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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an 13. 2017

백 가지도 넘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던 그대에게

2009년 국토종단 6 -  4월 21일(화)

드디어 이튿날 여행을 시작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직 덜 마른 배낭이 걱정이 되고, 눅눅한 신발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게 어딘가.                



▲ 비가 그래도 그쳐서 다행이다. 이제 몸도 풀렸겠다 맘껏 걸어보자.




내가 그림 속에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조금 걷다 보니 날씨는 서서히 개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찌푸려 있었지만 간혹 구름 사이로 햇살이 ‘삐져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구름 사이로 삐져나온 햇살은 선명한 빛줄기를 대지에 산포하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건 모네Claude Monet(1840~1926)의 『루앙 대성당』이란 작품을 봤을 때의 경이로움과 비슷한 감정을 자아냈다. 모네의 작품을 보다 보면 형태가 있어서 어떤 상황이든 그 형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닌, 빛에 따라, 산포되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색채와 변화무쌍한 형태가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처럼 지금 보는 빛줄기도 구름의 모양에 따라 그 모양새를 달리 하며 우리 눈앞에 현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광경을 보면서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모네의 작품에선 빛에 따라 흐물흐물 드러나는 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은 현실을 잘 포착해 낼 때 감동적이며, 현실은 작품처럼 극적일 때 감동적이다. 그래서 우린 좋은 작품을 보다가도 “사진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며, 뭔가 되게 이상적인 광경을 보다가도 “마치 그림 같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야말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 쓴 「訪金居士野居」라는 한시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가을구름 가득하고 온 산은 적막하며 낙엽은 소리 없이 떨어져 땅을 온통 물들였네. 다리 위에 말을 세워 돌아가는 길 물으려니. 미처 알지 못했구나, 내 몸이 이미 그림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秋雲漠漠四山空 落葉無聲滿地紅 立馬溪橋問歸路 不知身在畵圖中).”이라는 시인데, 정도전도 아주 풍광이 좋은 자연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림 속에 있다’는 표현으로 썼던 것이다. 이처럼 우린 멋들어진 광경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그림 같다고 표현하고, 훌륭한 작품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 사진 같다고 오래 시간동안 표현해 왔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언어의 한계가 만들어낸 아이러니한 표현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순간 나도 “내가 그림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말해도 된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어제의 빗길 도보여행과는 확연히 다른 운치가 느껴진다. 가벼운 맘으로 팔을 앞뒤로 힘차게 휘저으며 걸어간다.                  



▲ 구름 사이로 빠져나온 빛줄기. 정말로 그림 같다.




곤충의 습격함평에서 공포에 떨다

     

한참을 걷다가 함평으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정자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 정자 뒤론 드넓은 벌판이 보이고 그 앞엔 민가 몇 채와 2차선 길이 있었다. 김밥을 먹고 있으니 들판에서 부는 바람이 내 몸을 자꾸 흔들어 댄다. 금세 땀이 식어 춥게 느껴지더라. 오래 앉아 있으려 해도 감기가 걸릴 것 같아서 밥만 먹고 바로 일어났다. 따뜻하기만 했어도 누워서 쉬었다 갈 텐데, 거기서 계속 앉아 있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아직은 날씨가 확 풀리지 않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별로 쉬지 못하고 계속 걷게 만든다. 

함평은 나비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언젠가 가족끼리 한 번 와본 기억은 있다. 입장료가 7.000원으로 꽤 비쌌던 것 같은데, 실제로 그 금액엔 행사장 안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2.000원의 쿠폰이 들어 있으니 실제 입장료는 5.000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땐 기록을 잘 남기지 않던 때라 그저 흐릿한 잔상처럼 ‘한 번 갔던 곳’이란 느낌만 남아 있을 분이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내 발로 직접 걸어서 가고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가 함평이 아니랄까봐 곳곳에 나비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어느 언덕엔 나비 모양으로 단장을 해 놓은 곳도 있었고, 어느 언덕엔 꽤나 큰 곤충모양을 설치해 놓은 곳도 있었다. 메뚜기, 여치, 사마귀 등. 멀리에서 봤을 땐 ‘기이한 생명체’가 등장한 줄만 알고 까무러칠 뻔 했다. 하긴 작은 곤충만 봐도 깜짝 깜짝 놀라는 나니깐^^;;       



▲ 여기가 함평이란 걸 언덕의 조형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함평엔 유채꽃이 지천에 있다

     

