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아들 내외가 전세를 탈출하고 집을 샀을 때부터였다. 새 집 계약을 마친 후 아들내외는 조심스레 우리 부부의 의사를 타진해왔다.
"저희가 잠시 이 집에 들어오면 안 될까요?"
아들 내외가 산 집에는 전세 입주자가 살고 있었는데 계약만료일은 6개월 후였다. 그런데 아들 내외가 살고 있는 전셋집은 비워줘야 했으니 6개월이라는 오차가 생긴 것이다.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위약금을 주고 새로 산 집의 전세 입주자를 내보내든지(여기엔 전세입주자의 동의도 있어야 하겠지만), 6개월 동안 살 수있는 다른 곳을 알아보든지. 그래서 아들 내외는 그 다른 곳을 우리집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부탁을 해온 것이다.
"그렇게 해."
나와 남편은 흔쾌히 대답했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두 돌이 막 지난 사랑이의 재롱을 볼 수 있게 되어 좋았고 맞벌이하던 아들 내외는 사랑이를 돌보던 도우미 월급을 아끼게 되었으니 모두에게 나쁘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모두는 6개월이라는 시한부 대가족일 줄 알았다.
잠시 살 거라고 해도 따로 살던 두 집을 합치는 건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 집에 들어오기 위해 아들의 살림들을 정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6개월 후 나간다는 걸 전제로 한 합가라서 다 버릴 수도 없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나도 그런 편이지만 아들 내외도 둘 다 검소한 성격들이라 쓸데없는 살림살이들이 많지 않았다. 일단 겹치는 가전제품, 식탁 같은 것은 처리했다. 아들 식구들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들만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지만 그래도 두 집 살림이라 테트리스 맞추듯 구석구석 끼우고 욱여넣어야 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생활의 변화는 나를 긴장시켰다. 많은 것들이 달라지겠지.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겠지. 아들과 며느리와의 한 집에서의 생활, 서로 다른 생활과 다른 세대의 사람들이 한 집에서 살려면 양보하고 조심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할 사람은 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젊은 아들 내외보다 훨씬 많은 삶을 살았다. 그 세월 동안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삶의 노하우도 그만큼 축적되었다. 그러니 아직 인생의 초보자인 아들 내외를 배려하고 이해해 주어야 할 사람은 내가 되는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랑이에게 안전한 집을 만드는 것도 중요했다.
두 내외만 살던 집이라 이제 두 돌이 지난 아이에게는 위험한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사랑이는 얌전한 아이가 아니었고 곱상한 얼굴과 달리 사내아이처럼 거칠게 노는 편이었다. 장난감도 인형보다 차를 더 좋아하고 활동범위가 컸고 어디든 올라가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특히 신경 쓰인 것은 사랑이의 취미생활이었다. 사랑이는 낙서를 좋아했다.
걸음마를 할 줄 알고 팔에 색연필을 쥘 힘이 생길 때부터 곳곳에 호작질을 하고 돌아다녔다. 나는 도우미에게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봐달라는 부탁이 있을 때 외엔 아들집에 가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아들집에 갔다가 닥치는 대로 끼적이고 다녀 성한 공간이 없는 아들의 집 벽을 보고 놀라 으악! 비명을 지른 적도 있었다. 사랑이의 팔이 닿는 높이에는 낙서가 빼곡 했었다. 아들 집에 새로 입주하는 사람은 어차피 새로 도배하고 들어올 거니 상관없다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리 집에도 어쩌다 한 번 왔다간 간 후에 사랑이는 여지없이 흔적을 남겼다. 진작에 다 채워버린 자기네 집의 벽에 비하면 우리 집 벽은 처녀지와 다름없었으니 더 신났을 것이다.
사랑이의 호작질을 막으려 다른 종이를 주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사랑이는 금지된 장난에 스릴마저 느끼는 거 같았다. 심지어 나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면 벽 앞에서 색연필을 들고 까닥대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깨달은 내가 안돼~ 소리치며 달려가면 에헤헤, 웃으며 순식간에 내 눈앞에서 낙서를 해치우곤 했다.
그래서 합가가 결정되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위험한 짓 잘하고 저지레 심한 사랑이를 위해 가구마다 충격 완화 스펀지를 붙이는 거였고, 두 번째로 한 일은 벽마다 사랑이의 팔이 닿을 높이만큼의 공간에 마음껏 호작질을 해도 되게 모조지를 붙여 주는 일이었다. 집은 어수선해 졌지만 흐뭇했다. 막기보다 사랑이의 예술혼을 불태울 공간을 마련해 주었으니 이만하면 난 훌륭한 할미가 아닌가 스스로가 대견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사랑이는 우리 집에 오자 신나게 낙서를 시작한 건 맞지만 내가 붙여둔 하얀 모조지 위가 아니었다. 사랑이가 공략한 곳은 모조지로 미처 다 가리지 못한, 가릴 수가 없는 빈 공간들이었다. 이를테면 벽 모서리, 문설주, 문 틈새 같은.
모조지는 낙서의 공간이 아니라 찢거나 색연필 같은 걸로 찍어 구멍을 내는 용도로 썼다.
못하게 하면 사랑이는 더 신이 나서 그런 틈새를 찾아다녔고 쫓아다니며 지워도 보면 또 낙서가 그득했다.
톰과 제리 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 만화를 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갑의 입장이고 덩치도 큰 톰과, 을의 입장이고 약한 제리의 싸움에서 톰이 이기는 일은 없다. 우리도 그랬다. 나는 절대 사랑이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벽지는 점점 너덜해졌고 나무로 된 방문은 낙서 그림이 겹쳐지고 또 겹쳐지니 잘 지지도 않았다. 게다가 사랑이는 색연필이 아니라 사인펜을 쓰면 내가 더 질겁한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 후부터는 아무리 감춰도 용케 찾아내 사인펜으로 호작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낙서일수록 사랑이는 더 뿌듯해하며 나를 불러 확인시켰다.
에헤헤,
웃는 사랑이의 웃음 앞에 결국 내가 먼저 나가떨어졌다. 저 귀여운 말썽쟁이를 워쪄!
집 버리고 대신 사랑이의 창의력을 건지지 뭐.
근데 창의력이 맞나?
맞겠지......
*유아가 그리는 난화는 유아 본능적인 행위로 유아의 내면세계를 거짓 없이 그려내는 표현수단이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아동의 자발적인 난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황재숙 임상미술치료전공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때 했던 합가의 기한 6개월은 상호 합의 하에 계속 연장되어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