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이 무서워
병원에 도착하고, 오랜만에 방문했기에 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걱정이 들끓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 혼나는 시나리오, 진료를 거부받을 것 같다는 느낌, 의사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무서웠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내 세상은 이미 우울에 잠식당해 왜곡된 지 오래였다.
언제나처럼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친절히 수납을 해주셨다. 의사 선생님도 별다른 말씀 없이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셨다.
내 시야가 현실을 전부 꼬여져 있던 것처럼 만들었던 것이다.
세상은 그대로였는데 말이다.
딱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남자친구의 표정이 달라졌다. 근심과 걱정이 한가득이지만 나에게 애써 숨기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도 대답 없이 나를 안아주기만 할 뿐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난 나를 두 번째로 몰아간 그날.
나 하나만을 죽인 게 아닌, 남자친구의 영혼에도 함께 상처를 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영원히 치유되지 못할 상처를 말이다.
(내가 아무리 무릎을 꿇고 빌고, 사죄하더라도 사라지지 못할 그날을 남자친구는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다. 내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 삶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뿐이기에 아직도 애쓸 뿐이다.)
병원 진료가 끝난 후, 나는 평소의 두 배에 달하는 약을 처방받아 나왔다.
평소라면 약이 많아졌다고 남자친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했을 텐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내가 자의로 약을 끊은 대가였고, 업보였다.
약국을 나온 뒤, 어색하게 저녁을 먹었고.
나는 조용히 남자친구 앞에서 약을 챙겨 먹었다.
그렇게 남자친구와의 어색한 하루가 지나가고 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