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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Nov 05. 2016

서울숲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서울숲 트래킹 3

서울숲은 처음 오기 때문에 입구에서 조금 헤맸다. 들어가는 길에 보니 사람들이 많이 나왔더라. 학생들은 소풍을 왔는지 여기저기 흩어져 놀고 있었으며, 연인들은 자전거를 빌려 함께 타며 여유를 누리고 있었고, 유치원 아이들은 우치다쌤이 칭찬해 마지않던 ‘수건돌리기 게임’을 하며 감수성을 키우고 있었다. 이곳만 보고 있으면 정말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낙원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서울숲에 핀 꽃에 벌이 앉아 열심히 꿀을 채취하고 있다. 지상 낙원~




성장주의 사회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외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평상이 놓여 있는 공터가 있었다. 그래서 우린 그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민석이는 몸과 맘이 피곤한지 평상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서 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머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도 들여다보고 음악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여기까지 왔으니 한 바퀴 돌아보며 산책 좀 하자”라고 말을 해보았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예전 같았으면 억지로 끌고서라도 한 바퀴 돌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진 않는다. 모처럼 바깥에 나온 것이니 편안하게 쉬는 것도 나쁘진 않기 때문이다.



▲ 평상에 누워 있는 민석이와 그 옆 평상에 앉아서 놀고 이는 아이들.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고민하기도 했고, 때론 외치기도 했지만 그걸 실천하기는 매우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다. 경쟁 제일주의인 한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뒤처짐’을 의미하고, 한 순간이라도 멈춰 있는 것이나 멍 때리고 있는 것을 ‘농땡이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쉬지 말고 달려’라고 말하며, ‘시간 날 때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하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여기엔 당연히 ‘성장담론’, ‘진보담론’이 숨어 있다. 지금의 상태에서 무언가 하나라도 더 해서 끊임없이 현재의 상태보다 나아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나 과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보사관은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풍요로운 삶을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세계의 부조리엔 눈을 감게 했고(축구공을 만드는 아이들의 노동 착취, 약소국의 착취로 쌓아올린 부), 물질의 풍요로움만큼 삶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감과 불신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모든 것엔 일장일단이 있다. 얻은 게 있으면 잃어버린 게 있고, 나아진 게 있으면 나빠진 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담론에선 얻은 것이나 나아진 것만을 관심 갖지, 잃어버린 것이나 나빠진 것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려 한다. 그러니 일직선상으로 발전되는 것처럼만 보이지만, 실제론 성장 외에 다른 문제들은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아야 맞다. 한국의 경우 70년대 이후 급속히 경제성장을 하면서 농촌의 붕괴, 가족 공동체의 해체, 수많은 노동자들의 비인간적인 대우, 양극화의 심화와 같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묻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오죽하면 어떤 사람은 아예 “독재니 어쩌니 그런 얘기를 많이 하는데,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 성장제일주의로 흐르면, 성장만 하면 몇 명이 죽든, 불합리하든 상관없다는 말로 변질된다.



그렇기에 우린 더 이상 ‘나아져야 한다’,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 따위의 말로 개인을 옥죄려 할 것이 아니라, ‘적당히 욕망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외치며 앞서려는 마음을 추스르고, 강제하려는 마음을 억누르고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때의 자유란 단순히 ‘푹 잔다’, ‘무기력하게 뻗어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건 ‘쉬는 건 죄’라고 압박하는 사회에 갇히지 않아야 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에 머물지 않는 상태로,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아직은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그런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기에, 언젠가는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아무 것도 안 할 자유~ 누리는 그 날까지 쭈욱~




나와 같이 탈래라는 말은 뾰루퉁한 지민일 웃게 한다  

   

나 혼자 숲을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음미해봤다. 그러고 나서 돌아오니 아이들은 여전히 그대로 앉아서 있더라.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우린 서울숲 내에 있는 편의점을 찾아 걸어 다녔다. 한 10분 정도 걸었을까, 바로 편의점이 보이더라. 그곳에서 점심에 먹을 라면이나 먹을거리들을 사고 바로 근처에 있는 평상에 앉아서 느긋이 점심을 먹었다. 아이들은 한참 때라 밖에 나오면 배가 많이 고플 텐데도, 싸온 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식구의 정을 나누더라. 



▲ 역시 함께 먹어야 맛있다. 아이들은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선 잠시 쉰 후에 자전거 대여점으로 갔다. 계획을 짤 때 ‘서울숲에선 자전거를 탈 것이니, 자전거 타는 비용을 모두 가져오세요’라고 안내를 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거의 타지 않겠다고 하더라. 지민이 경우는 자전거를 대여할 마음이 있었지만, 4천원이란 돈을 주고 자전거를 빌리긴 그랬나 보다.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자전거를 빌리지 않고 자리에 털썩 앉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지민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천사가 나타났다. 지민이와 함께 타겠다며 2인용 자전거를 빌려주겠다고 말하는 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민이 스스로 얼마나 그 상황을 바라고 원했던지 그 한 마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언제 뾰루퉁하고 있었냐는 듯이 얼굴이 화색이 감돌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그건 바로 규빈이다. 



▲ 규빈 천사님이 나타나서 지민이는 활짝 웃었다. 자전거를 빌리는 아이들.



