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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Sep 27. 2016

못하게 하면 하고 싶어지고, 하게 하면 하기 싫어진다

율동공원 트래킹 2

아무래도 2년이 넘도록 ‘트래킹’이란 커리큘럼을 진행하다 보니, 웬만한 곳은 거의 가봤다고 해도 될 정도다. 물론 여기엔 전제가 여럿 있다. 첫째 우리가 아는 곳이 매우 한정적이고, 둘째 당일치기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셋째 등산과 같이 힘든 곳이 아닌 좀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갈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다.               



▲ 13년엔 영화팀이 등산을 많이 갔었다. 그 절정은 지리산 천왕봉에 오른 것인데, 트래킹이 생기며 하지 못했다.




트래킹 장소를 정하며 집단지성을 맛보다

     

그래서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각자 파트를 정해 한 팀은 2학기 전체여행의 세부계획, 한 팀은 요리메뉴를, 한 팀은 트래킹 장소를 정하게 했다. 나는 트래킹팀을 맡아 함께 장소를 물색해봤는데, 갈 만한 장소도 많지 않고, 막상 가서도 할 만한 활동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껏 갔던 장소 중에 다시 갈 만한 곳을 다시 선정했고, 그걸 나머지 아이들에게 프리젠테이션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아이들은 “저번에 다 갔던 곳이잖아요. 짜는 시간에 아이들이 그냥 시간 때우기만 한 건 아니예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더라. 



▲ 처음에 짠 계획. 성의는 별로 없다고 볼 수 있다. 지금껏 간 곳을 중심으로 써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정해진 안을 놓고 아이들과 의견 조율을 하게 됐다. 아이들은 하늘공원 같이 최근에 갔던 곳(실제론 하늘공원에 가려다 그 옆에 있는 ‘평화의 공원’에 가서 런닝맨을 했음)이나 아차산 같은 단골코스는 빼고 다른 곳을 가자고 한다. 그래서 과천과학관, 한강 자전거 라이딩, 강동 허브천문공원이 채택되었다. 



▲ 그 후로 아이들과 절충하며 다듬은 계획안. 확실히 더 다듬어진 느낌이 있다.



영화팀과는 여러 번 라이딩을 한 적이 있기에 라이딩을 하고 싶었지만,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들이 있어서 계획에선 뺐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먼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자”는 의견을 냈고, “자전거를 잘 못 타거나, 아예 못 타는 아이는 어쩔거야?”라고 물으니, “교사 한 명은 잘 타는 아이들을 따라가고, 다른 한 명은 못 타는 아이들을 천천히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명답을 알려주더라. 이럴 때 보면 불가능이란 것도 어떻게 의견을 모으고 해결책을 강구하느냐에 따라,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단지성이란 이처럼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는 힘이다. 백지장만 맞들면 나은 게 아니라, 난관에 부딪힌 상황도 머리를 맞대고 낫다. 그러니 혼자 생각하다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그걸 안고서 끙끙 앓을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과 의논하여 해결책을 찾아볼 일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내 생각조차도 훨씬 명확해지는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작년 여름 방학 때 가평으로 떠난 1박 2일의 라이딩이 백미였고, 낙동강-한강 자전거 여행은 하이라이트였다.




못할 땐 하고 싶은 게 많고막상 할 수 있을 땐 없어진다

     

이번 트래킹 장소는 ‘율동공원’으로 정해졌다. 여긴 2014년 10월에 왔던 곳이다. 그냥 율동공원에서 트래킹만 하고 갔다면 이렇게까지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내 생애 최초의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됐다. 



