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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06. 2024

<Tidy First?> 번역이 바꿔 놓는 삶의 궤적

한국의 켄트 벡이 되기

한창 바쁘게 번역을 하고 있던 1월 초에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대략 이런 모양이었습니다. <켄트 벡의 글을 번역하며 알게 된 것들>에 자세히 썼듯이 처음부터 번역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독하는 방법'으로 번역을 택했습니다.


나를 움직이는 트리거 혹은 의식선언

머릿속에 그림이 자리 잡게 하는 데에 분명한 기여를 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2014년 QCon 행사에서 Chris Richardson 발표 자료의 한 장면입니다. 발표 주제가 아니라 자기소개 내용 중에서 누군가가 만든 제품이나 회사가 더 큰 회사에 인수합병 되는 일종의 산업 먹이사슬을 그린 장면이 어떤 이유인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림의 원래 맥락이 아니라 일상의 일들이 만드는 우연의 결과물에 대해 말과 글에 담은 일이 자주 있습니다. 찾아보니 <새로운 운칠기삼(運七技三) 활용법>이 눈에 띄네요. 지난 1월에는 저 글 속에서 '트리거' 개념에 휩싸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정독이 어려운 일상에 대한 인식이 '번역'을 감행하게 했는데, 또다시 의도와 무관한 강렬한 느낌을 만난 것이죠. 아래는 당시 써 둔 메모입니다.

<Annotated Reading List and References>이라는 부분을 번역하다가 잠시 강렬한 느낌에 선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책입니다.

강렬한 느낌의 바탕에는 Kent Beck의 강력 추천이 있었습니다.

I can’t recommend this book highly enough.

한편, 당시 구글링 하다가 찾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영원의 건축(The Timeless Way of Building)>라는 기사의 인용문은 충동을 실행해 옮기도록 자극했습니다.


올해는 교과서 독서를 시작해 보자

선언의 배경에 하나의 파문이 더 있었습니다. 박문호 박사님의 소개 영상을 보고 각오를 담은 <내년부터는 교과서 독서를 시작해 보자>를 썼지만, 아직 어떤 실천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선 선언이 파문이 되어 다시 트리거를 만드는 습관을 형성 중이란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낱말의 뜻을 또렷하게 차리는 일도 실천하기 위해 사전에서 파문(波紋)풀이를 찾아봅니다.

「1」 수면에 이는 물결.
「3」 어떤 일이 다른 데에 미치는 영향.

물결 파(波) 자와 무늬 문(紋) 자가 합쳐진 뜻의 첫 갈래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인데, 여기서 비롯한 세 번째 갈래의 쓰임이 제가 사용한 맥락이라 하겠네요.


더 오래된 파문과 연결하기

파문이라 했지만 사실은 각오일 텐데요. 각오 또한 사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각오는 둘 다 한자어로는 깨달음이란 뜻을 지닌 깨달을 각(覺)과 깨달을 오(悟)가 합쳐진 단어네요.

「1」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자연에서 관찰하는 파문은 서로 합쳐지기도 하고 간섭을 하기도 합니다. 강에서 관찰하는 파문이 아니라 마음속 각오가 파문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면 가지런하게 차리는 일이 일상을 대하는 데에 효과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먹이사슬 그림의 마지막에 있던 '집필'은 <한국의 마틴 파울러가 되기> 선언에서 비롯합니다. 브런치북으로 묶은 19개의 글 이후에도 <소프트웨어 설계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한 아기 발걸음>까지 총 25편의 글로 이어진 <한국의 마틴 파울러가 되기> 연재는 작년 7월 6일 소프트웨어 설계에 관심이 많은 두 분과 함께 했던 저녁 시간에 선언했던 일에서 출발합니다.

<도메인 모델링? 비즈니스 모델링 어떻게 하나요?>편을 쓰고 나서 지인 두 분이 모델링 학습을 하는 자리에 동석했다. 두 분이 의기투합하여 앞으로 6개월간 꾸준히 만나 도메인 스토리텔링을 글로 읽는 방법을 고민해 보겠다고 하셨다. 나는 두 분의 헌신에 대해 나 역시 무언가 기여를 하고 싶어서 두 분의 노력이 6개월을 이어가면, 내가 문서로 만드는 일은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했다. 7/6 도메인모델 선언이라 이름 붙이고, 그 흔적을 페이스북에 박제하여 올렸다.


집필 다음에 무엇이 기다릴까?

마무리는 이미 <소프트웨어 설계는 길닦기와 유사하고 유익한 관계 맺기다>에서 썼던 내용의 반복으로 끝냅니다.

메모하듯이 글을 쓰다가 퍼뜩 요즘IT에 썼던 글에서 '설계의 정의는 변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던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생업과 소프트웨어 설계가 거리가 있는 터라 시간을 투자할 동기도 부족했습니다. 그랬는데 뚜렷한 목적 없이 시작한 번역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진도를 나갈 수 있을 듯합니다. 어쩌면 이미 지난 글 <소프트웨어 설계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한 아기 발걸음>에서 나도 모르게 한 발 나갔는 지도 모릅니다.


주석

[1] 간섭(干涉)의 뜻도 찾아보았습니다.

    「2」 『물리』 두 개 이상의 파(波)가 한 점에서 만날 때 합쳐진 파의 진폭이 변하는 현상. 음파(音波)에서는 굉음(轟音)이, 빛에서는 간섭무늬가 나타난다.  

방패 간(干) 자와 건널 섭(涉) 자가 합쳐진 단어가 왜 저런 뜻이 되었는지는 단박에 짐작하기 어렵네요.


지난 한국의 켄트 벡이 되기 연재

1. 소프트웨어 설계는 길닦기와 유사하고 유익한 관계 맺기다

2. 소프트웨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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