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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ia Jul 06. 2021

또, 접시를 깼다.

다친 손으로 사는 일상과 그 감정 사이에서.

2002년, 중간 졸업시험 무대에서 손을 다친 후 벌써 햇수로 20년이 흘렀다.

늘 조금의 열감과 통증이 함께하는 내 오른손, 엄지 아랫부분.

통증도 만성이 되면 어찌어찌 살아진다. 적응한다고 할까.

그런데, 피곤하게 지낸 다음 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접시를 깬다.

설거지를 하다 놓치고, 음식을 담으려다 놓치고, 그냥 다른 곳에 옮기려나 놓치는 바람에 깬 접시, 그릇, 컵들.

그래서 지금 우리 집 찬장의 식기구들은 죄다 짝이 맞지 않는다.

세트로 사두어도 결국에는 각자가 되는 나의 그릇들.


오늘 아침 또 접시를 깼다.

분주하게 아이들 식사를 차려주던 아침에.

주섬주섬 깨진 접시를 담고 청소기를 돌리는데, 입으로 피자를 밀어 넣으며 무심히 핸드폰을 바라보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래, 이 삶이 일상이 되어버렸으니 그렇겠지.


 쨍그랑, 와장창, 이런 소리도 늘 들으면 만성이 된다.

이전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며 야속한 감정을 집어넣어두고 마음이 생채기 하나를 더 만들었을 텐데, 그리고 며칠간 미지근한 표정으로 남편을 대했을 텐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분주한 아침에, 혼자 피자를 만들어 돌리고,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는 와중에, 아픈 손으로 인해 깨뜨린 접시를 혼자 치우는 것. 그것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닌 것을 알려야겠다 생각했다.

남편의 마음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나에게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릇을 깨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테니까.


계속 손에 힘이 없다는 것도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지 않았다.

실수하면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말았다.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알려야겠다. 내 오른손의 불편함도, 보이지 않는 오른 눈도, 그래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과 사고들도. 구구절절하고, 조금은 불편한 공기가 만들어지고, 잠시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게 된다 해도.

그래야 내 마음에 생채기를 만들지 않고,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갖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며 공존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 그 첫 발을 떼었다. 남편에게 사실 내 손이 계속 불편하고, 힘이 없다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내가 그릇을 깨었을 때 무심히 핸드폰을 보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 많이 서운하다고.

남편은 알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그제야 엄마 괜찮아?라고 물었다.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은, 당연한 게 되어버린다는 것은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간을 날려버리고 편리함을 주지만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나 또한 기억해야지.

그에게 일상처럼 보일지라도 분명히 힘들 수 있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눈,  주변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마음, 특별한 것은 없을지라도 내게 있는 시간, 조금의 재능, 가진 것들을 조금이나마 나누려는 마음이 내게 매일 새로이 채워지기를.


오늘 문득, 만약 내가 미술을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랬다면 깨어진 조각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실수로 깨어져 산산조각 나 흩어진 접시의 조각들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새로 태어나게 해 주었을 텐데.



오늘 비닐봉지로 들어가 버린 조각들아 미안해.
언젠가는 미술을 배워볼게!
그리고 그동안 나의 음식들을 담아주어 고마워.
아꼈던 내 파란 접시야 안녕!



다음에 접시를 깨면, 혼자 치우지 말아야지. 남편,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해야지.

나 계속 손 아픈 거 알지? 잊으면 안 돼!라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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