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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영회 습작 Mar 26. 2023

내 인생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정말 잘 살다 간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를 읽고 생각 정리하기 下

이 글은 지난 글에 이어 지나영 님의 책 <마음이 흐르는 대로> 174 ~ 306쪽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마음이 흐르는 대로,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은 일

지나영 님이 전공 선택할 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 흉부외과 교수님의 말을 인용합니다.

"나는 내가 본 환자들 중에서 심장질환을 앓는 환자들을 가장 사랑했던 거야. 그들을 보면 제일 안타깝고 가장 먼저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지. 학생들도 전공과를 결정해야 할 때가 오면 자신이 어떤 환자들을 가장 사랑하는지, 어떤 환자를 볼 때 가장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지, 어떤 환자를 더 많이 도와주고 싶은지를 꼭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 해."

의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성을 개발할 때 유용한 지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이를 강화하는 또 다른 경험을 덧붙입니다.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중략> 내 마음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세상이 뜻하지 않게 변해버린다 하더라도,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꿋꿋이 내 길을 가면 된다는 것을.

'운칠기삼'을 떠올리면 실제로 그 일을 하면서 끌리고 익숙해지는가를 지켜보면 판단하는 일이 당장의 전망보다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손실회피편향 극복하기

여러 심리학 실험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우리는 돈과 같은 소중한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것을 똑같이 얻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크게 실망하고 괴로워한다.

놀랍게도 며칠 전 지인에게 들은 내용입니다.

그러다 보니 손실의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는 절로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이를 '손실회피편향loss aversion bias‘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던 시절 동료나 선배들의 어리섞은 조언이 그랬습니다.

흥미롭게도 많은 심리적 편향과 편견은 그러한 편견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순간 자연적으로 줄어든다. 즉, 우리가 부정적으로 사고하고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이 편향이 어느 정도 저절로 교정된다는 뜻이다.

요즘 동료와 함께 <팩트풀니스>를 다시 읽고 있는데 힘이 되는 말이네요. :)

'두려움을 안고 일단 점프'해보면 내가 예측하지 못한 경우의 수가 펼쳐지기도 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참 전에 읽었던 부자아빠 시리즈에서 강조하던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준비가 아니라 실행해야 얻는 것

흥미로운 건 정신과를 수련했기 때문에 내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것이다. 지금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내 영어를 듣고 내가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나이에 이민을 온 줄로 안다. 돌이켜보면 수련 당시 나의 환자들은 '원어민 개인 영어 교수'가 되어준 셈이었다.

"임자, 해봤어?"라는 정주영 회장님의 어록이 떠오릅니다. 정주영 회장님 어록은 2016년 <Micro Service, Docker로 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편에 쓰인 일화를 겪을 때 처음 떠올렸습니다.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과 잘 짜인 계획을 믿고 살았던 16년의 경험과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를 맛볼 때, 불현듯 (영상을 본 적도 없고) 책 하나 읽어본 적 없는 정주영 회장님 메시지가 떠오른 일은 놀랍습니다.


다음 문장을 읽을 때는 나도 영어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나 싶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내가 조금만 발음을 잘못하면 그건 아니라고 콕 집어서 친절하게 고쳐준다. 아이들은 자신이 어른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무척 신나 한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이렇다 보니 내가 미리부터 영어 실력을 너무 걱정해서 다른 과로 전환했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싶었다. 정신과가 나의 소명이라 믿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 길을 걸었다는 것을

읽으면서 우리는 상관관계를 쉽게 인지할 수 있지만, 대개의 문제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깨닫지 못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결과인 듯도 합니다. 저자가 인용한 카를 구스타프 융의 문구도 이를 언급하는 듯이 느껴집니다.

운명적이게도 내 삶의 모든 외적인 것들은 늘 우연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오직 나의 내부 세계만이 의미 있고 결정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내 삶이라는 너무나 소중한 조각품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지난 글에서 느낀 감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서글프고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나는 날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영, 너 이 정도면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오늘 하루 더 영어만 하면서 살았으니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나아질 거야"라며 스스로를 격려했다.

