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규쌤을 만나다 - 박준규를 읽다 2
그동안은 준규쌤을 만나려면 지지학교로 가야 했다. 기숙형 학교다 보니 아이들이 늘 있어서 개인 시간을 거의 내지 못하셨다. 그런데 이번엔 3주간 방학을 하여 모처럼 쉬시기에 광화문에서 만나 여유지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언제나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2011년에 단재학교에 들어온 이후, 큰 일이 아니면 ‘써야 한다’는 부담만 가졌을 뿐 쓰진 못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더니, 단재학교 초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록이 없더라. 우치다 타츠루의 첫 강연에 대한 소감, 준규쌤이 추진한 Leel의 풍경들을 기록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못내 아쉽다. 어떤 감정이었는지, 그게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는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부턴 일상의 자질구레한 일도, 학교에서 놀러 간 일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아야만 그나마 기록을 남길 수 있었고 그 때문에 작년 기록이 여느 해의 기록보다도 많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부담을 내려놓으니, 실질적으로 글의 양도 대폭 늘어났다. 예전엔 한 편 적기도 버거웠던 것들이, 이젠 3편이나 4편까지 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댓글이 달리거나 글에 대한 평가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어, 내 글이 어떤지 궁금하기만 했다.
이 날 준규쌤은 나의 글에 대해 “처음에 단재학교에 왔을 때도 글을 잘 쓰긴 했는데, 요즘은 더 날카로워지고 명료해진 느낌이예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노래도 연습을 해서 잘 할 수 있기도 하지만, 타고난 것이 있으면 더 잘 부르는 것처럼 말이예요.”라고 평가해주셨다. 아무래도 정식으로 비평하는 자리가 아니기에, 비판보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주로 해준 것이다.
글을 써서 올렸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너무 잰 채 하며 글을 썼나?’, ‘너무 자질구레하게 길게 쓰다 보니 사람들은 읽지 않는 건가?’,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거라 생각해서 지겨우니 보지 않나?’하는 갖가지 상상에 빠져든다. 열심히 쓴 만큼 제대로 된 평가도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준규쌤도 있다고 이야기해주신다. 최근에 페친이 많이 늘어서 예전엔 ‘좋아요’가 10개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최근엔 무려 60개가 넘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자주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들으니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가 보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작년 11월에 브런치를 시작하며 무려 4년 전에 썼던 ‘네셔널지오그래픽전 후기’를 다시 올렸는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올린 지 무려 4일이나 지났는데 그 날은 조회수가 4.247회를 기록한 것이다. 그 글은 블로그에 이미 올려져 있었고, 브런치에도 4일 전에 올린 것인데, 왜 하필 그 날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봤던 것일까? 지금도 도무지 무슨 상황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을 통해 ‘조회수는 허상’이라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됐다. 조회수가 높다고 좋은 글이라, 잘 쓴 글이라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저 글도 운명이 있는지 때를 만나면 사람들이 들어와서 보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조용히 묻히기도 한다. 아마도 페이스북의 ‘좋아요’도 ‘조회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정리를 한들 뭐할 텐가? 한 번씩 글을 올릴 때마다 수시로 ‘조회수’를 확인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쳐다보게 되는 것을. ‘좋아요’가 많아지면 기분도 좋아지고, ‘조회수’가 높아지면 글의 완성도가 높다는 자부심이 드는 것을.
그런 공감대를 이야기할 즈음 준규쌤은 “지금 30대잖아요. 그래서 글에서 신선한 기운이 있는 건 장점이예요. 나의 경우 50대다 보니 아무래도 좀 그런 부분이 약하니까”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그건 가장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는 말이다.
