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근아 Apr 22. 2024

09. 이젠 이 쫄보에게도 동지가 있다

시댁에 전화하는게 이리 어려울 일인가

09


동지가 있는 삶




2주간의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행복하면서도 무거운 일들이 산더미로 쌓여있었다.

일단 첫 번째는, 바로 양가 부모님 찾아뵙기. 우리 양가의 분위기는 비슷한 듯 굉장히 다르다. 화기애애하고 따뜻한 것은 닮아있지만 어른들의 성향이 극과 극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 부모님은 방목형이다. 장점은 무조건 적으로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든든함과 그 어떠한 가능성도 실현될 수 있는 실제라는 것을 알게한 배움이 있는 어린시절이 있다는 점. 그리고 아쉬움이라면 방향을 잃었을 땐 어른들이 가르쳐주는 표지판이 잘 안보였다는 것. 한 마디로 내가 뭘 하든 내 뒤를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지만, 뭘 해야할 지 모르겠을때 인생 선배로써 알려주는 지침같은 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오빠네 부모님은 앞길을 척척 준비해주시는 분들이다. 장점은 가만히 있어도 갈 길을 알려주시고 조언해주는 든든한 조언자가 있다는 점이고, 아쉬운 점은 그 조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그와 다른 선택을 할 땐, 부모님부터 설득을 해야한다는 점. 내 선택을 믿어주기 보다는 걱정하시는 분들이라 그 마음도 신경써야 한다는 점. 이게 지금까지 내가 느낀 포인트들이다.


이리도 비슷하면서 판이하게 다른 두 집을 대하는 일. 생각보다 레벨이 높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가장 잘 알기에 더 잘 해드릴 수 있지만, 새로운 가족인 시댁에 뭐든 똑같이 하자니 벅찼다. 그래서 줄이게 되는 건 우리집에 쓰는 에너지였다. 선물에 대한 고민도 시부모님을 향해 더 오래했고, 연락을 3번 하면 우리집에 한 번 할까말까였다. 내 진심을 알아 줄거라 믿기에 그랬지만 그래서 더 미안하고 슬펐다. '딸이 결혼하 그 인생에서 더 밀려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실까봐. 그러나 미움받기 싫고, 부모님 욕먹이기 싫은 마음에 시댁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썼다. 뭐 그리 큰 것을 하진 않았지만 말 한마디라도 더 붙임성 있게 하려고 하고, 연락을 해도 한 번을 더 하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렸다. 동지가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나의 마음 구석구석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 결론은 각자 본가를 대하는일에 앞장서자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수습은 각자가 각자 집에 하기로 한다. 의무를 다할때도 각자가 각자집에 앞장선다. 단 칭찬받을 일은 교차로 나는 시댁에, 오빠는 우리집에 앞장선다. 연락도 각자가 각자의 집에 앞장서서 취한다. 이게 어찌보면 되게 냉정한 논리 같겠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를 위한 방향이라 생각했다.



이해관계가 더욱 돈독할 수록 오해는 줄고, 위로는 크다.



다행히도 오빠가 그 시작을 잘 해주었다. 내가 어려워 할 상황은 오빠가 오빠의 의견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짚어가며 거절했고,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 한 상황은 나의 아이디어임을 더 힘주어 이야기해주었다. 아, 이렇게 든든한 동지가 어딨을까. 이 동지라면 어떠한 전쟁 상황에서도 내 뒤를 맡길 수 있다. 이번에도 오빠의 배려를 받고서야 오빠를 배려할 방향을 잡았다. 가끔 우리 부모님과 식사를 한 뒤, 내가 부모님께 전화 혹은 메시지를 해서 '오빠가 고마워 한다', '덕분에 우리가 잘 먹었다' 등의 인사를 전했다.


그러다 문득 알았다. 내가 몰랐던 어느 날, 우리 부모님과 저녁을 먹고 들어온 밤에 오빠가 먼저 엄마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던 것이다. 나는 몰랐다. 엄마를 통해 알았다. 그러니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든 나였다. 똑부러진 척 하다가, 한 걸음 나아가 더 큰 배려를 보인 오빠의 모습에 따뜻한 한 방을 먹은 것이다.


부모님 선물사러 쇼핑-




아. 이리도 맞춤인 베필이 있을까.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하라는 말이요,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오해받는 일이다.


오빠는 내게 의무감이 들지 않도록 솔선수범한다. 집안 일도 그렇다. 머리카락을 치워달라는 말보다 수 십번을 자기가 먼저 치워보인다. 그것도 내가 치우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내가 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그걸 느끼는 순간 나는 오빠에게 아무말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오빠는 내 뒤에서 많은 것을 대신 했겠구나.' 그 후엔 오빠에게 가질 수 있는 사소한 바람도 무의미해진다. '오빠는 나한테 말도 않고 내 뒤를 다 처리해주고 있는데, 이 것정도는 내가 해야지.' 각 집의 어른들을 대하는 것에도 그랬다. 이렇게 우리 엄마에게 싹싹하게 잘 해주고, 내가 모르는 순간에도 이런 일이 많았을텐데 우리 어머님께 혹은 아버님께 나도 사랑한다 한 마디 더 해드려야지.




나보다 일 잘하고, 심지어 시간 날 때 내 일도 좀 거들어주는 동료가 있다는 것.

이거 거의 판타지인데, 내 삶이 지금 판타지다. 아. 친한 언니가 그랬다. 집안일 분배 하지말라고. 그냥 나 혼자 산다 생각하고 다 혼자하라고. 사실 자취한다 생각하면 일이 그렇게 크게 는것도 아니라고. 그런데 나는 그 모든 좋은 시작을 오빠가 하고 나서야 뒤따라 시작하게 될까.


작은 것 하나라도 내가 먼저 시작하는게 앞으로의 목표다.

오늘 '부모님께하는 이유없는 안부전화' 내가 시작하도록 하지.


아. 그치만 막상하려니 떨리고 부담되네.

그치만 해보겠다. 오빠도 그랬을테니.



이전 08화 08. 고이지 않고, 넘치지 않게. 너는 바다잖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