군살 없는 내 손이 나약함으로 비쳐서 다소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한번 그 기분을 만든 문장을 인용해 봅니다.

나라는 사람이 신의 창조물이라면, 내 삶은 내가 만드는 창조 작품이다. 삶이라는 큰 바위를 받침대에 올려두고 매일 조금씩 정으로 쳐 깎아나가는, 손에 굳은살이 가득한 그 '장인'이 바로 나인 것이다. <중략> 속상하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일수록 <중략> 내가 완성하고픈 이미지에 더욱 집중하려고 애썼다. <중략> 남에게 그 바위를 어떻게 만들지 맡겨버리기에는 '내 삶'이라는 조각품이 너무 귀하기 때문에.

비슷한 구절이 뒤에도 등장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딱 한 번 살다 갑니다. 그런데 내 인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싶나요?


If you don't speak up for yourself, no one will

자신이 공정하지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을 때 불평불만에 차 있기보다는, 내가 받고 싶은 대우를 침착하고 조리 있게 요청할 줄 아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기술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잘 실천 못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며 나는 "There is an exception to ever rule"과 "Everything is negotiable"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협상에 임하며 "그런 경우는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다"는 말을 되새기고, 또 "그렇게는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땐 "모든 것은 협상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미국에서는 이런 적극적인 자세를 "I won't take 'no' for an answer"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저자가 언급한 두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넣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침 페벗님 한 분이 그중 한 권의 책을 읽고 소감을 올려놓아 반가웠다.


거칠고도 소중한 내 삶을 걸고

아주 마음에 드는 장 제목과 마음에 드는 구절입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오직 그 사람만의 몫. 누가 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위로하건 간에. 결국 그의 삶과 죽음의 참 의미는 오직 그 사람 자신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뒤이어 제프 베조스의 후회 최소화의 법칙을 떠올리는 듯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나는 그 물음의 끝에서, 결국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매 순간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날 때마다 종종 시인 메리 올리버의 시구를 인용해 스스로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거칠고도 소중한 당신의 하나뿐인 삶을 걸고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하나요?

거칠고도...

그렇기에 나는 '거칠고도 소중한, 하나뿐인 내 삶을 걸고'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를 죽음의 순간에, 내가 사랑했던 것들과 나와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싶다.


진심으로 삶에 임한다는 것

한동안 외우고 다녔던 '지극한 정성'을 업데이트할 시점이란 메시지로 보이는 글귀입니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일수록 우리는 자기 삶의 핵심 원칙들을 점검하고,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리는 각각 다 다르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던가. 남에게 좋은 길이 나에게도 좋다는 법은 결코 없다.

그리고, 길을 잃고 무턱대고 열심히 하고 있을 때 혹은 진심으로 원하는 않은 일을 할 때 매번 저에게 찾아온 것은 좌절이었다는 경험을 소환합니다. 좌절을 결국 제가 삶의 원칙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 주위의 생각과 시선 때문에 나의 뜻을 굽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종국에 나의 삶은 주위 사람이 아닌 내가 직접 살아야 하고, 또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소화하는 데에는 지난 7년의 창업과 회사 운영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모든 문제의 책임자가 나로 귀결되는 상황 말이죠.

내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와 시선을 걷어내야 한다.

며칠 전에 두 후배와 저녁을 먹으면서 남 탓을 하지 않고도 넋두리를 하는 방법을 깨달은 듯합니다. 나를 공감해주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기대를 나에게 덧씌우는 일에 대해서도 그런 영리한 방법을 찾아야 할 듯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긍정적으로 바라볼 것

다시 한번 우리의 극복해야 할 본능을 설명합니다.

