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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아 오언스
습지는 늪이 아니다. 습지는 빛의 공간이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른다. 꾸불꾸불한 실개천이 느릿하게 배회하며 둥근 태양을 바다로 나르고, 수천 마리 흰기러기들이 우짖으면 다리가 긴 새들이- 애초에 비행이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는 듯- 뜻밖의 기품을 자랑하며 일제히 날아오른다.
습지 속 여기저기서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하고 낮게 포복한 수렁으로 꾸불꾸불 기어든다.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빛을 다 삼켜버려 물은 잔잔하고 시커멓다. 늪의 소굴에서는 야행성 지렁이도 대낮에 나와 돌아다닌다. 소리가 없진 않으나 습지 보다는 늪이 더 고요하다. 부패는 세포 단위인 작업인 탓이다.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 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석호는 삶과 죽음의 냄새를 동시에 풍겼다. 약속과 부패가 유기적으로 난잡하게 얽혀 있었다. 개구리들이 꾸룩꾸룩 울었다. 카야는 탁한 눈으로 멍하니 밤에 낙서하는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병에 반딧불을 잡아 수집한 적은 없었다. 병에 가둘 때보다 풀어놓고 관찰할 때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암컷 반딧불은 꽁무니의 불을 깜박여 수컷에게 짝짓기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조디가 말해주었다. (중략)
카야는 문득 벌떡 일어나 앉아 주의를 집중했다. 암컷 한 마리가 암호를 변경했다. 처음에는 올바른 줄과 점의 조합을 반짝거리며 자기 종의 수컷을 끌어들여 짝짓기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다른 신호를 반짝거렸고, 그러자 다른 종의 수컷이 날아왔다. 그 암컷의 메시지를 읽은 두 번째 수컷은 짝짓기 의사가 있는 자기 종의 암컷을 찾았다고 확신하고 암컷의 머리 위에서 체공했다. 하지만 별안간 그 암컷 반딧불이 다리를 뻗더니 입으로 수컷을 물어 잡아먹었다. 여섯 다리와 날개 두 쌍을 모조리.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 됐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
제가 읽은 올해의 책중 최고였습니다. Bono작가님이 추천한 음악과 책 소개 반갑습니다. 작가님도 새해 소망하는 일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작가님 2025년 새해 복 많이 누리세요.
제 자신의 디폴트 세팅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나의 신호는 찾는 건 먹을 것인지, 사랑하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작가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지만 너무 가슴
아프게 읽은 책이기도 합니다.
머리 뿐 아니라 가슴에도 오래 남는
책, 음악도 좋네요.
여러모로 작가님 안목이 탁월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멋진 책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작가님. 새해도 더욱 풍성한 날들이 되기를 바라요. ^^
제목만 들어본 책인데, 덕분에 이렇게 접해봅니다.
음악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좋네요.
저도 작가님처럼 고독이 주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
슬프고 힘든 날들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힘내보아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어떤 성격의 소설일까 궁금해하면서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았답니다.
습지 소녀 카야의 성장 소설? 스릴러 물의 추리소설? 아니면... 외로움에 대한 책?
조금 더 단서를 얻어보기 위해 여기저기 다른 리뷰도 읽어보았죠. 역시 보노님의 독후감이 엄지 척! ㅋ *^---^*
제가 직접 읽어보지도 않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우스운 얘기지만... 델리아 오언스의 이 소설은 요새 새로운 문예사조로 등장한 포스트 휴머니즘 수법을 사용한 것 아닌가...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었답니다. 예컨대 한강이 <채식주의자>에서 비인간화 또는 식물 되기being-plants 등의 개념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처럼, 이 소설도 카야를 통해서 '습지의 미시 생태'를 소재로 대자연과 하나 되기를 이야기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
다른 리뷰와 보노님의 독후감이 다른 점: 해변 모래사장에서 점점 몸이 낮아지며 수평선과 무릎 높이가 같아질 때까지 명상에 잠기셨다고 했잖아요. 그 '명상'이란 게 바로 '대자연과 하나 되기' 아닐까요? 독후감을 쓸 때는 단순히 책 속의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보노 님처럼 독자 자신의 삶과 연계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답니다. 평소 식물 사진을 찍으시면서도 늘 그런 '합일'을 시도하시는 것 같아서 더욱 인상적이었답니다. 근데 사실... 포스트 휴머니즘, 그런 어휘들이 좀 웃기긴 해요. 서구 이분법 패러다임으로 보자면 모든 걸 자꾸만 분리시켜 생각하니까 새로운 어휘들이 자꾸 생겨나는 것 아닌가 싶어서요. 동아시아 일원론으로 치자면... 萬化冥合, 천지 만물과 하나가 되다, 그런 말 하나면 다 해결되는데 말이죠. ^^;;
책의 문장이 작가님의 언어와 닮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꼭 읽어보고 싶네요
복선이 사건화되는 과정도 궁금하고요
몰입감이 장난아닌 소개글입니다
벌써 카야와 동일시가 되었네요ㅋㅋ
그나저나 수평선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는 작가님 뒷모습을 생각하니 제 맘이 왜 이리 짠하지요?