▲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율동공원. 여기엔 나의 추억이 고이 묻혀 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때엔 왜 그리도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수첩에 빼곡하게 적곤 했다. 아마도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공부만 해야 한다는 반복된 일상 때문에 역동적인 활동들이나 기이한 경험들에 끌렸던 것 같다. 이건 어찌 보면 『디어 마이 프렌드』의 문정아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한 말을 위안삼아 현실의 팍팍함을 이겨내는 것 같은 상황이라 볼 수 있다. 한비야씨의 영향으로 국토종단이 하고 싶었고, 방송프로의 영향으로 번지점프가 하고 싶었으며, 여행 붐으로 배낭을 메고 하염없이 떠돌고 싶었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엔 ‘돈과 시간이 없어서’ 그걸 하지 못했고, 단재학교에 교사로 일하면서부터는 ‘도전을 한다는 것에 시들해져서’ 그걸 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언젠가 하겠다’라는 말은 허울뿐인 거짓말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 할 수 없을 땐 하고 싶지만, 막상 할 수 있을 땐 하기 싫다. 사람의 심리는 미묘하다.




율동공원엔 최초로 느낀 죽음의 공포가 묻혀 있다 

    

그렇게 어렴풋이 사라져 가던 꿈이 율동공원에서 이루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운 좋게도 그곳엔 번지점프대가 있었고, 승환이는 그날따라 하고 싶다며 민석이까지 함께 하자고 꼬드겼으니 말이다. 결국 승환이는 나이가 걸려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외쳤음에도 하지 못했고, 민석이만 하게 됐다. 민석이는 점프를 하며 공중에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준 후에 무사히 도착했다. 제법 무서웠을 텐데 당당히 해낸 걸 보니, 자랑스럽긴 하더라. 



▲ 민석이의 번지점프. 겁이 났을 텐데, 정말 잘했다. 그리고 공중도보의 위용을 맘껏 보여줬다.



민석이가 잘 도착한 것을 보고 입구로 나가려던 그때, 승태쌤은 “건빵쌤, 한번 해볼래요?”라고 아주 솔깃한 제안을 하더라.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제안을 받는 순간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며 잠시 멈칫했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하게 된 기쁨에 멈칫한 게 아니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불연 듯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고 싶다’의 반대면엔 ‘겁난다’, ‘두렵다’의 감정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이 기분은 흡사 국토종단을 떠나겠다며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고, 의기양양하다가도 막상 떠날 때가 되자 온갖 겁에 질려 있던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을까. 가까스로 겁에 질린 마음을 다잡고, 이런 기회를 날릴 수 없다는 생각에 “당연하죠”라고 외치며 신청을 했다. 그 후 난 인생 최초로 ‘나에게도 고소공포증이란 게 있구나. 그리고 그 공포증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구나’라는 것을 절감하며 몸을 던졌다.                



▲ 줄 하나에 매달린 영혼. 그런데 여기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때 처음으로 알았다. 고소공포증의 실체를.




서현역에 단재 친구들 모여라

     

서현역에서 10시에 모이기로 했기에 9시쯤 집에서 나가 전철을 탔다. 서현역이라 생각하고 내렸는데, 아뿔싸! 내가 내린 곳은 전역인 이매역이지 않은가. 분명히 잘 보고 내렸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이런 실수를 하고야 만 거다. 그래도 여긴 워낙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니, 걱정이 되진 않았다. 단지 좀 늦을까봐 그게 신경 쓰였을 뿐이다. 그래서 지상에 올라와 버스를 찾아보니 서현역으로 가는 버스는 많더라. 그래서 무작정 버스에 몸을 실었고 운 좋게도 서현역에는 늦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 이매역에서 서현역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실수를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2번 출구에 내려서 1번 출구를 찾는 건 생각보다 힘들더라. 보통은 출구 안내판이 도로에 노출되어 있어서 찾기가 쉬운데, 여긴 쇼핑몰 안쪽에 있어 안내판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헤매다가 그곳 근처에 내린 상현이를 만났고 함께 좀 더 헤맨 후에야 1번 출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두 왔고, 태기는 30분 정도 늦는다고 전화가 왔으며, 준영이와 성민이는 율동공원으로 바로 온다고 했고, 지훈이는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바로 독서실로 가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먼저 온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남아서 태기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 먼저 온 아이들은 버스를 타러 가고 난 태기를 기다린다. 이때 쇼핑몰로 들어가려 줄서 있는 기이한 광경을 봤다.




