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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04. 2016

없어진 것과 새로 생긴 것 중, 어느 게 알기 쉬울까?

서울숲 트래킹 2

이번 트래킹 장소는 원래 ‘강동 허브천문공원’이었다. 트래킹 계획을 짤 때 민석이가 이 장소를 얘기했기 때문에, 민석이에게 세부계획을 목요일까지 짜오도록 했다.                



▲ 허브천문공원아, 좀만 기둘려~




민석이의 몸과 맘이 바빠 세부계획을 못 짰습니다라는 말

     

막상 목요일이 되어서 2학기 여행과 트래킹 세부 계획에 대해 회의를 하려 하니, 민석이는 아무런 계획도 짜오지 않았고, 심지어 약간 화난 투로 “거기 가봐야 할 게 없어요”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 정도였다. 그래서 다들 어안이 벙벙했던지 민석이를 몰아붙였다. 

근데 민석이에겐 비밀이 있었다. 두 가지 비밀로 인해 몸이 두 개여도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는 누가 들어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황당한 거였다. 



▲  우리의 회의 시간 분위기는 이렇다. 편안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정한다.



우선 납득이 되는 것부터 들어보자. 올해도 어김없이 광진IWILL 센터와 협업을 하며 ‘꿈틀이 축제’ 때 발표할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작년엔 2학기부터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시간이 많이 촉박했지만, 올핸 1학기부터 해오고 있기에 시간은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모여서 하는 일이니 변수가 없을 수는 없다. 이번엔 적극적으로 시나리오를 얘기하고 전면에 나서서 이끌어 간 한 학생은 현세와 규빈이었다. 이 둘이 회의 시간 내내 분위기를 주도하며 이끌어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규빈이가 거의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며, 현세가 그걸 토대로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면 됐다. 



▲ 작년 꿈틀이 축제 때는 엄청난 일이 있었다. 그게 벌써 어찌 되었든 1년 가까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계획은 자꾸 바뀌어야 제 맛 아니겠습니까?’라는 아이들의 장난스런 말처럼, 원래의 계획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함께 시나리오를 짜고 영화를 찍고 편집해야 할 현세가 2학기부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로 하면서, 프랑스어 학원에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영화에 대해선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런 상황 변동에 다들 어리둥절해 했고, 이미 영화를 만든 경험이 있는 민석이에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 순간 민석이는 ‘왜 하필 또 나냐고?’라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리 대안은 없었기에 자연스레 민석이에게 떠넘겨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민석이는 시나리오를 좀 더 디테일하게 다듬고 재촬영을 하기 시작했으며, 편집까지 도맡아 하게 되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부족하여 더욱 신경이 곤두섰고, 그만큼 과한 부담을 느꼈다. 이래서 맘은 한껏 바빴던 것이다. 



▲ 그럼에도 민석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있다.



다음은 황당한 비밀이다. 아이들이 한 때 엄청나게 사랑했던 게임은 ‘롤’이다. 하지만 올해부턴 ‘오버워치’의 열풍이 불더니 롤의 열기마저 꺾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롤은 남자 아이들 중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만 하던 것인데 반해, 오버워치는 남녀불문하고 게임을 하지 않던 아이들까지 가세하게 되었으니, ‘2016년은 오버워치의 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 작년엔 롤 게임을 영화에 담았는데, 올핸 오버워치의 해답게 오버워치가 영화에 담긴다.



이런 상황인데도 민석이는 아직까지 “오버워치보다 롤이 더 재밌어요”라고 말하며 여전히 롤을 하고, 롤 관련 영상을 더 많이 보고 있으니, “라이엇 게임즈는 민석이에게 상을 줘라~ 상을 줘라~ 그것도 두 번 챙겨줘라!”라고 건의를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이 시기엔 ‘롤드컵’이란 월드컵의 이름과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 경기가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민석이는 ‘어제나 오늘이나 롤드컵’이란 신조로 그걸 챙겨보던 시기였다. 그러나 문제는 롤드컵은 미국 현지에서 진행되는 경기이다 보니, 새벽 시간대에 생방송을 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같이 VOD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굳이 생방송을 볼 필요는 없음에도, 롤을 사랑하는 민석이는 밀려오는 새벽잠을 쫓아가며 롤드컵을 보았다. 그러니 잠이 적어지면서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고, 부족한 잠을 채우려 시간이 날 때마다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몸은 한껏 무거웠던 것이다. 



▲ 미국에서 하다 보니, 새벽에 봐야 하는 낭패가 있다.



이런 두 가지 이유가 겹치면서 민석이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고, ‘세부계획’은 전혀 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다른 방안을 생각해보다가 가까이에 있으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서울숲’으로 장소를 바꿔야만 했다.                



▲ 이런 이유로 우리의 목적지는 바뀌었다. 계획은 바뀌어야 제 맛^^;;




영동대교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우치다 타츠루의 말이 떠오르다 

    

학교 등교 시간은 8시 50분까지이지만, 트래킹은 그 장소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있고 출근시간과 겹치면 많이 힘들어지기에, 등교시간보다 1시간 늦은 10시에 모인다.