70퍼센트의 성공률이 다시 말해 30퍼센트의 실패율이라고 설명을 덧붙여주면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들도 다시 부정적으로 생각을 고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30퍼센트의 실패율이 다시 말해 70퍼센트의 성공률이라고  설명해 주면 부정적이던 평가가 크게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리의 뇌와 몸은 부정적인 것을 더 깊고 강하게, 오랫동안 느낀다. 실제로 떡 하나를 훔쳐 간 사람에 대한 분노는 쉽게 잊지 못하는 데 반해, 나에게 떡 하나를 더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빠르게 잊곤 한다.

<팩트풀니스>에서 배운 '가능주의자Possiblist'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본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이 필요합니다.

의식적으로 계속 무언가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다 보면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마음이 절로 누구러지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누르는 모든 것들 중에서 온전히 내가 만든 것들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감사가 가만히 있어도 절로 드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내가 노력해서 생기는 사고와 마음자세라고 본다.

요즘은 하지 않지만, 저 역시 가장 불행했던 시절 '감사 목록 쓰기'로 극복한 경험이 있어 잘 알고 있습니다.[1] 그리고, 다시 한번 이 책의 주제와도 같은 문장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걷는다면 그곳에서 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테니까.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사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다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는 것

우리의 아름다운 개성에 대한 이야기다.

각각의 사람이 바라는 것과 필요로 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서로 매우 유사해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이해하기 힘들 만큼 제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저는 (정신과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나름의 역사적 산물이란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사람의 정체성identity이나 그 사람만의 독특한 성격, 호불호, 그 외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어린 시절과 과거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유일한 존재이듯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유성도 그대로 들을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기를 기대하게 하는 문장입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일수록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그 아픔의 깊이를 알 수 없듯이, 나 역시 이제 와서야 내 공감의 깊이가 얼마나 얕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조만간 다시 <당신이 옳다>를 세 번째로 읽으면 그런 힘을 기를 날을 만들려고 합니다.


나 자신과의 미팅이 더 중요하다는 것

평소에는 호흡의 과정을 일일이 느끼거나 신경 쓰지 않지만, 명상을 하는 도중에는 좀 더 의도적으로 지금 이 순간의 경험과 느낌에 집중한다. 그러면 저절로 과거나 미래의 일에 대한 걱정이 어느 정도 마음속에서 사그라든다.

3년 전에 시도하고 포기했던 명상을 또 시도해 보아야 하나 싶은 글입니다.

잡생각 자체를 나쁘게 여길 필요 없이 그저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다시 숨 쉬기에 관심을 돌리면 된다. 이것을 '판단하지 않는 알아차림'이라고 한다.

알아차림은 시골 농부님 글에서도 자주 본 표현입니다. 한편, 저자는 명상을 '나 자신과의 미팅'이라고 소개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미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지금 여기 나'와 만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 볼 순 없을까.


나의 길을 넘어 초월의 길로

몰입감을 느끼면서 단숨에 읽었던 책인데 '초월의 길'이라는 표현은 저에게는 다소 거북한 문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문장의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참된 나를 실현하는 과정 속에서 그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이 진실한 삶이 아닐까 한다.

제가 자아실현이라고 하는 말을 저자는 자기실현이라고 썼습니다.

자기실현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잘 가려낸다. 대개 삶에서 많은 어려움을 직면해 본 사람들이며, 그 어려움을 풀어가야 할 문제로 보고 해결책을 구상하고, 또 그러한 과정에서 홀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대체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또 그들은 현실을 잘 직시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며, 자신 외의 일에도 늘 관심을 가진다. 동시에 자발적이고 창의적이면서 사회의 관례에 잘 구애받지도 않는다. 간혹 충동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내 얘기인 듯합니다.

프랭클은 자기실현이란 내가 그 실현을 좇아 노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때나 타인에게 사랑을 줄 때에, 즉, 자기초월을 향해 갈 때에 부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아리송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신의 각오와 함께 책을 마칩니다.

이제 나는 인생의 후반전을 앞두고 있다. <중략> 세상을 떠나게 될 그날, 아쉽지만 '내 인생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정말 잘 살다 간다'라고 흐뭇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주석

[1] 알면서도 하고 있지 않으니 반성하고 다시 그 일을 하거나 그에 준하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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