율동공원이란 쉼터에서 쉬다

     

태기는 10시 30분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재작년엔 여기서 율동공원까지 걸어갔었다. 40분 약간 넘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나무도 심어져 있는 쾌적한 길이라 걷기에 좋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그래서 약간 덥긴 해도 태기와 함께 걷기로 했다.  

태기와 수다를 떨면서 천은정사 옆의 새마을로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15번 버스가 우리 옆에 서는 것이다. 순간 ‘여기 근처에 정류장이 있나?’라는 생각을 하며 당황한 채 서있는데, 승태쌤이 출입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히 내밀더니 “얼른 타”라고 말을 하더라.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정리가 됐다. 하지만 우린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기 때문에 타지 않고 그냥 보냈다. 그 상황이 어찌나 웃기던지 태기와 난 한참이나 그곳에 서서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재꼈다. 그건 마치 마을버스가 단재학교 전용버스나 된 것처럼 세우고 사람을 태우려 했으니 말이다. 



▲ 여기서 좀 더 걸으며 오르막을 오르고 있으니, 버스가 흡사 택시처럼 우리 옆에 서는 것이다. 놀랄 노짜~



근데 재밌는 점은 먼저 출발한 팀과 30분이나 늦게 와서 걷기 시작한 우리 팀이 중간에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다. 서현역에서 15번 버스를 타는 곳이 꽤 헛갈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정류장을 찾느라 한참이나 헤맸고, 우리는 무작정 걸어서 시간을 단축하는 바람에 이와 같은 일이 생긴 것이다. 그러니 버스 타는 곳을 안다면 버스를 타고 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잘 모른다면 맘 편하게 걸어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2년 만에 찾아오지만, 왠지 낯설지가 않다. 겨우 한 번 찾았을 뿐인데도,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율동공원은 재작년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정말로 많았다. 더욱이 평소에 늦게 오던 준영이가 일찍 일어나 상일동에서 성민이를 만나 오는 바람에 무려 11시에 율동공원에 도착하여 우리를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지금껏 트래킹을 여러 번 했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기분이 좋더라. 

사람들이 이곳을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왔을 때도 여기저기 돗자리를 펴고 가족단위로, 친구단위로 편하게 얘기를 나누고 산책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고,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도 재작년과 거의 비슷한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점심을 함께 나눠 먹었다. 오후엔 자유롭게 배드민턴을 치고, 캣취볼을 주고받으며, 팀을 나눠 축구도 했고, 쫑이와 라비를 산책시키며 시간을 보냈다. 바쁨이 강요되고, 누구보다 ‘하나라도 더’라고 요구하는 시대에 바쁨보다 느림을, ‘하나라도 덜’이라 외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건 축복이다. 







과거 트래킹 기록보기        


14.03.21 서울 둘레길 트래킹

14.09.29 중랑천 트래킹

14.10.17 율동공원 트래킹   

14.11.14 여의도 트래킹

15.07.10 남산트래킹

16.03.11 통인시장 트래킹

16.03.25 롯데월드 트래킹

16.04.09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16.04.23 평화의 공원 런닝맨

16.06.03 남한산성 트래킹

16.06.17 검단산 트래킹





목차     


1. 자질구레한 일상을 남겨야 하는 이유

학교활동을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 했던 이유

사라질 것들에 미련은 갖지 말되, 기록은 남기다

최민식이 전해준, 일상을 남긴다는 것의 소중함     


2. 못하게 하면 하고 싶어지고하게 하면 하기 싫어진다

트래킹 장소를 정하며 집단지성을 맛보다

못할 땐 하고 싶은 게 많고, 막상 할 수 있을 땐 없어진다

율동공원엔 최초로 느낀 죽음의 공포가 묻혀 있다

서현역에 단재 친구들 모여라

율동공원이란 쉼터에서 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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