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아무말 대잔치
나는 사람을 본다. 나는 정지되어 있고 시선은 언제나 흐른다. 흐르다 멈추면 나는 다시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무엇이든 쓰려고 마음을 건드린다. 써야 하는데 가끔 생각이 고인다. 고인 생각에 빠져들 때마다 나는 답답함을 호소한다. 내 존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묻는다.
아메리카노를 입에 가득 머금는다. 얼음 한 조각은 잠든 내면을 깨운다. 두 번째 조각은 생각의 혈류가 되고 뇌에서 생기를 되찾게 돕는다. 나는 살아있음에 안도한다. 나는 생각을 하고 글로 옮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당신에게 종이 한 장을 부끄럽게 내민다. 그래, 글은 당신에게 고하는 내 존재의 증명서다. 부끄러운 일이다. 글을 쓴다는 것, 내 감각에 생각을 꾸민다는 건, 심장을 감추는 하루가 쌓인다.
더운 날이다. 비 오듯 땀은 흐르고 거리에서 내 생각은 두 가지에 고정된다. 벗어나야 한다는 것, 묶여야 한다는 것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유 없이 버스에 오른다. 에어컨 바람이 몰아치는 구석자리에 앉아, 읽던 페이지를 연다. 흐르던 땀이 피부 속에 스며들면 나는 잠에 빠질 것만 같다. 글자가 번진다. 수천 개의 글자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다 범람한다. 견딜 수 없어 버스에서 내리면 잿빛의 안개가 덮친다. 극과 극이다. 중간은 없는 세상에서 반대편을 오고 가는 사람이 된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아니겠지만 어디든 나는 향해야 한다. 나는 고인물이 아니다.
카페로 돌아온다. 나는 다시 사람을 목격한다. 스마트폰을 새끼손가락으로 슬쩍 건드리는 사람, 노트북을 자리에 두고 몇 시간째 나타나지 않는 사람, 케이크 한 조각을 두고 미소를 교환하는 두 사람, 누군가와 비밀스럽게 통화하는 사람. 이 공간엔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즐비하다.
내가 보는 세상은 마치 평면의 조합인 것 같다. 나는 사람과 사물을 오직 평면의 이미지로 본다. 평면에 각인된 이야기를 포집하려는 듯 오랫동안 관찰만 한다. 그러다가 가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백색 소음 같은 생각을 날려 보낸다. 갈 수는 없어도 생각은 어디나 닿을 수 있으니 눈을 감아도 쓰는 데 문제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