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공학 2023
기능성 샴푸를 3번 샀는데, 한 번은 성공했고 두 번은 실패했습니다. 성공한 샴푸를 다시 사려고 하는데, 3번 모두 별다른 노력 없이 그저 우연하게 적합한 상품이 걸리길 바라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행으로 얻은 상품을 이어가는 방식에서 아주 작은 노력을 해 보자는 생각에 글을 씁니다.
더불어 '어그로' 성격으로 시리즈 이름을 거창하게 '소비공학'이라고 붙인 이유는 그냥 어감이 좋아서입니다. 게다가 찾아보니 2021년에도 비슷한 시도를 한 흔적이 있어서 이들을 글 말미에 목차로 링크합니다.
아마도 제가 성공이라고 판단하는 포인트는 머리를 감을 때 혹은 감고 나서 느끼는 상대적 청량감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능성 샴푸에 대한 필요성 자체는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두피 관리를 해 주면서(제가 요구한 적이 없는데 종종 해 줍니다) 느낀 청량감과 그들의 발언이 자꾸만 원래는 없던 욕망을 만들어 내는 듯합니다. 암튼 바로 다음에 샴푸를 쓸 때 지금 느끼는 '청량감'을 그대로 느끼고 싶고, 거기에 더하여 무엇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약한 욕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지식과 느끼는 감각 사이에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지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조금 있습니다.
제가 구입한 샴푸 패키지에서 단서를 찾아봅니다. 제 성공을 이끈 '입력 파라미터'를 찾는 일입니다. 함수형 인간답게 함수 기호가 떠오릅니다. '입력 파라미터'란 아래 그림에서 '82조 원 자리에 무엇이 들어갈까?'를 찾는 일입니다.
후보는 세 가지입니다.
오가니스트
아이스민트
두피쿨링 샴푸
오가니스트를 키워드로 구글링해 보니 대기업 브랜드였습니다. 저는 그저 퇴근길에 마주치는 올리브영 매장에서 눈으로 보고 찍은 것이라 민트색 색상과 글자 표기를 보고 판단했기에 브랜드인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가 청량감을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은 일단 아닌 듯합니다. 두 번째 키워드인 아이스민트로 구글링 했더니 먹는 것과 치약이 먼저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두피쿨링 샴푸를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 봤습니다.
구글링 결과에도 광고(스폰서 표기)가 먼저 등장합니다. 주문 링크 외에 '구매 전 제발 읽으세요'란 링크가 눈에 띄었습니다.
신뢰도를 할 수는 없지만, 일단 해당 링크를 스크롤하다가 '절대적으로 피해야 할 성분'에서 딱 멈췄습니다.
글을 더 훑어보니 샴푸의 흔적 잔여물이나 pH4.5 ~ pH 5.5 약산성 샴푸 등의 항목이 더 있었습니다. 그러나, 잔여물은 써 봐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성이 떨어진다 생각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부분을 성분으로 필터링하기 정도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글에서는 몇 가지 유해 화학물질을 인용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제가 쓰던 샴푸에도 해당 성분이 있는지 확인을 시도했습니다.
문제는 폰트가 너무 작고 프린트된 글자가 너무 많아서 (노안도 있는데)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오가니스트 아이스민트 두피쿨링 샴푸 성분'으로 구글링을 했는데, 상품 상세 설명에 있는 이미지에 돋보기 효과를 내는 UI를 제공하는 충격적인 결과만 나왔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샴푸 병에 프린트된 글씨는 읽는 것과 진배없는 불편함을 선사했습니다. 눈이 피곤할래, 손가락이 피곤할래 중에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하게 또 다른 글을 발견했는데, 주의할 성분 표기로 '화학 계면활성제', '설페이트 계면활성제', '실리콘' 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샴푸 병을 다시 보니 이들이 없다는 설명이 강조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글에서는 '불검출 시험성적서를 확인하자'라고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샴푸를 살 수 있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을 대신해 주는 큐레이터나 오피니언 리더가 필요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본 결과로 샴푸 병 뒷면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대충 감이 왔습니다. 그리고 굳이 어려운 화학물질을 외울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장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참조한 글들에서 성분 확인이 어려우면 성분확인 어플을 쓰라고 해서 '화해'란 앱의 존재를 알 수 있었습니다. (화장품에는 관심이 없지만) UX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써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깔고 나서 바로 '두피 샴푸'를 검색했더니 당연하게도 상품들이 등장합니다.
'나중에는 여기서 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일단 매장에 간 후에 '화해' 앱의 효용성을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어제 매장에 가서 샴푸를 샀습니다. 예상과 부합한 부분은 감이 통했다는 점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본 결과로 샴푸 병 뒷면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대충 감이 왔습니다. 그리고 굳이 어려운 화학물질을 외울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품 패키지에 유행 성분이 없다는 점이 표현되어 있어 굳이 성분까지 볼 필요는 없었습니다. 복수의 후보 중에서 두 개를 추린 후에 하나를 찍었는데, 잠시 고민을 하다가 1+1 하는 상품을 피했습니다. 써 보고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체험 전과 달라진 것으로 상품 설명은 꽤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치 10년 전에 이커머스 개발 관련 일을 할 때, 상품명에 MD들이 '간략한 상품 소개를 넣는 일'에 집착 수준의 노력을 하는 일이 이제야 이해를 조금 할 수 있었습니다.
어플을 써 보겠다는 각오는 실제로 매장 서서 그런 번거로움까지 겪고 싶지는 않아서 헛된 각오였음이 드러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