바닷 바람에 어지러운 생각 날려버릴때 누군가 같은 시각 비슷한 포즈로 그러고 있다는걸 상기해주세요 ㅋㅋㅋ
행복한 새해되시길 기원합니다
저는 네플릭스 영화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만났습니다. 습지의 자연과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진행에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습지의 오두막 가득 붙어았던 세밀화로 그려놓은 물고기 그림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님 글을 보고 다시 보고 싶어졌어요. 가슴을 퍼고드는 음악도 잘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책은 늘 읽어보고 싶습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제목부터 아름답고 신비한 느낌입니다
카야가 희생되고 고통 받는 게 다가 아닌 주체적인 삶의 단계로 나아가는 여정이라서 더 좋고요
24년이 무겁게 저물었네요
25년 행복하고 건강한 한 해 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가슴 조마조마하며 봤던 영화를 여기에서 만나네요. 반가워라~
이음악, 뭐랄까 환상적이랄까? 좋았는데...그때 감정이 다시 살아나네요.
인간의 다중성, 얼마나 선할 수 있고 악할 수 있는지, 미국의 현실 등 많은 감정에 빠져 봤습니다. 한 번 더 보게 만드셨어요.
책도 영화도 다 좋았지만, 책을 먼저 읽어서인지, 아니면 종이가 주는 감동때문인지 책이 더 좋았습니다. 새해도 평온한 한해되시길 바랍니다. 작가님!!
세상엔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읽고 싶은 책도 많고, 살아도 살아도 도무지 줄지가 않는군요. 습지라는 생명과 다양성의 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구경 좀 해봐야 겠습니다. 새해 건강과 평안이 깃드시기를...
제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계셔서 반가운 마음입니다. 영화는 광고만 봤는데, 책을 읽으며 상상하던 카야와는 느낌이 달랐어요. 저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카야가 생활하고 누비던 습지의 풍경도 다르게 느껴져서 영화를 보지 않은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새해가 밝은 지는 며칠되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님의 글로 다시 만난 카야의 이야기는 역시나 깊은 여운을 주네요. 저는 영어 오디오북으로 먼저 듣고 참 좋아서 작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었습니다. 작가가 어떤 사람일까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
그리고 꽤 나중에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도 좋았었습니다. 책과 영화 둘 다 좋았네요. 보노 작가님께서 이렇게 소개해 주셔서 다시 그 여운을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넷플렉스에서 이걸 본 기억이 납니다.
제목이 어디선가 본것 같다...했더니
그 영화였어요...
제가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있는 책이네요 작가님의 독후감을 보니 더 읽고싶어집니다 꼭 읽어야겠네요 음악도 뭔가 신비롭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면서 끄는 매력이 있어요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영화로 보고 참 감명깊었습니다.
책으로 다시 보아야겠군요,
슬프고 힘든 일을 까만 밤에 묻어두라는 작가님의 말이 왜 이렇게 뭉클한지 모르겠습니다…
작가님의 글을 읽다보면
아우 이거 너무 읽어보고싶은데~ 너무 보고싶어지는데~
그런 마음이 훌쩍 올라와버립니다.
찬찬히 작가님을 그리며 영화라도 봐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