난 줄곧 23번 국도를 따라가고 있었다. 어제 1번 국도를 따라 걸었을 땐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여서 그나마 걷는 재미(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23번 국도는 고속도로처럼 4차선이고 마을을 비껴가는 도로여서 걷는 재미가 없더라. 걸으면서 느껴지는 상쾌함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차가 느리게 갈 때의 답답함만이 있다. 걸으며 마을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모습을 곁에서 음미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그 답답함도 잠시 4차선이 2차선으로 바뀌고 나선 참 좋았다. 간혹 길에 바짝 붙어 오는 차들 때문에 급하게 피해야 하는 곤혹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곁에서 볼 수 있으니 좋았다. 당연히 차도 별로 다니지 않고 바로 곁에 논도 있다. 그 푸르름에 시선을 뺐기기도 했다. 그 옆엔 유채꽃이 노란 물결을 이루며 한가득 피어 있었다. 도로와 차를 연신 보며 걷다 보니 오히려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유채꽃을 보며 걸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오죽했으면 『라디오스타』라는 영화에서 최곤이 팬들에게 몸을 날리듯이, 나도 유채꽃에게 몸을 던지고 싶었을까. 



▲ 가는 곳곳에 유채꽃밭이 있었다. 최곤처럼 몸을 던지고 싶다.



한참을 가다보니 슈퍼가 있고 그 앞엔 평상이 있었다. 이미 그 곳엔 할머니와 슈퍼 주인아주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내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털썩 평상에 주저앉았더니 경계하는 듯한 눈초를 보내시더라. 낯선 사람이 앉으니 당연한 거겠지. 앉으면 그 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웬 걸? 말은커녕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내가 유명인사도 아닌데 유명인사라도 되는 양 착각했나 보다. 어색함 속에서 20분 정도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 유채꽃과 건빵.




내일 신림에 가기 위해 오늘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한참을 걸어 4시가 되었는데 아직도 ‘영광 9km’라지 않은가. 아직도 2시간 반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는 말씀되시겠다. 이미 몸은 지쳤는데 갈 길이 멀다. 그래서 ‘가는 도중에 마을이 보이면 마을 회관 같은 곳에서 하루 묵고 갈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오늘 못 간만큼 내일은 고창까지 36km, 거기에 신림까진 4km를 더 가야 한다. 내일 도착지를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으니, 오늘 편한 만큼 내일은 그만큼 더 고생하게 될 게 뻔했다. 이거 은근히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라는 식의 일반적인 성공담 같은 뉘앙스의 말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라는 뉘앙스의 말이 아니라, 그저 내일까지 가야할 목적지가 분명한 만큼 지금은 서둘러야 한다는 말일 뿐이다. 그러니 내일이 지나고 나면 다시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지금은 갈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걸어보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어제는 물집이 되기 전의 작은 공기층이 발 앞 쪽에 생겼었는데 오늘은 결국 물집이 되고 말았다. 걸을 때마다 발 앞쪽이 닿으면 찌릿찌릿 통증이 온다. 그런데 지금은 통증이 온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럴 땐 확실히 사람이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목표에 따라 자신의 몸 상태도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기적일 때 유용한 것일 뿐, 늘 삶이 그래선 안 된다는 건 확실하다.                



▲ 영광에서 신림까지 33km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걷지 못하면 내일은 정말 최악의 날이 될 거다.




백 가지도 넘는 핑계 대고 도망친 그대에게

     

그 때 불연 듯 ‘사람들은 막상 떠나고 싶은 맘이 절실한데도 그걸 실행하지 못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해도 막상 떠나기로 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설렘보다 두려움이 컸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길을 떠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이렇게 떠나려 하는 게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지 하는 불안함이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면 애초에 먹었던 생각들도 비현실적이라 치부하며 그만두게 된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 해야 하는 일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더 많은 법이다. 

그런데 그런 이유들이 핑계이진 않을까? 그런 식으로 자신의 다양한 가능성을 거세하고 길들이는 건 아닐까?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에서 강마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음에도 제대로 연습하지 못하는 단원들을 보며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백 가지도 넘는 핑계 대고 도망친 겁니다. 여러분들은~ (ep 4)”이라고 일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내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지금껏 그런 핑계를 대며 나를 억누르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이유보다 할 수 없는 핑계가 언제나 많았다. 



▲ 수많은 해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로 도망가던 사람들에게 강마에는 질타한다.