규빈이가 말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사람은 대여점으로 가서 2인용 자전거를 빌려서 왔고, 둘은 순식간에 자전거를 타고 나아갔다. 2인용 자전거는 1인용과 달라서 단순히 다리 힘만 좋다고 탈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제대로 탈 수 있을 때까지 몇 번이고 넘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지민이와 규빈이는 이미 1학기 전체여행 때 갔던 남이섬에서 타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자연스럽게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10바퀴 정도를 돌며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또 달리는 아이들. 누구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서울숲을 보며 느낀 점두 가지

     

자전거를 타고 서울숲을 돌아다니다 보니,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 서울숲은 올림픽공원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올림픽공원이 너무도 익숙하기에 되도록 올림픽공원은 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만 했었는데, 서울숲을 돌아다니다 보니 올림픽 공원이 얼마나 넓고도 좋은 곳인 줄을 알겠더라. 더욱이 가까이 있다고 한다면, 굳이 서울숲을 찾기보다 올림픽공원에서 지금과 같은 여유를 누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큐 '낙동강-한강 자전거여행'의 한 장면. 올림픽공원은 우리에겐 너무도 가깝고 친숙한 곳이다.



둘째, 서울숲은 갤러리아 포레(2011년에 완공되어 70평 ~ 115평형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며, 상위 1%의 VVIP를 겨냥해서 만든 아파트임)의 정원 같았다는 것이다. 2호선을 타고 뚝섬역 쯤을 지나다 보면 우뚝 솟은 두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그때도 ‘유독 저 건물만 특이하게 생겼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서울숲에 와서야 ‘정말 너무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숲과 포레는 맞닿아 있어 누가 봐도 포레 사람들이 개인 정원처럼 맘껏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숲이 2005년에 먼저 생기고, 포레가 2008년부터 분양을 하며 만들어지기 시작했지만, 이건 누가 뭐라 해도 ‘공공자산을 한 아파트에 특혜로 줬다’는 시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 포레에서 내려다 본 서울숲과 한강의 모습.



       

육아만큼 힘든 육견이라고 아시나요?  

   

자전거를 한참동안 타고 돌아오니, 아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감자와 함께 놀고 있었다. 그때 재홍이는 “감자를 데리고 나오니, 제 시간은 하나도 없어요. 계속 신경 써야 하고, 계속 챙겨야 하니 진이 완전히 빠져 버렸어요”라고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하더라. 

트래킹을 갈 때 강아지를 데려온 경우는 저번 율동공원 트래킹 때 규빈이가 처음이었고 이번에 두 재홍이가 데리고 왔으니 두 번째라 할 수 있다. 그래도 규빈이는 집에서 강아지와 잘 놀고 산책도 자주 시키며 때론 자유분방하게 놔두는 편이라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나머지 아이들이 잘 챙겨줬고 민석이가 산책도 시켜줬기에 그만큼 덜 신경 썼던 것도 있다. 

그런데 재홍이는 강아지를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데리고 있는 게 처음이기 때문인지 많이 힘들어 하더라. 강아지가 멀리 가지 못하도록 계속 데리고 있어야 했고, 하나하나 챙겨줘야 하니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민석이는 요즘 몸과 맘이 모두 바쁘기 때문인지, 강아지에 거의 신경 쓰지 않았다. 



▲ 재홍인 하루종일 육견을 하느라 온갖 진을 다 뺐다.



그러니 재홍이는 자전거 타고 온 나를 보며 “선생님 너무 힘들어요. 이쯤에서 그냥 돌아가면 안 돼요? 기운 빠져서 아무 것도 못할 거 같아요”라고 말하더라.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쐬며 즐기는 동안 재홍이는 강아지와 한판 씨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찌나 땀이 많이 났던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고 그 모습은 흡사 육아를 하는 엄마의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3시쯤 우리는 짐을 챙겨 서울숲에서 나왔다. 오늘 같은 경운 자전거를 빌린 아이들은 그래도 서울숲의 운치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평상에 앉아, 의자에 앉아 스마트 기기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허비했다. 아마도 아이들 스스로 ‘오늘 뭐 한 거지? 이럴 거면 학교에서 그냥 공부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불만을 갖기도 했을 거다. 그래서 나는 ‘다음부턴 좀 더 아이들이 기계만 만지작거리지 않도록 무언가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해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서울숲역에서 아이들과 헤어졌고 자전거 페달을 굴러 집으로 왔다. 



▲ 맑은 날씨, 가을이 무르익은 날씨. 떠나기에 정말 좋은 날씨다.




과거 트래킹 기록보기        


14.03.21 서울 둘레길 트래킹

14.09.29 중랑천 트래킹

14.10.17 율동공원 트래킹   

14.11.14 여의도 트래킹

15.07.10 남산트래킹

16.03.11 통인시장 트래킹

16.03.25 롯데월드 트래킹

16.04.09 어린이대공원 트래킹

16.04.23 평화의 공원 런닝맨

16.06.03 남한산성 트래킹

16.06.17 검단산 트래킹

16.09.23 율동공원 트래킹



목차     


1. 책 밖에 길이 있다

우린 너무도 당연히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것만을 공부라 여기다

여러 가지의 공부가 있음에도, 오로지 하나의 공부만을 강요한다

트래킹으로 공부하자     


2. 없어진 것과 새로 생긴 것 중, 어느 게 알기 쉬울까?

민석이의 “몸과 맘이 바빠 세부계획을 못 짰습니다”라는 말

영동대교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우치다 타츠루의 말이 떠오르다

서울숲에 모였으니, 일정을 시작해보자


3. 서울숲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성장주의 사회에서 ‘아무 것도 안 할 자유’를 외치다

‘나와 같이 탈래’라는 말은 뾰루퉁한 지민일 웃게 한다

서울숲을 보며 느낀 점, 두 가지

육아만큼 힘든 육견이라고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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