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을 콕 지정해 드릴 테니 그때 오시면 안 될까요?"
"... 안됩니다."
이 월례행사 손님은 주최 측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고 갑자기 방문을 해댄다. 그마저도 방문주기가 한번 틀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이제 오는지 저제 오는지 알게 뭐람.
수영강습 있는 날에 손님이 와 계시면 '오늘 운동은 그냥 좀 쉬지'라고 하는 자아 1과, 수영장 락스물 냄새에 마음의 평안이라도 얻고 싶은 자아 2의 내적 씨름이 벌어진다.
항간에 탐폰이나 생리컵을 쓰면 수영장에 들어가도 괜찮다고들 하던데. 약간의 운동은 통증을 줄이는데 도움도 되고 기분도 나아진다고 하니까 시도나 한번 해볼까. 이곳저곳 사용 후기들을 기웃거려 본다.
탐폰을 써볼까. 일전에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았던 괴로웠던 경험으로 탐폰은 일찌감치 리스트 탈락. 호기심이 생기는건 바로 이 녀석이다. 생리컵.
구매비용은 비싼 편이에요.
그러네, 실리콘 컵이 하나에 삼-사만 원?
그렇지만 8시간-12시간마다 내용물을 비우고 세척 후 다시 장착하는 식으로 재사용이 가능해요.
오호 친환경적, 반영구적이군. 그래, 어떻게 사용하는 건데?
C 접기, 펀치다운 접기, S자접기, 7자접기 방법이 있어요.
으. 으응? 접는다고?
네이밍 자체가 '컵'이길래 접어서 쓰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지. 색종이도 아닌데 유튜브를 보면서 접는 연습까지 해야 한다니. 김영만 아저씨도 울고 가시겠다 야. 꼬집듯이 잡고 당겨 빼라는 말은 또 뭐람. 실리콘 덩어리와 밀당이나 하게 생겼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너도 탈락이다.
그러고 보니 수영 강습비용을 결제했던 카드내역들이 바람처럼 스치며 순식간에 요약이 된다. 나는 그동안 '여성할인'이라는 이름으로 수영장을 이용할 수 없는 생리기간에 해당하는 이용료 10%를 감면받아 왔던 것.
응? 이거 수영장 오지 말란 거였네. 물질 한번 더 해보겠다고 분투하는 내 자아와 10% 할인금액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에 피식 웃음이 나고 만다.
"저는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육아 휴직 없이 끝까지 일할 수 있고요. 생리휴가도 필요 없습니다. 폐경이 제 장점입니다."
전직 수영선수 출신이던 주인공이 결혼과 출산 앞에서 본인을 잃어가다 수영에 대한 꿈을 다시 찾는 이야기로 그려진 영화 <첨벙>. 수영강사를 뽑는 면접장에서 주인공이 외친 몇 마디가 나를 몇 번이고 다시 그 장면으로 데리고 간다.
결국 이 모든 고민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수영장 물속에서 평안을 찾고 싶은 자아도, 여자의 몸으로 살아가는 나 자신도 모두 내가 사랑해야 할 나의 일부니까.
*사진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