그러던 내가 드디어 첫 발을 뗀 것이다. 온갖 핑계로 하지 못하던 일을 드디어 하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도망만 치던 내가 처음으로 도망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이렇게 막상 떠나고 보니 그간에 괜한 고민들만 많았다는 것을 느꼈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정말 그랬다. 모든 일이 현실로 닥치면 저절로 하게 된다. 내 몸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일은 술술 풀린다. 바로 그런 간절함, 절실함이 문제였던 거다. 어떤 일이든 계획만 하고 실천하지 못할 때, 그걸 막는 현실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 맘 속에 간절함, 절실함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이제 간절함으로 절실함으로 살아간다.




간절함으로 현실을 살아보자 

    

이런 논리로 현장인문학(현장인문학의 자세한 이야기는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 고병권의 『추방과 탈주』라는 책에 잘 나와 있다)에 접근해도 같은 결론이 나온다. 현장 인문학은 지식의 확고함, 이론의 정확성을 일반인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나와는 다른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절실한 마음이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장애인들을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함께 하며 용산 철거민들의 고통을 우리의 고통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된다. 그건 그들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공감하려는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한 순간의 공감은 진심이 아닌 ‘그러는 척’하는 가식에 다름 아니다. 이성적인 이해보다 온 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공감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현장인문학에 임할 때 우리는 어느새 같이 아픔에 동참하며 공부를 통해 생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건 바로 그거다. 머리로만 재지 말고 절실함으로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자는 것.  


▲ 넌지시가 아닌 현장에 들어가 함께 호흡하며 공감해야 한다.

           


   

도민체육대회를 하는 영광에서 여관 잡기와 싼 여관 찾는 법 

    

발바닥이 욱신욱신하고 무릎도 점차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힘을 내서 걷고 또 걸었다. 

5시가 넘어가니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해가 진 다음에 걷는 건 위험하다. 그래서 좀 더 속도를 냈다. 6시 15분이 되어서야 영광 시내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오늘부터 전남도민체육대회라지 않은가. 시내 진입로부터 도민 체육대회를 알리는 현수막과 시설물들이 여기 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그건 곧 숙소들도 꽉꽉 찼을 거란 얘기고 당연히 값도 비쌀 거라는 얘기다. 두둥~ 어찌하여 이런 고난을 주시나이까^^ 

영광은 무안보다 훨씬 컸다. 여기 저기 모텔들도 많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림의 떡이었다. 새 건물이었고 엄청 좋아보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한참 돌아다니다가 제일 허름한 곳을 찾았다. 다행히도 이곳은 처음부터 25.000원을 부른다. 난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5000원을 더 깎아달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그렇지 않아도 도민체전으로 모든 숙소가 다 찼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계산을 했다. 아깝다~ 다른 때 같았으면 더 깎을 수 있었을 텐데. 여관에 제 돈을 주고 들어가는 건 왜 그리 돈이 아깝던지ㅠㅠ



▲ 하필이면 오늘부터 체육대회 시즌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텔을 이용하다 보니, 깎을 수가 없다.



어제 오늘 모텔을 두 번 잡아보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기더라. 모텔이라고 다 같은 모텔은 아니다. 돈이 넉넉하다면야 좋은 모텔에 들어가 안락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아끼고 싶다면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선 근처에도 가볼 필요가 없는 모텔은 건물장식이 호화롭고 깔끔한 전형적인 러브호텔풍 건물이다. 이런 곳은 십중팔구 비싸다. 그 다음은 자동차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고 자동차 표지판을 가려주는 모텔들이다. 건물이 좀 안 좋더라도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싼 곳은 예전으로 치자면 여관을 찾는 것인데 온천마크가 그려진 곳들이 바로 그런 곳이다. 건물도 허름하고 굴뚝도 달린 그런 곳 말이다. 이런 곳이면 적당히 흥정도 가능하다. 여관은 도보 여행자에게 있어 그저 잠자기 위한 곳일 뿐이다. 고로 이곳에 돈을 많이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이런 곳에서 아낄 수 있어야 베스트 여행자(베스트 드라이버에서 착안한 신조어^^) 축에 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비야씨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여행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난 그 분의 꼬랑지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인데, 어찌 금방 뛸 수 있기를 바랄 쏘냐^^


(김밥 2.000원, 점심 6.000원, 여관비 25.000원 / 총합 33.000원)



▲ 한비야씨는 걷던 그 마음 그대로 자신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나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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