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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이라이트 Oct 25. 2022

글을 쓰면 발전하기 싫어도 해

나를 레벨업하는 페르소나 SNS 글쓰기 (에필로그)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감이 안 되는 말이 있었어요. 인생길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단 말이요. 왜냐하면 나는 인생을 뒷짐 지고 터벅터벅 걸어왔거든. 근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일과 육아라는 두 마리 말이 끄는 전차의 꽁무니에 늘어진 밧줄에 양팔이 묶인 채 배를 바닥에 깔고 질질 끌려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이 브런치북은 과장 좀 보태자면 처절한 투쟁의 산물이에요. 일할 거 다 하고 애 볼 거 다 보고 밤에 남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쓴. 하지만 그런 거 잘 못 느꼈을걸? 왜냐하면 시종 유쾌하고 붙임성 있는 사람이라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페르소나를 매번 마음속에 담아두고 글을 썼으니까.




말했다시피 이 브런치북은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예정작’으로 썼어요. 만에 하나! 아주 희박한 확률로! 당선이 안 될 수도 있겠지. 그래도 괜찮아. 장첸이 그랬거든. 아니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 아니야. 윤계상 말고 대만 배우 장첸(張震).


저는 상을 받기 위해서 연기를 하진 않아요. 후보에 올랐다가 수상을 하지 못할 때는 당연히 결과에 실망할 때도 있죠. 하지만 상을 받든 못 받든 제게는 부끄럽지 않은 연기와 관객이 가장 중요합니다. (《에스콰이어》 2022년 10월)


나도 그래요. 상을 못 받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고 당신이 읽어준 걸로 만족해. 아니 오해하지 마. 부끄럽지 않다는 게 여기 실린 글의 완성도에 만족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부끄러운 부분, 미진한 부분 많지. 하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나는 내 경험을 토대로 진실한 글을 썼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아요. 없는 얘기 지어내지 않았고 여기서 말한 그대로 글을 썼어요. 다시 말해


1. 편하게 앉거나 누워서

2.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페르소나를 떠올리고

3. 개요 없이 의식의 흐름 대로 초고를 쓴 후

4. 퇴고를 작작 했어요.

5. 대신 글감과 초고가 숙성될 시간을 주긴 했지.




내가 권하는 페르소나 SNS 글쓰기는 실제로 내가 수년째 써먹고 있는 자기발견법이자 자아실현법이예요. 그래서 효과가 있었냐고? 응. 내가 요즘 허리 때문에 도수 치료를 받는데 치료사 선생님하고 1시간 내내 떠들어. 예전 같았으면 그냥 상대가 하는 얘기를 들어주기만 했을 거예요. 중간중간 어색한 침묵이 많이 깔렸겠지. 하지만 지금은 내 얘기 많이 해. 왜냐하면 그동안 페르소나 SNS 글쓰기를 통해 내 얘기를 길게 하는 법을 익혔거든. 그래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알았거든.


아니 그렇다고 내가 이상적 페르소나에 도달했다는 말은 아니예요.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어. 하지만 나는 비록 조금씩일지언정 계속 발전 중이에요. 낯선 사람 앞에서 쭈뼛거리고 친한 사람들에게도 내 얘기를 자세히 하지 않던 내가 낯선 사람에게도 선뜻 내 얘기를 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단 말이지.


글을 쓰는 사람은 다 이렇게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글을 쓰자면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을 돌아볼 수밖에 없거든. 그러니까 글쓰기는 매순간이 자아성찰이에요. 그렇다고 돌아보기만 하는 건 아니야. 앞날을 내다보기도 하지. 성찰은 거의 항상 미래에 대한 다짐을 낳으니까. 설령 당신이 의식하진 못할지라도. 그러니까 글쓰기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며 나를 찾고 발현하는 일이에요.


물론 사람이 항상 발전만 할 순 없겠지. 글을 쓰든 뭘 하든 성장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는 느낌이 드는 시기도 분명히 와요. 내가 한창 요가를 수련할 때 선생님이 그랬어요. 고명은 시멘트 벽에 고무줄로 묶인 사람인 것 같다고. 열심히 고무줄을 앞으로 밀다가 다시 벽으로 돌아간다고. 그러면 어떡해야 하죠, 선생님? 계속 수련하면서 고무줄을 튼튼하게 만들어야죠. 결국엔 시멘트 벽이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게.


끝내 그 벽을 부수지 못할지도 몰라. 대신 고무줄이 끊어지겠지. 그러면 알죠? 저 앞으로 튕겨나가는 거. 나는 이렇게 계속 글쓰기로 나를 발견하고 발현하다 보면 언젠가 저 멀리 날아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시간이야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어. 이제 40대니까 앞으로 살 날이 110년은 남았거든. 응, 나 150까지 살 거야. 일단 태어났으니까 뽕은 뽑고 죽어야지. 그러려고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운동도…… 아니 운동은 해야지. 졸라 귀찮지만 행복하게 오래 살려면 해야지.


당신도 시멘트 벽에 고무줄로 묶여 있는 느낌이라면 일단 뭐라도 써. 그러면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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