는 모습처럼 여유롭고 멋진 표정이 달리 있을까. 내면의 훈훈함을 풍기며 다가가고 싶게 만들고 사귀고 싶게 마음을 이끌지 않던가.


웃음은 마음의 체증을 발산시키며 마음을 정화한다. 그래서 저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한층 가볍게 느끼게 한다. 즐겁고 행복한 기분으로 근심과 걱정, 염려를 떨치게 하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소망과 희망을 품게 한다.

*(우)사진-고아함

**커버/(좌 )사진 출처 pixaba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