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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상자 Dec 29. 2022

대학 시간 강사 3년 계약 종료

몇 년 전, 서울에서 경기로 이사했다. 그런데 출퇴근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고민하다가 퇴직했고, 그 후 취업이 아닌, 평소 관심 있던 분야의 강사 양성 교육을 받으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준비를 거의 마치고 실행만 하면 됐을 때, 코로나가 세계를 강타했다.


모든 것이 멈췄던 시기였다. 하던 것도 멈추는 시기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는 없었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대학은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시간 강사 공고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 전공과 경력으로 지원할 만한 곳은 거의 없었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어서 지원했다. 전공과목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원해보는 경험이라 생각했을 뿐.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본 후,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코로나 때문에 이 방법 저 방법으로 원격 강의를 하느라 정신없던 첫 학기를 보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매년 갱신했던 계약이 끝났다. 이 대학의 시간 강사는 최대 3년 강의할 수 있고, 만약 또 강의하고 싶으면 공고가 나올 때 다시 지원해야 한다. 강의를 얼마나 성실하게 했는지, 강의 평가를 얼마나 잘 받았는지 상관없이 3년이면 끝이다.


얼마 전, 기말고사 문제를 출력하러 학과 사무실에 갔는데, 조교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시간 강사 보호 제도 중의 하나로 가입했던 퇴직연금 해지 서류였다. 강의 있는 날에만 학교에 가는 시간 강사의 서류이니, 은행에 별도로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학과에서 받는 것이 효율적일 테다. 하지만, 아직 평가와 성적 입력 등 해야 할 일이 남은 상태에서 그 서류를 받으니 씁쓸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장 생활을 할 때 한 번도 계약직으로 일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지난 3년 간 ‘일일 강의’를 제외하고는 이 대학의 강의에만 집중했다. 한 학기에 '6~9학점의 전공 강의'를 맡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등록금 아깝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강의안도 충실하게 작성했고, 실습도 많이 한 편이다. 실습 없이 강의만 하면 나도 편하다. 평가에 개인 시간을 써야 하니까. 하지만,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 노력을 인정받았는지 6학기 동안의 강의 평가 점수는 95점 내외였다. 내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며 다음 학기에도 만나고 싶다거나, 졸업 후에도 연락해준 학생이 있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시간 강사는 1년마다 재임용 평가를 받는다. 생각보다 재임용되지 않는 강사도 많더라. 학기 중에 바뀐 것도 봤다. 학생의 강의 만족도가 낮은 사람도 있고, 개인 사정도 있을 거다. 재임용은 학생들의 ‘강의 평가, 학과 구성원의 평가, 학교 행정 참여 점수 등’을 합산해서 평가하는데, 나는 두 번의 평가를 우수한 점수(모두 90점 이상)로 통과했다. 그러면 뭐 하나. 3년이면 종료인 걸. 뭔가 쓰고 버려지는 느낌이다. 이런 허무함이 반복되면 강사는 강의에 성의를 다 하지 않게 될 테고 피해받는 것은 학생일 텐데 근시안적인 대학 교육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학과장님은 학생들이 내 강의와 나를 너무 좋아한다며, 내가 새로운 공고에 지원하면 나를 꼭 뽑을 거라 말씀해 주셨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동안 오로지 전공과 경력으로 나를 선택해서 강의를 맡겨 주신 것에 감사할 뿐이다. 한 대학에서 3년 동안 강의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나저나 내 전공은 수요가 별로 없기도 하고 계약 해지 경험을 또 하기 싫기도 해서, 앞으로 대학 강의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기 객관화가 잘되는 편인 나는, 교수라 불리면서도 교수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급여는 적고, 대우는 없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기도 어려운, 뭐랄까. 뭐라고 해야 하나. 학생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 있는 명예직? 시간 강사에 대한 적당한 표현을 못 찾겠다.


작년 겨울,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은 연일 터졌던 부인의 ‘대학 강사 경력 허위 과장 기재 의혹’을 두둔하면서 이런 발언을 했다.


겸임 교수는 시간 강사이고,
시간 강사는 공개 채용이 아니다.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니다.


저 말을 듣자마자 뒷골이 땅겼다. 겸임 교수(소속 기관의 상시 근무자인 비전임교원)와 시간 강사(일정 교과의 강의만 담당하는 교원) 차이를 모르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공고 보러 대학 홈페이지를 얼마나 들락날락거리는데 공채가 아니라니... 서류 낼 게 얼마나 많은데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니라니... 그것도 3개월 이내 발급받은 서류로 내야 해서 준비할 때마다 얼마나 빡센데...


물론, 공정하지 않은 사회이니 여전히 인맥으로 임용되는 사람도 없진 않겠지. 그러나 시간 강사가 어떤 기준도 없이 뽑히는 것처럼 말한 건 너무 모욕적이었다. 이건 강사뿐 아니라, 임용을 담당하는 대학과 강의를 듣는 학생 모두를 모욕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학력 위조로 실형을 받았던 ‘신정아’라는 사람이 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할말하않.


개인적으로 학력 위조와 경력 부풀리기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허위와 과장으로 누군가의 자리를 뺏은 거니까. 어쩌면 낙하산보다 더 싫어하는지도 모르겠다. 학력 위조 연예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안 볼 정도로 싫다. 특히,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다가 여전히 뻔뻔하게 활동하고 있는, 라디오 진행자 ㅊㅎㅈ, 배우 ㅇㅅㅎ와 ㅈㅁㅎ, 작곡가 ㅈㅇㅎ이 제일 싫다. 얼마 전 복귀한 가수 ㅎㅈㅇ도 뭐…


하고 싶은 대로 아무 말하면서 편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내 인생은 왜 이리 빡빡한 걸까. 좋은 날이 오겠지. 올 거야. 와야 해.


아무튼, 시간 강사 여러분, 화이팅!!

아쉬움은 뒤로 하고, 공고문 뒤적거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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