글이란 게 삶이 밑바탕에 있다 보니, 나이가 들면서 경륜이 쌓이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앎의 폭이 넓어지면 더 좋은 글이 쓰여 진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좀 더 열심히 다듬어야겠다고 각오하고 있던 차였다. 그 때 그 얘길 하시니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이 어른의 말투나 표준어를 따라 글을 쓰거나, 자신의 경험이 아닌 이상적인 얘기를 글로 쓰면 호되게 나무랐다고 한다. 그건 자신의 삶을 저주하고 허황된 것만을 추종하는 거짓된 글쓰기이니 말이다. 그래서 글말이 아닌 입말을, 표준어가 아닌 사투리를, 관념의 언어가 아닌 현실의 언어를 중요하게 여기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준규쌤의 그 말엔 이오덕 선생님의 그 마음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건 곧 어떤 완벽한 지식체계로 꾸미지 말고,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말고 지금 나의 생각과 경험을 녹여내어 지금 내 나이 때 쓸 수 있는 글을 쓰면 된다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상식을 파괴하는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준규쌤이 쓴 글이 호응을 얻고 내가 쓴 글이 호응을 얻는 데엔 ‘남자’라는 밑바탕이 작용하고 있다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최근엔 여성 작가들도 많이 늘어났으며, 작가가 남자라고 높게 쳐주고, 여자라고 깔보는 세상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자 준규쌤은 “나와 같은 취지로 말하는 여성분들도 분명 많고, 건빵처럼 말하는 사람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이 모두 호평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거기엔 남자이기 때문에 대단해보이고, 믿을 만하다는 풍토가 작용하고 있는 거죠”라고 부연설명을 해주신다.
이건 어떻게 생각한다 해도 거부할 수 없는 말임에는 분명했다. 미처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을 뿐 분명히 ‘남자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는 있으니 말이다. 그 덕에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었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정리되니, 함부로 나 잘났다고 거만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겠더라. 내가 잘 났기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으로 서 있는 것일 뿐이다.
준규쌤은 2009년에 단재학교를 열어 4년 동안 중고생들과 생활하다가 2013년에 단재학교를 떠나 지지학교를 개교하면서 초등생들과 생활하고 있다. 공교육 교사로 19년을 근무하고 대안학교 교사로 6년을 근무한 것이다.
여기서 만나는 아이들은 공교육에서 나온 아이들이기에 획일성을 거부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아이들이라 할 만하다. 그 아이들 중 몇 명은 발작적인 증상을 보이기도 한단다. 화가 나서 격렬하게 화를 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어떤 것을 하기 싫으면 눈이 뒤집어져 생떼를 쓰거나 학교에 나오지 않고 버팅기거나 한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선 이런 아이가 있을 경우, 다수의 아이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그 아이를 격리시키고 매뉴얼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학생 수가 많기에 일일이 신경 쓸 수가 없다. 그에 반해 대안학교는 소수의 인원들이 다니는 작은 학교이기에 그런 아이에 대해 관찰이 가능하며, 어떤 식으로 변화해 가는지 기록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준규쌤은 “아이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대안학교여서 가능해요. 그런 경험들을 많이 하여 여러 사례를 접해볼수록 아이에 대한 이해심도 당연히 높아지죠. 그리고 단기간만 보지 않고 1년 이상의 시간을 함께 보내니 공교육에선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고 할 수 있죠”라고 말해주신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것이야말로 대안교육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뿐만 아니라 공교육 교사는 교육과정으로 수업이 정해져 있기에 수업은 하되, 배움이 뭔지, 인간이 뭔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안학교 교사는 주류교과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교육의 장을 만들어 나가기에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해야만 한다. 고민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는 결국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로도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학교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아이들이 어떤지 면밀히 관찰하여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짐짓 세상의 비밀을 얘기해주시려는 듯 “그런 아이들을 여럿 겪다 보니, 이젠 정리가 됐어요.”라고 말문을 여신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아이들의 심리가 궁금했기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경우 정말 이성을 상실해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고 생떼를 쓴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준규쌤은 “그런 경우 쇼라고 보면 됩니다”라고 단 번에 정리해주신다. 깜짝 놀랄 만한 얘기다. 보통의 부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상담을 받으러 가거나, 정신치료를 받으러 간다. 교사도 자신의 힘으론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두 손 두 발 들고 “외부기관의 도움을 받으세요”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발작적 폭력성=정신 이상’이라 서술해 버리니, 그 해결책도 이처럼 간단하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준규쌤은 그런 행동 자체도 결국 상황 판단에 따른 쇼라고 서술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그런 행동을 보일 때마다 ‘저건 저 아이도 컨트롤 할 수 없어서(평범한 말로 미쳐서) 저러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비위를 맞춰주려 해선 안 된다는 얘기하신다. 물론 단호하게 처음부터 잘라낼 순 없기에, 어떻게든 그 아이와 밀당을 할 수밖에 없단다. 어찌 되었든 그런 노력을 통해 ‘니가 지금 하는 행동은 너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하며 점차 그런 행동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거다.
