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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희 May 18. 2024

내 여행의 이유를 발견하다

스위스 여행기를 마치며

나는 여행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여행을 꺼리는 것, 그중에서도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내 기억으로는 30년 전 『녹색평론』을 읽으면서부터 확고하게 생겼다. 그래서 많은 에너지를 쓰면서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4월 3일에 출국해서 꼭 해야 하는 일 없이 느릿느릿 열흘을 잘 보냈으니, 이제 여행의 이유를 찾아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여행의 이유를 찾으려면, 체어마트 숙소에서 큰애와 했던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어떻게 스위스까지 오면서 검색 한 번 안 할 수 있느냐, 체어마트에 와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 거다, 뉴질랜드에서도 엄마는 별 감흥이 없더라, 정말 여행에 관심이 없는 거냐고 물었다.      


여행에 관심이 없는 것이 경제적 이유 때문인지, 환경 오염 때문인지, 개인 성격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정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SNS에 올라온 여행 사진들 보면 부럽다. 내 말을 듣더니, 큰애가 말을 이어간다. 어떤 사진이 부러웠느냐, 그 사진의 어느 포인트가 부러웠느냐고 묻는다.  이것을 알아야 쓸데없는 부러움으로 정신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게 되고, 큰 비용 안 들이고도 내가 잘 쉬는 방법을 알게 된다면서 본격적인 탐색을 시작했다.     


그 말을 들으니 자동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 내가 아는 어느 가족이 하와이에 놀러가서 노을이 지는 어느 바닷가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남 여행 가는 것이 부러운 적이 없었는데 그 사진 속의 가족은 부러웠다. 그 가족은 코로나 전에는 여름 겨울 1년에 두 번씩 해마다 하와이나 보라카이나 괌에 가서 2주일 정도 지내다 왔다.      


온 가족이 비즈니스 석을 타고 2주일간, 그것도 일 년에 한두 번씩 해외 휴양지에 다녀오기는 쉽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내가 부러워한 것은 여행 그 자체보다는 그 집의 경제적 여유였던 것 같다. 그런데 더 생각하니, 그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부럽다기보다 그런 경제적 여유로 하필 ‘그런 곳’에 간다는 것이 부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곳’의 의미를 더 파고들어 보면, 인공물이 적은 곳이다. 뉴질랜드에서도 데저트 로드를 달릴 때가 가장 기억나고, 스위스에서도 마터호른이 가장 강렬하다. 이것을 종합하면, 내게 감동을 주는 여행은 ‘낯설면서 인공물이 적은, 그러나 몸이 불편하지는 않은 어딘가에 가서 느릿느릿 지내는 것’이 된다.      


데저트로드, 사진 출처 https://tauranga33.tistory.com/17041637  사진이 없어서 인터넷을 뒤지니, 내가 본 풍경은 없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은 둔황이다. 아주아주 오래전 소설 『둔황』을 읽은 때부터 둔황에 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삶의 방식에 감동해서 그런가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은 아니다. 불교 유적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고 싶다. 


둔황, 사진 출처 https://www.ob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4712


이제 결론이 나왔다. 데저트 하이웨이처럼 둔황의 모래가 주는 낯섦이 매력 포인트였다.  나는 여행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잘 가꾸어진 관광지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내 여행의 이유는 자연이 주는 낯섦을 만나는 것이다. 당연히 비용 문제는 고려해야하므로, 그런 곳에 아주 가끔이라도, 아니 한번이라도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 조금이라도 공감 포인트가 있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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