자전거를 타고 1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보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 남산공원 트래킹 땐 지훈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갔으며, 올해 1학기엔 어린이대공원에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 서울숲까지의 거리도 검색해 보니, 4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더라.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더욱이 이 날은 무덥던 여름이 거짓말처럼 지나가고 선선해져서 라이딩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 생각보다 그렇게 멀지 않아 자전거로 충분히 갈 수 있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달리고 있는데 영동대교를 지날 때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강 자전거길 위에서 영동대교 쪽을 보며 몇 사람이 서있었고, 영동대교 난간이 부서져 있었으며, 부서진 난간 밑으론 119 배가 떠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차가 난간에 부딪혀 한강으로 떨어졌다는 상황을 짐작케 했다. 



▲ 열심히 달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을 겪고 보니, 우치다 타츠루 선생이 강연 때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우치다쌤은 ‘있던 것이 없어진 경우와 없던 것이 생긴 경우, 어느 경우가 더 알기 쉬울까?’란 문제를 제시하며, 삶의 비의에 대해 얘기해줬기 때문이다. “보통 변화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있어야 할 게 없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없어야 할 게 있는 것입니다. 둘 중에 어떤 변화가 더 감지하기 어려울까요? 없었던 게 생겼다면 의식하지 않아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있었던 게 없어지는 경우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하며 결론을 맺었다. 

그 말마따나 실제로 이 날은 ‘뭔가 이상하다’는 직감이 순식간에 들었다. 여태까지는 본 적이 없는 광경을 영동대교 부근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쪽만을 응시하는 있는 사람들, 한강에서 떠있는 119의 빨간 배, 영동대교의 부러진 난간이 그것이다. 정말로 없는 게 생긴 경우는 우치다 선생의 말처럼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바로 알겠더라. 그러니 이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나처럼 어쩌다 한강에 나오는 사람도 알 정도다. 그러니 없던 게 있는 건 알기에 쉽다.



그에 반해 있던 게 없어지는 경우는 다르다. 그건 어쩌다 한 번 지나가는 경우엔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걸 알려면 늘 주위의 것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얼핏 보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관찰하듯 볼 수 있어야 한다. 반복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런 작은 변화를 알게 될 확률이 훨씬 높은 것이다. 그걸 ‘감수성’이라 할 수 있고, 우치다 선생의 말대로라면 ‘창의력’이라 할 수도 있다. 우린 흔히 안 해본 경험을 하고, 다양한 생각을 해봐야 창의력이 생긴다고 생각하는데, 우치다쌤은 반복적인 활동 속의 깊은 관찰을 통해 창의력이 생긴다고 하는 것이니 독특하면서도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있는 말이다. 

사족이지만, 그 사고는 강남에서 달리던 모범택시가 중앙선을 넘어 차 두 대를 들이받은 후에 차량 주인들이 따지러 오자 그 사람들을 피해 영동대교로 달리다가 난 사고라고 한다. 그땐 그런 내막을 알 순 없었기에, 큰 일이 아니길, 그리고 한강으로 추락한 차의 운전자가 무사하길 바라며 서울숲으로 향했다.                



▲ 놀라운 상황을 봤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속에서 우치다 타츠루 쌤의 말이 생각났다.




서울숲에 모였으니일정을 시작해보자

     

한강 자전거 길에서 서울숲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찾느라 좀 헤맸다. 그런데 막상 통로 근처까지 가니 자전거 길에 이정표가 써져 있더라. 



▲ 반갑게 자전거 길에 써 있다. 그러니 달리다가 이정표만 보고 들어가도 된다.



3번 출구에 도착하니 태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태기도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어제 지도로 대충 알려줬음에도 헤매지 않고 잘 온 거였다. 이럴 때 보면 태기는 도전정신도 있고, 좀 헤매더라도 그런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하니, 참 멋있는 녀석이란 생각이 든다. 비교를 해선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굳이 한다면 나보다 훨씬 멋진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 



▲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몸으로 부딪히며 찾아오는 저력. 그게 태기의 장점이다.



아이들이 모두 모인 시간은 10시 15분이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에 보니, 일반학교 아이들이 많이도 오더라. 서울숲에 모여 뭔가 미션을 하는 느낌이었는데, 왁자지껄하니 보기에 좋았다. 

저번 율동공원 트래킹 때는 규빈이가 강아지를 데리고 왔었는데, 이번엔 재홍이가 ‘감자’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저번과 이번 모두 강아지와 함께 하는 트래킹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두 사람의 반응은 매우 달랐기에, 이런 반응을 유심히 보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이번 트래킹은 알차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다. 여기에 관해선 다음 후기에 본격적으로 얘기하도록 하고, 이번 후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 드디어 서울숲 트래킹 With 감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목차     


1. 책 밖에 길이 있다

우린 너무도 당연히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만을 공부라 여기다

여러 가지의 공부가 있음에도, 오로지 하나의 공부만을 강요한다

트래킹으로 공부하자     


2. 없어진 것과 새로 생긴 것 중, 어느 게 알기 쉬울까?

민석이의 “몸과 맘이 바빠 세부계획을 못 짰습니다”라는 말

영동대교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우치다 타츠루의 말이 떠오르다

서울숲에 모였으니, 일정을 시작해보자


3. 서울숲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성장주의 사회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외치다

‘나와 같이 탈래’라는 말은 뾰루퉁한 지민일 웃게 한다

서울숲을 보며 느낀 점, 두 가지

육아만큼 힘든 육견이라고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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