‘쇼’라는 단어에 확 꽂혔다. 그건 아이들을 바라보는 틀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위에서 ‘리빙 라이브러리’에 대해 이야기했듯이, 그건 그 아이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함께 변해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의 변화는 그냥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즉 변할 만한 빌미가 필요하단다. 갑자기 자기 행동을 바꾸면 그렇지 않아도 자존심이 바닥인 아이 입장에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꼴’ 밖에 되지 않기에 바꾸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사가 그런 행동을 고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던지, 뭔가 존경할만한 구석이 있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야 아이가 행동을 바꾸며 “저 선생님이 저렇게 열심히 하니 나도 변해야지”라고 말하거나, “저 선생님은 존경할 만하니까 행동을 바꿨어”라고 변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어른과 같이 ‘곧 죽어도 자존심’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니, 개운해졌다. 어떻게든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들이 많다고 느껴졌고 미리 금을 그어 ‘넌 안 돼’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이들을 어른의 시선으로 평가하거나, 조급해 하지만 않는다면 훨씬 많은 부분에서 갈등보단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부터, 교육론과 아이들에 대한 인식론까지 쉴 새 없이 얘기는 진행됐다. 수많은 얘기를 전부다 기억할 수 없어, 독후감으로 남기는 내용은 부분 부분 생각나는 내용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 올해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보면, 준규쌤의 말 중에 순간순간 생각날 이야기들도 있을 것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공교육 교사로 일하다가 지금은 대안교육의 교사로 있는데, 후회해 본 적은 없으세요?”라는 뜬금포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준규샘은 “전혀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아마 학교에 있었다면 돌아버려서 제 정신이 아니었을 거예요. 그래도 예전엔 아이가 가난하다고 해서,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차별하거나 깔아뭉개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들이 모두 붕괴되어 버렸어요. 교실의 풍토가 바뀌어서 아이들은 뭘 하기도 전에 패배감에 휩싸여 있는데, 어찌 멀쩡하게 교사로 설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해주셨다. 박준규라는 책에 쓰여 있는 이야기 중에 엄청난 임팩트가 있는 말이기에 여기에 적으며, 『박준규』란 책의 독후감을 마칠까 한다.
목차
알아, 교보문고의 탁자?
숨겨진 이야기는 사물을 달리 보이게 만든다
나무가 던진 메시지, ‘너 혼자 잘났니?’
2. 박준규를 읽다 ① - ‘눈물 시리즈’는 준규식 「好哭場」
책! 책! 책! 사람 책을 읽읍시다!
‘눈물시리즈’ 1 - 울어재낄 수 있는, 그 마음
‘눈물시리즈’ 2 - 서마가 강림하사, 눈물 시리즈를 쓰게 하셨네~ 할렐루야!
‘눈물시리즈’ 3 - 1부의 흡입력, 2부의 가슴뭉클함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듣다
조회수, 좋아요가 뭐길래
완벽한 글이 아닌, 나의 글을 쓸 수 있나?
활발발한 아이들 1 - 한 학생을 오롯이 지켜볼 수 있다는 장점
활발발한 아이들 2 - 쇼를 하는 아이들
활발발한 아이들 3 - 행동을 바꿀 만한 빌미를 주는 교사여야 한다
『박준규』란 책을 덮으며,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