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하려 가진 게 아니에요.

임신은 곧 애국이라 말하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

by 이진희
요즘 같은 시대에 애국하네


배가 불러오면서 이 말을 하루 걸러 한 번씩 듣습니다. 화자는 회사선배부터 처음 보는 식당사장님까지 대중없어요. 불쑥불쑥 이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출산 시대에 임신했다는 데 대한 칭찬(?)이자 격려로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만,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불편합니다. 이 느낌의 기원은 무엇일까요?


우선 제가 임신을 결심한 동기에 애국은 1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애국은 장애물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그동안 애국을 명목으로 얼마나 폭력적이었던가요. 국가는 국민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해 있어야지, 나라를 위해 국민의 권리가 파괴되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임신이 애국이라고 말씀하시는 분 중에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 여쭙고 싶어요.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그 개인적(!)인 순간에 나라를 생각하셨는지. 사람 사이의 사랑이건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건 사랑은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애국은 제가 이 나라를 아끼는 만큼 알아서 할게요.


한 술 더 떠 '연금' 드립도 자주 듣습니다. '발산'역 근처의 '삼계탕'집 사장님이 대표적이었습니다. 반찬을 갖다 주며 건네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유~ 감사해요. 그 뱃속 애들이 제 연금 내주는 거잖아요


입맛이 뚝 떨어졌습니다. 당황되다 못해 화도 나더군요. 그저 하는 말이겠거니 넘기고 싶은데 쉽지 않더군요. 가게 곳곳에 '손님이 제일이다' 류의 문구가 붙어있지만 가식으로 보였습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가 본인의 연금 납부자로 보이는 마당에 손님이 어찌 사람으로 보일까요. 그저 두당 15000원 돈 나올 구멍으로 보이겠거니 싶더라고요. 유심히 보니 손님을 향한 미소나 말과, 일하는 분(피고용자)들을 향한 말과 표정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저도 월급에서 꼬박꼬박 국민연금을 내고 있지만 제 아이들과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이 일해서 번 돈-그들이 돈을 벌지 안 벌지도 본인들 선택-이 제 노후자금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저보다 훨씬 더 부자일 그 삼계탕집 사장님의 주머니로는 더더욱 단 한 푼도 안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됩니다. 내 아이가 자신들의 몇 배수인 노년층의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과연 출산율에 도움이 될까요? 아이를 낳아 키우는 비용까지 따지면(네, 육아와 교육의 상당부분은 개인부담이고요) 오히려 낳지 않는 게 나 자신을 위해서나 아이들을 위해서 훨씬 현명한 결정 아닐까요?


그들은 아이들이 곧 본인들에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저 그들에게, 민족에, 국가에, 경제에 충실하게 복무할 대상이 필요한 지도요. 열심히 일하고, 군대를 가고, 세금을 내는 '정상적인 성인'이 많아야 안심이 되실 테니까요. 본인들이 국가로부터 그런 존재로밖에 대접받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최근에 또 누가 연금을 운운하길래 '아, 꼭 그렇진 않아요. 어떻게 얘네 국적이 한국이라고 확신하세요?'라고 농담처럼 되물으니 정색하며 당황하시더군요.


제가 임신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이 폭력적이고 팍팍한 대한민국에서도 때때로 삶이 흥미진진하고 살아볼 만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함께 가정공동체를 이룬 양반을 사랑하고, 저 자신도 꽤 좋고요. 우리 둘을 닮은 멤버를 충원해서 '힘들지만 제법 재밌는 이 삶을 너도 살아볼래?'라는 순수한 열망 하나였습니다.

이성이나 합리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면 결심이 꺾였습니다. 헬조선에서 흙수저로 태어나게 하느니 오히려 낳지 않는 게 당연한 결론이었지요.


그러니 부디 제게 애국이나 연금을 운운하지 말아 주세요. 다시 말하지만 애국하고 싶거나 고갈되는 연금이 걱정되어 아이를 가진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부탁합니다. 앞으로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최소한의 예절과 윤리를 지켜주시길. 나라를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혐오'하지 않게 키우고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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